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안희정 "선생님" 안철수‧이재명 "사회운동가" 유승민 "경제학자"


입력 2017.03.30 06:20 수정 2017.03.30 07:06        이충재 기자

[데일리안 대선후보 앙케트]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린시절 장래희망은' 안철수 "과학자" 손학규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후보검증'이 중요하다. 이에 발맞춰 데일리안은 '대선후보 앙케트'를 진행했다. 후보들의 건강 관리법, 외모, 가정생활 등 전형적인 연성보도를 넘어 후보들의 인간적인 면을 엿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차기 대통령이 어떤 '사람 냄새'를 풍기느냐는 국정운영의 철학이나 방향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가늠자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후보는 대선 출마선언 미정 등을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현재 대선주자들이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정치1번지인 여의도가 아닌 교단이나 강의실, 광화문 등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에게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겠느냐'고 물었다. 답변에선 정치권과 거리가 먼 자리부터 여전히 정치 주변을 맴도는 곳까지 제각각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설문에 답했다.

◆안희정 "선생님"= 안 지사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교편을 잡은 '안희정 선생님'을 볼 수도 있었다. 안 지사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안 지사의 답변은 기막힌 역설이었다. 정작 그의 학창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안 지사의 고교 재학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5.18광주항쟁이 일어난 1980년 남대전고 1학년이던 안 지사는 전두환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됐다.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성남고에 들어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3개월만에 "민중의 힘으로 혁명하겠다"며 자퇴서를 냈다.

그는 1989년 김덕룡 의원실의 비서관으로 지내다 1991년 정치판을 떠나 건설일용직과 출판사 영업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199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재명 "사회운동가"= 이 시장은 정치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야성(野性)'은 감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가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지금쯤 사회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의 첫 직업은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열다섯 살이던 1979년부터 2년간 시계를 생산하는 오리엔트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 1월 23일 이곳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공장을 다니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한 이듬해 사법고시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2004년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후 두 번의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 당선됐다.

◆안철수 "사회개혁운동가"= 안 전 대표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청춘콘서트를 확대해 사회개혁운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안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기 직전 가졌던 직업이다.

안 전 대표가 삶의 여정에 택한 직업은 크게 세 가지다. 서울대 의대 출신에 만 27세에 최연소 의예과 학과장으로 잘나가는 의사였던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 V3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한 청년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어린시절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고 했다.

이후 2011년부터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벌였다. 당시의 세 번째 선택이 지금의 정치무대였다. 본인의 선택이었지만, '안철수 현상'으로 불리는 바람이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낸 모양새였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손학규 "연극배우"= 손 전 대표는 정치인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면 연극무대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 전 대표는 아마추어 연극배우다. 경기고 연극반 출신 모임인 '화동연우회'가 무대에 올린 <볼포네>에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학창시절 예술적인 기질이 넘쳤다. 1959년 경기중학교에 입학해선 밴드부에 가입해 트럼펫을 잡았고, 1962년 경기고에 진학한 후에는 연극부에 가입했다. 처음부터 연극부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1때 밴드부였는데, 연극이 재밌어 보여서 선배들에게 매를 맞고 연극반으로 옮겼다"고 했다.

손 전 대표가 '못 이룬' 꿈은 딸들이 이뤘다. 첫째 딸 원정씨는 연극평론가이자 연극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둘째 딸 원평씨는 영화감독으로 최근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승민 "경제학자"= 유 의원은 "경제학자"라고 답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경제학계에서 계속 활동했을 것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의 경제학자다. 당시 유 의원은 연구원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성과급 1위는 항상 그의 몫이었다. 그런 그를 정치권으로 영입한 건 이회창 전 총재였다.

이 총재는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유 의원을 데뷔시켰다. 정치권 '경제통'으로 불리던 그는 이제 '경제대통령'을 천명하면서 대선무대에 올랐다. 그는 "많은 대선후보들 가운데 경제전문가는 내가 유일하다. 경제위기를 막는 대수술을 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이충재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