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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마는 잠시고, 호랑이 등에 올라탄 보수후보들


입력 2017.04.02 03:57 수정 2017.04.02 23:16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낮은 지지율 탓에 단일화 자신도 없고 필요도 못느껴

단일후보 최종 승리도 장담 못해 단일화도 능사 아냐

3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자 선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한 뒤 두팔들 들어올려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3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자 선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한 뒤 두팔들 들어올려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보수후보 단일화의 암초

지난달 31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던 날, 바른정당의 반응은 살아나려는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이기재 바른정당 대변인은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책임을 지고 이번 대선에 대통령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깎아내렸다. 홍 후보를 거의 ‘사생아’ 취급을 했다. 게다가 “홍 후보가 국민 앞에 서려면 한국당 내 최순실 국정농단에 책임져야 할 '양박'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양박 청산은 앞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후보단일화 조건으로 '진박 인적 청산'을 요구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단일화 외치던 후보들, 경선 끝나자 말 바꿔

반면에 홍 후보는 이날 ‘양박’이든 ‘진박’이든 인적청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후보직을 수락하는 자리에서 “당의 당헌당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인적 청산한다는 건 혁명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청산 요구를 일축했다. 나아가 “바른정당 사람들은 이제 돌아와야 한다”면서 “보수우파의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톤을 높였다. 단일화 제의는 고사하고 조건 없이 백기투항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이 정도 설전이라면 보수후보 단일화의 전도는 시계 제로라고 할 만하다.

앞서 경선 기간 동안에는 경쟁 후보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단일화 당위성을 주장하던 두 후보가 경선이 끝나자마자 말이 180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좀체 뜨지 않는 지지율이 화근으로 보인다. 지지율이 높다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상대 지지율도 한데 합쳐야겠다는 필요성이 동시에 생길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지율이 낮으니 우선 본인 지지율부터 올리기에 급급하고 상대의 낮은 지지율에 통합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낮은 지지율 탓에 단일화 자신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껴

지난달 3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3월28~30일 사흘간 전국 성인 1010명 응답. 표본오차는 ±3.1%p, 95% 신뢰수준, 응답률은 22%) 결과를 보면, 홍 후보가 전주 6%에서 4%로 2%p 내려갔고, 유 후보는 1%에서 2%로 1%p 올랐다. 유 후보는 지난 28일 대선후보 당선에 따른 ‘컨벤션 효과’가 반영된 것이며 홍 후보는 반영 전이다.

한 주 사이에 약간의 변동이 있긴 하지만 큰 맥락에선 다를 게 없다. 홍 후보가 유 후보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선다는 점과 두 후보 지지도를 합치더라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같은 조사에서 10%에서 19%로 9%p 수직상승했다. 앞으로 김진태 한국당 후보 지지율이 홍 후보에게 이전되면 홍 후보 상승요인이 있다. 그럼에도 오는 3일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안철수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을 요인이 있어 앞서 두 명제에는 변화가 없을 듯하다.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후보가 손을 들어 올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후보가 손을 들어 올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자강론’ 성과 못내면 단일화 압박 거세질 수밖에

보수정당의 두 후보는 당분간 ‘자강론’을 내세우며 각자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 지지자들과 당원들도 국민여론을 살피면서 지지율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후보 지지율이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면 단일화 압박은 당 안팎에서 점점 거세질 수밖에 없다.

후보 본인들은 설사 ‘승산 없는 게임’이라도 공당의 대선후보라는 타이틀을 갖고 완주(完走)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배에 올라 탄 동료 의원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배가 가라앉을 때는 밑창을 뜯어서라도 뗏목을 만들려고 하는 게 정치인들의 생존본능이다. 당 공천 후보의 지지율이 돌발 변수로 하락할 때 어김없이 불거지는 후보교체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4월17일 이후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서도 지지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면 그들의 인내력도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판단되면 후보교체론 대신에 후보단일화로 자신들의 위기감을 발산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 완주 뒤 패배하면 ‘개인 욕심 때문에…’ 가중 책임론 몰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면 후보 입장에선 ‘완주’를 고집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꿋꿋이 버틴 덕분에 막판에라도 지지도가 급상승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끝내 패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개인 욕심 때문에 선거를 망쳤다”는 비난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후보단일화에 응한다면 ‘가중(加重) 책임’을 피해갈 수 있을까? 다행히 보수 단일 후보가 상대를 꺾고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영광을 함께 나누면서 후보 양보의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DJP 연대’로 대선에서 승리한 뒤 장관직을 나눠 가졌던 자민련 경우처럼 승전 전리품으로 상실감을 만회할 수 있다.

단일 후보의 최종 승리 불확실 때문에 단일화도 능사 아냐

그러나 만에 하나 본선에서 단일 후보가 패배할 경우 출마를 포기한 후보 측은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해야 한다. 대선후보가 사라진 ‘불임정당’이란 낙인이 찍히고 보수본류 경쟁에서 밀리는 악재로 작용해 선거 뒤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수 후보들은 경선 승리로 꽃가마를 탄 기분은 잠시고, 서서히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계속 타고 있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내리기도 어렵다.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뒤지는 후보의 처지는 더욱 그렇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이 후보들을 단일화 대신 독자 노선에 매진하도록 채찍질하고 있다. 지지율 상승이 오도 가도 못하는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안철수 후보를 능가하는 지지율을 확보해 문재인 후보와 ‘2강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최선이다. 굳이 결과가 불확실한 후보단일화에 목을 맬 이유도 없다.

혼자서 지지율과 씨름하다 타이밍도 놓치고 패하면 무덤 자초

하지만 목표에 집착해 현실 파악이 늦어지면 무덤을 자초할 수 있다.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어물어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썼단다. 혼자서 지지율과 씨름하다 단일화 타이밍도 놓치고 이도저도 아닌 채 벼랑 아래로 떨어지면 최악의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보수진영 패배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고 본인의 정치생명을 내놔야하는 불상사는 피해야 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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