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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대권주자들의 말로는


입력 2017.04.10 04:29 수정 2017.10.16 09:58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역대 대통령중 퇴임 행복 누린 이 한 명도 없어

전임자들이야 고초를 겪었듯 말든 전진하는 후보들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등 내빈들이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체육인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등 내빈들이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체육인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통령 선거를 꼭 한 달 앞둔 9일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한 사람은 20명이었다. 이 경쟁에 가세할 사람이 몇 명쯤은 더 있을 것도 같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대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대선 기탁금이 만만찮다(3억 원). 환급 대상도 극히 제한적이다. 유명해지기 위해 출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이 너무 낮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기억과 선거용 명함에 새겨지는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자후를 토할 기회를 갖고자 비용 여하 간에 출마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선택해야 할 길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명감이나, 국민을 상대로 호소하지 않고서는 풀지 못할 것 같은 한을 가진 경우다. 이 또한 성과는 거의 없다. 대중은 금방 잊어버린다.

어쨌거나 대선의 승자는 오직 1명이다. 게다가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후보는 2명, 많아야 3명뿐이다. 거기에 포함되지 못하면 당선은 애초에 기대 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때면 다투어 출사표를 던진다. 참고로 역대 대선에서 완주한 후보의 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1대 대선=4명(국회 간선: 서재필 후보는 미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선거후 무효처리 됨), 제2대=4명(국민직선), 제3대=2명(선거 운동 중 사망한 신익희 제외), 3.15부정선거(선거무효)=1명(선거 운동 중 사망한 신익희 제외), 제4대=12명(4.19후 의원내각제 하에서 국회가 선출), 제5대=5명(5.16후 국민직선), 제6대=6명, 제7대=5명, 제8대=1명(유신헌법 하의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제9대=1명(유신 기간), 제10대=1명(10,26사태 후 최규하 권한대행을 선출), 제11대=1명(정권 이양 명목으로 전두환 선출), 제12대=4명(5공화국 선거인단 선거), 제13대=5명(9차 개헌에 따른 국민직선), 제14대=7명, 제15대=7명, 제16대=6명, 제17대=10명, 제18대=6명.

당선이 무망한데도 거액의 기탁금 부담을 감수하게 하는 대통령직의 매력은 무엇일까? 인간을 통치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야말로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기독교에서는 성직자를 목자로 부른다. 목자란 가축(특히 양)을 돌보고 기르는 사람을 말한다. 동양에서도 임금이나 지방관이 백성들을 다스리고 보살피는 일을 목민(牧民), 그 사람을 목민관이라 했다.

단순히 가축을 돌보는 일이라면 그 수가 천이든 만이든 필생의 사업으로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다스리는 일,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대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류사는 보는 측면에 따라 축록(逐鹿:제위나 정권 따위를 얻으려고 다투는 일)과 이를 위한 쟁투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정치권력에 대한 인식은 물론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고 하겠지만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한 가지다. 짐승이 아닌 사람을 다스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바로 권력욕구다. 그리고 권력이나 권위를 자랑하려는 욕구, 이를 통해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싶은 욕구는 그 대상이 가족 이웃 동족 (같은)국민일 때가 훨씬 클 것으로 짐작이 된다.
비근한 예가 ‘금의환향(錦衣還鄕), 금의야행(錦衣夜行)’의 고사다.

항왕(항우)는 마침내 진나라의 도읍 함양을 함락시켰다. 그는 진나라 왕자 영을 죽이고 모든 궁실을 불태웠다. 어떤 사람(蘇生 혹은 韓生)이 그에게 “관중은 사방이 산하로 막혀 있고, 땅이 비옥하니 도읍으로 삼아 패왕이 될 만한 곳입니다”라고 권했다. 그렇지만 이미 함양의 궁궐은 모두 불타버렸고, 무엇보다 항우 자신이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리오?”

