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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리스티피케이션' 관광객의 습격이 시작됐다


입력 2017.04.17 04:35 수정 2017.04.17 06:26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나의 힐링이 남에겐 킬링이 될 수 있어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중국과 동남아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 만들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중국과 동남아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 만들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는 생소한 말이 쓰이고 있다. 관광지가 되어간다는 'Touristify(투어리스티파이)'와 지역 상업화로 주민들이 밀려난다는 ‘Gentrification(젠트리피케이션)’의 합성어다. 이런 개념어들을 아무 생각없이 영어로 쓰는 세태는 문제이지만, 어쨌든 우리말 대체어가 아직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선 편의상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란 말을 사용한다.

유명 관광지가 된 북촌이 대표적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른 아침부터 단체 관광객들이 주택가를 가득 채운다. 주말엔 골목 소음이 70데시벨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하루 종일 전화벨을 듣고 사는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점이다. 그런 곳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니 소음부터 시작해, 쓰레기, 불법주정차 등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다. 노상방뇨에 심지어 대변까지 보고 가기도 한다고 한다. 창문 바로 아래에서 무리 지어 담배를 피우거나 불쑥 대문을 열어보고 사진을 찍는다. 구경하는 사람은 한적한 마을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남긴다는 생각이지만, 당하는 주민 입장에선 하루종일 감시당하는 느낌이다. 사진 문제는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특히 심각해졌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집을 비우고 이주하는 현상이 바로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다. 관광객이 마을을 점령하는 것이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은 주민들이 나서서 벽화를 지우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에게 인증샷의 명소로 알려졌던 ‘해바라기 계단’의 해바라기도 회색 페인트로 덮였다. 주민들이 살기 위해 아름다움을 버리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1950년에 국제적 여행객은 2500만 명 수준이었지만, 2013년엔 약 10억 명으로 늘어났고, 2030년엔 18억 명으로 예측된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네비게이션을 보며 전 세계의 골목을 누비는 시대. 그래서 과잉관광(오버 투어리즘)이라는 말이 나왔다.

베니스는 한때 30만을 헤아렸던 인구가 4만 8000 명까지 내려갔다. 2016년엔 주민들이 베니스로 찾아온 크루즈 선을 가로막고 ‘관광객은 꺼져라’는 구호로 시위까지 벌였다. 소음 등의 불편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관광으로 사라진다. 채소가게, 빵집, 세탁소 등이 카페, 기념품 가게 등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시위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내년엔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 소득 증대와 인터넷 인증문화 등으로 내국인들의 관광 수요도 더 커진다. 이러면 우리 국민들이 관광객들을 적대시하는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더 커지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 당국은 관광활성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젠 주민의 삶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과거엔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며 무공해 황금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의외로 관광도 일종의 공해를 유발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침략적이지 않은 관광이라는 의미에서 ‘공정관광’이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관광객들도 예쁜 집을 들여다보고 사진 찍기 전에,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여럿이서 돌아가면서 남의 집 앞에서 떠들거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엄연한 테러다. 나의 기분전환이 누군가에겐 침탈이 될 수 있는 시대. 관광객의 습격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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