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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TV토론, 누가 위기를 넘겼나했더니...


입력 2017.04.15 06:23 수정 2017.10.16 10: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달변보다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후보의 자세

주요쟁점 정리하는 효과 무용론보다 활용방법 찾아야

SBS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 타워에서 가진‘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좌측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SBS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 타워에서 가진‘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좌측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13일 금요일 후보등록 직전 처음으로 대선후보 TV토론이 열렸다. 오전에 녹화해 저녁에 방송하는 것이어서 맥이 빠졌다. 먼저 낮에 많은 기사가 나왔다. 선입견을 주기 충분했다. 현장 분위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토론현장에 있던 기자에게 메신저로 솔직한 총평을 물어봤다. 돌아온 답장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이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 만드는 데 성공했어. 홍은 무뎠고, 안은 굳었어. 유는 잘했는데 각이 안서니 묻히고. 양강구도 이제 꺾인 듯“

좀 있다가 다른 분의 연락이 왔다.

“문재인은 왜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어. 호칭도 여러 번 실수하고... 이재용을 이재명으로, 유승민을 유시민으로... 웃는 모습도 믿음을 못 주는 것 같아”

완전히 상반된 평가에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좋아하는 연속극도 포기하며 두시간 반 동안 토론을 꼼꼼이 살펴봤다. 두 의견 다 일리가 있었다.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끝나고 각 당의 반응을 살펴보니, 역시 “우리가 가장 잘했다”는 평가였다. 구체적으로는 “‘준비된 대선후보’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문재인),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을 지킬 유일한 후보임을 보여줬다”(홍준표), “전문적 식견으로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면서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안철수), “안보·경제 위기를 해결할 독보적인 후보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유승민), “유일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심상정)는 평가였다. 평가 자체도 토론의 연장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과연 TV토론이 선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거홍보의 효과에 대해 ‘강효과’, ‘약효과’, ‘중효과’, ‘강화효과’ 등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최초의 연구는 ‘강효과 이론’이었다. 모든 제도가 처음 시행될 때는 효과가 강하다. 미국 케네디대통령이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처음은 아니지만)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에 열광했다. 잘생긴 외모와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약세였던 후보가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다른 시각들이 주목을 받았다. 요즘은 대부분 ‘강화효과’에 동의한다. ‘지지의 명분을 제공하는 용도’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의미부여를 하자면, ‘지지의사를 투표로 표출할 동기를 부여’하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토론을 보고 지지의사를 바꿨다’고 선전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한다. 그러나 그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케네디 신화’가 있었던 TV토론의 본고장 미국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와 클린턴의 토론을 보고 많은 사람(언론)이 클린턴의 대선승리를 예측했다. 언론은 현장에서 참과 거짓을 평가하며 트럼프에게 안 좋은 점수를 주었다. 클린턴에게는 ‘토론도 잘했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도 잘 보였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트럼프 당선 이후 ‘샤이 트럼프’라는 민망한 핑계가 나왔고,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기성언론을 조롱하며 트위터 같은 개인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기성언론과 그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검증수단(TV토론, 여론조사)에 심각한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TV토론의 선전이 승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는 이정희라는 노이즈(잡음)가 있었고, 박근혜-문재인 양자의 토론실력도 공히 신통치 못했다. 그 이전의 토론들도 마찬가지였다. 토론실력이 출중했다고 해도 반드시 당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달변과 명쾌한 논리가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90년대 중후반 박찬종 후보의 경우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직접 총괄했던 TV토론에서도 마찬가지 교훈을 얻었다. 당시 우리 후보는 모든 사안에 정확한 정보와 거침없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는 어느 하나 똑 부러지게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수치의 실수도 잦았다. 한번은 TV토론 생방송에서 그 잘못된 수치가 문제가 됐다. 정말 상식적인 수치를 너무 크게 틀렸다. 그 실수는 일시적인 말실수가 아니고 공약의 치명적 오류였다. 방송 중에 우리 후보는 통쾌하게 그 부분을 지적하고 토론에서 승리하는 듯했다. ‘한방의 KO’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 우리 스탭은 환호했고, 상대 스탭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상대후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넘겼다. 토론 이후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스탭들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언론들이 ‘기계적 균형’ 때문인지 그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투표결과는 박빙이었다. 토론에서 보인 후보의 자질로는 박빙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를 보면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후보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틀린 말이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태연했기 때문에 지지자들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고, 언론도 알면서 넘어간 것이다. 만약 후보가 당황하고 허둥댔으면 언론도 그 자체를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지지자도 흔들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TV토론이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후보의 그릇이 드러난다. 앞에서 이야기했 듯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도 중요한 덕목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리더의 핵심적 자질이다.

둘째로 TV토론은 모든 주요쟁점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예상치 못한 조기대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후보, 스탭 그렇고 유권자도 그렇다. 이러한 ‘통과의례’가 없다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스스로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문제가 많을 것이다. TV토론은 혼재하는 캠프의 역량을 모아서 일정한 방향을 정하고 쟁점들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 유권자는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할 수 있는 증언을 얻는 계기가 된다.

이런 이유로 TV토론은 홍보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제기되고 있는 수많은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토론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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