함양을 근거로 천하를 제패하라고 권했던 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楚) 땅의 사람은 목후(沐猴: 원숭이)가 관을 쓴 격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이 말을 전해들은 항왕은 그를 삶아 죽이고 말았다.(사기, 항우본기)

자신의 성공을 친지, 측근, 이웃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심을 숨기며 마치 오직 희생과 봉사의 정신만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건 역겹다. 그 과도한 자기 포장에 스스로 속으면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은 궤도를 이탈하기 십상이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국민을 괴롭히는 경우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그 재미(?)에 빠지는 것은 곧 자멸이다.

당연히 신이 되려는 욕망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신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인 자신이 5년 안에 이루겠다고 공약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사기성 공약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선심공약이라고 하겠다. 현란한 언변으로 선심을 쏟아내지만 그건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국민을 위해 쓰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공약사업의 규모가 클수록 유권자의 부담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공약이야말로 대통령직 실패의 첫째가는 요인이 된다.

경고가 아니라 조언으로서 해 줄 말도 있다. 후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많은 덫과 함정이다. 한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걸리거나 빠지고 만다. 달리 표현하자면 선거 당일까지 지뢰밭을 걷는 신세나 마찬가지다.

당선 이후의 입장 또한 다를 바 없다. 예전의 통치권력은 진작 없어졌는데 국민의 기대치와 요구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어쩌면 취임 직후부터 무력감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에서 그쳐줄 것도 아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이것저것 일을 벌이다보면 법이나 관행의 그물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조심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적대적인 정치‧사회 세력들이 옭아 넣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면 당해낼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처지다. 그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축출에 앞장섰거나 힘을 보탰던 후보 중 누군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변할 것은 없다. 새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처지를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별로 길지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이 ‘전우야 잘자라’ 노랫말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이럴 때 왜 하필 그 노래가 생각나고 그 멜로디가 귀에 들리는 듯할까?

역대 대통령으로서 ‘퇴임의 행복’을 누렸던 이는 없다. 대부분, 무사히 청와대를 나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유력 정치인들의 대통령 꿈은 식을 줄을 모른다. 앞에 섰던 사람들은 넘어지고 밟히고 하는데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그 군가가 귓가를 맴도는 것인가? 전임자들이야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든 말든 “나는야 전진한다”라는 것 같기만 해서….

이러나저러나 대선을 한 달도 채 안 남긴 시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두 후보가 지난 3일과 4일 각각 소속 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을 계기로 여론조사의 후보별 지지율에 갑자기 격변이 일어났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문 후보의 아성에 안 후보가 마침내 균열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불과 1주일 만에 안 후보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양자구도, 다자구도 할 것 없이 문 후보를 앞지르며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문 후보도 ‘대세의 징크스’를 피하지는 못하는가? 일찍이 ‘대세’를 과시했던 후보 중에 당선자는 거의 없었다. 그 악몽이 문 후보와 그 캠프, 그리고 민주당을 전율케 하고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안 후보가 낙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지지기반의 안정성이 문 후보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들이다. 쉽게 팽창된 만큼 쉽게 위축될 우려도 상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세로 미루어 말하자면 아무래도 안 후보 쪽이 우세해 보인다. 선거일이 많이 남았다면 역전 재역전 등으로 판세가 변할 여지도 많지만 이번엔 그게 아니다. 추세의 변화를 기대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문 후보는 박 전 대통령 몰아내기를 너무 서두른 게 패착이었다고 후회하게 될까?)

다른 한편으로 구 여당, 그러니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후보들이 선전을 해서 지지율을 큰 폭으로 끌어올린다면 문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이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할 때엔 그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권자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반문정서’가 특정 후보를 선택하게 될 경우 문 후보는 험로를 걷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 후보는 ‘물반 고기반’인 좋은 어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해역이 상대적으로 한정돼 있다. 반면 안 후보의 어장은 고기의 밀집도가 떨어진다. 대신 어장의 넓이에서는 문 후보에 비해 월등하다. 그래서 이 경쟁은 재미가 있다. 물론 재미만으로 말할 일은 아니다. 어느 쪽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진로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고 국운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은 이렇다. “어떤 길이 우리 앞에 놓이기를 원하는가, 어떤 운명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가.” 그 답 또한 스스로 얻게 될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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