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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후보들 공로자 줄세우다 이카루스 꼴 난다


입력 2017.03.27 04:42 수정 2017.10.16 09:5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허황된 공약 남발하다 국민 분노 사기 십상

당선후엔 저마다 공로자라며 빚 깊으라고 아우성

청와대 전경.ⓒ데일리안DB 청와대 전경.ⓒ데일리안DB

‘100% 대한민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내 걸었던 슬로건이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국가발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여겨졌었다. 모든 국민이 차별 없는 사회에서 함께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으로 들리기도 했다.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한 뜻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국민공동체’의 와해를 예감할 정도의 위기국면으로 점철됐다. 보수-진보의 갈등과 대립은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를 정치의 장에서 축출하기 위한 집요한 시도는 마침내 광화문광장의 촛불‧횃불집회로 타올랐다. 야당의 리더들, 유력차기주자들은 독전관으로 자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에 태극기집회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촛불집회를 수적으로 압도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야당과 진보진영, 그리고 대다수의 언론이 이미 ‘민심’을 촛불집회에 헌정한 후였던 것이다.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진보세력 측은 태극기 집회에서 나온 몇 마디 표현을 ‘극언’으로 규정하며 제압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타겟은 박 전 대통령의 헌재 대리인단에 속했던 김평우 변호사였다. 그는 지난 2월 22일의 헌재 최종변론에서 국회 탄핵절차의 합헌성 합법성 여부를 다룰 수 있는 기관이 헌재뿐임을 지적한 다음 이렇게 말을 이어 갔다.

“만일에 국민이 결정하도록 맡겨보세요.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정면충돌해서 우리 서울에 아스팔트길 우리나라 길들은 전부 피와 눈물로 덮여요.”

그 국민이 편을 갈라 거리에서 싸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 아니냐, 그러니까 헌재가 이 문제를 다뤄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헌재가 탄핵결정을 하면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는 위협으로 각색되면서 진보세력 측을 자극했고 언론들의 비판대상이 되었다.

김 변호사의 표현이 과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을 분명히 하고 말하자. 유감스럽게도 언론들은 촛불집회 측의 과격한 언사와 행동에 대해서는 별로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 야당 리더들의 경우도 이를 자제시키거나 스스로 조심하는 빛을 보인 적이 없다.

촛불집회에 단두대가 등장하고 효수당한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아래로 ‘민족의 반역자’라는 현수막이 드리워졌다. 전신을 결박당했거나 큰 칼 쓰고 감옥에 갇힌 박 전 대통령의 형상도 전시됐다. 상두꾼 수십 명이 상여를 매고 나서는가 하면 재벌 총수들이 죄수복을 입고 수갑 찬 그림들이 찬조출연(?)을 하기도 했다. ‘사회주의가 답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이석기의원 석방하라’‘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 ‘자본주의 위에 민주주의는 없다’ 등의 구호가 난무했다. 더 참혹한 표현의 전단지가 한 때 시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야당이나 언론은 이를 애써 외면하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언론의 입장에서는 집회의 어두운 면을 보도한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을 수가 있다. 그들은 관찰자 보도자의 입장을 떠나 행위자로 나섬으로써 스스로를 일종의 확증편향 틀 속에 가둬 버렸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00% 대한민국’이 얼마나 허황된 공약이고, 공허한 희망인지를 드러내 보이자고 시작한 글인데 서두가 너무 길어지고 말았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품었던 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만 보자면 이는 반민주적 발상이고 명제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성립한다. ‘100%’는 반자유주의적이고 비민주주의적인 언어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는 욕심을 내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풍조를 고취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일이었다.

5000만 국민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고, 모든 국민에게 행복이라는 선물을 베풀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게 아무리 선거 구호였다고 해도 과욕이거나 자기과신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그걸 훨씬 뛰어넘어 ‘신과 같은 대통령’을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통령직에 대한 이러한 오해, 혹은 인식의 결함이야말로 자신을 향한 극단적인 반대 및 도전이 상시화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방해한 심리적 장애요인이었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그는 ‘100% 대한민국’은커녕 ‘30 콘크리트 지지층’도 아우르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 오해는, 그러나 박 전 대통령만의 심리상태라고 하기는 어렵다. 역대 대통령은 물론, 대선 도전자들에게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어 온 성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30년이 되었다는(진보 측에서는 김대중 정부 이후 19년 정도를 민주 시대로 계산하는 모양이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런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국민주권’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진보 측의 리더들조차도 이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어느 유력 주자의 대선출마 선언문에서 확인하게 되는 바도 다르지 않다.

“상식이 상식이 되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그런 나라가 돼야 합니다. 정의가 눈으로 보이고 소리로 들리며 피부로 느껴지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으며 다름이 틀림으로 배척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튼튼한 자주국방으로 세계 어떤 나라도 두렵지 않은 강한 국가가 돼야 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자랑스럽게 마치면 학교와 일자리가 기다리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말 그대로 상식과 당연함의 재확인이다. 얼핏 들으면 아주 소박할 뿐 아니라 낭만적인 울림까지 있는 선언문이다. 즐겁게 피크닉이라도 가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난 18대 대선 때의 출마 선언문과는 많이 다르다. 영상에 담은 선언문이어서 그랬겠지만 길이가 훨씬 짧아졌고 내용도 경쾌해졌다.

그렇지만 이 후보 또한 민주국가의 대통령직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떨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공약을 당위론적이고 제3자적 입장에서 쓴 글처럼 들리는데 그 같은 표현상의 기교야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당위이면서도 인간 사회의 영구미제이기까지 한 이 오랜 염원들을 너무 쉽게 이뤄줄 것처럼 말한 게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그가 공약하고 있는 것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5년 단임의 대통령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사회‧국가이다. 그 약속을 지키자면 자신이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든가 아니면 국민 전체를 대통령의 지도이념과 정책 목표 안에 몰아넣어야 한다. 공약들이 객관적인 계측 검증 평가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자신의 임기 내에는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약속,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당선됐다. 그리고 그 공약에 발목 잡혀 우왕좌왕하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임기 후에는 실망한 국민의 분노와 조소에 시달려야 했다. 상상의 날개를 달고 이카루스 흉내를 낸 것이다.

공약을 하든 않든 국민들은 신의 역량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적인 문제부터 집단 사회 국가적 차원의 문제까지 온갖 민원을 들이밀게 마련이다. 모른 체 하다가는 배신자, 무능력자로 국민의 기억과 역사의 기록에 남을까봐 무리를 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사유를 그 때도 적용했다고 한다면 전직 대통령 중에 몇 명이나 무사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직을 상상 속으로 부터 현실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도 요구된다. 대통령직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자신이 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정해 착실히 가는 게 옳다. 무리하게 욕심을 낼수록 퇴임 날 국민적 원망 조소 비난의 소리는 더욱 커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긴 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좀 더 멋있고 좀 더 매력적인 공약’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우리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선 이후 마치 자신이 그 모든 공약을 다 이뤄낼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최대의 적이라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당선은 단지 더 많은 표를 얻은 결과일 뿐, 슈퍼맨의 탄생이나 신의 강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지 않으면 전임자들처럼 자기 과신의 늪에 빠지고 만다.

그 다음으로 큰 적은 열성 지지자, 당선 공로자들이다. 하나같이 빚 갚으라며 청구서를 내밀 게 뻔하다. 정치적 반대자를 상대하기는 오히려 편하다. 저마다 공적을 과시하면서 신세 갚으라고 나설 때 그들은 이미 정적보다 더 무서운 빚쟁이의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매몰차게 이를 외면할 경우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 전 대통령이 왜 사면초가에 빠졌는지를 돌아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말인데, 당선 즉시 공약을 재조정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공약의 족쇄를 벗는 길이다. 인수위원회가 가동될 수 있다면 거기서 해도 될 일이지만, 차기 대통령은 당선 즉시 취임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스스로 이를 선언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공약 타당성 검증 위원회’를 구성해도 좋겠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임기 내내 성층권에 머물다가 땅으로 추락하는 것보다는 당선 즉시 지상으로 내려와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훨씬 낫다. 자신에게도 국민에게도!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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