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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反正)에는 성공했다 치고 집권하면 그후엔?


입력 2017.03.20 04:51 수정 2017.10.16 09:5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탄핵 참여 언론 검찰 유죄 확정에 총력하는 이유

새 대통령은 박근혜를 반면교사로 아무것도 안하려들것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1472일만에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에 승용차를 이용해 도착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1472일만에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에 승용차를 이용해 도착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현직에서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이 형사 피의자로 내일 오전 검찰에 불려간다. 수백 명의 기자들과 카메라 플래시가 노리고 있는 포토라인을 통과해 검찰 청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4년 3개월 전의 12월 19일 밤, 그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선을 확인했다. 수많은 플래시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짐작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을 듯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취임은 형극의 길을 향한 문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온갖 시련에 부닥쳐야 했다. 격랑은 한차례로 그쳐주지 않았다. 밀려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시 닥쳤다. 연례행사를 겪듯 대형사건사고와 거칠고 집요한 도전들에 휘둘리며 3년 8개월을 겨우 견뎌냈으나 뒤쫓아 밀려온 탄핵쓰나미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광장의 함성과 촛불, 언론의 경쟁적 추적과 폭로, 야당들과 일부 여당 의원들에 의한 탄핵소추, 그리고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의 결정에 따라 마침내 대통령직에서 내동댕이쳐졌다. 광장의 군중은 그를 겨냥한 단두대를 설치했고, 그의 잘린 머리를 높이 매달았다. 옛날말로는 효수(梟首)다. 온갖 모욕이 말과 그림 등으로 가해지기도 했다.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는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며 압박을 가했다.

탄핵소추안이나 검찰 특별수사본부 및 특검의 수사결과가 얼마나 진실에 근접했는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주장되었고, 헌재가 검찰 공소장과 언론의 보도에 근거해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만큼 일단은 그쪽에, 그러니까 ‘박근혜 축출세력’쪽으로 정당성의 추가 옮겨져 있다.

다만 그것이 진실인지, 여론‧언론‧검찰‧헌재가 언제나 진리와 함께 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한 박 전 대통령의 믿음은 경험칙의 재확인이다. 물론 그것이 박 전 대통령 쪽일지 그 반대쪽일지는 알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의 예에 오버랩되는 것이 왕조시대의 반정(反正)이다. 반정은 “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새 임금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음”이라고 사전에 설명돼 있다. 왕조의 성씨 자체를 바꿔버리는 역성혁명과는 달리 해당 임금만을 몰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박 대통령 탄핵도 굳이 비유해 말하자면 야당 정치인들이나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말하는 ‘혁명’이라기보다는 ‘반정’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 두 번의 반정이 있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다. 그 저변에 어떤 동기와 의도가 있든, 성공한 반정을 주도한 세력은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된다. 두 반정의 주도세력도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정의를 독점했다.

연산군의 경우는 그 잔학성만으로 쫓겨나고도 남을 만했다. 반정세력이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이들이 반정의 이익을 독차지했다는 게 문제였다.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이, 요즘 흔한 말로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이에 비해 광해군 축출은 상대적으로 명분이 약했다. 그가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한 점이 반정의 빌미가 되었다. 죄가 작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보다는 당쟁이 폐위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과정도 권력투쟁의 한 양상으로 전개된 인상이 짙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이른바 보수‧진보진영 간의 오래고 격렬한 냉전적 투쟁이 열전으로 폭발한 결과였다고 하겠다. 그간에도 작은 폭발은 잦았다. 그게 되풀이되면서 폭발력을 키워왔고,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부각되면서 모두의 예상 또는 의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왕조시대 반정세력은 왕위 계승자를 미리 정해서 그를 옹립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번의 반정에서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주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폐위를 부추기고 독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측컨대 보수정당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 및 사회세력들의 동력을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최고도로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시 박 전 대통령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게 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을 최순실의 공범으로 단정한 수사 결과가 옳았음을 입증하기에 총력을 기울일 게 뻔하다. 탄핵소추에 참여했던 정당과 국회의원들, 언론과 사회‧정치세력들 역시 검찰수사와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유죄가 확정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마련이다. 그런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신들의 행위가 반정이 아니라 반역이 될 테니까.

헌재도 이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8대 0으로 탄핵을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후의 파장에 구애되었음을 말해준다(법률 비전문가의 추측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의 형사적 책임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 정치성 짙은 결정문을 작성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재판에서 혹시 무죄 판결이 나올 경우 헌재는 국민적 지탄과 저항을 면할 수가 없게 된다.

사법부 또한 난처한 입장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직은 구속영장을 발부해 준 정도의 개입을 했을 뿐이지만, 앞으로의 재판은 반정이었는지 반역이었는지가 판가름되는 중대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점 전제로 말한다면 향후의 수사는 물론 재판도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될 개연성이 크다(이 또한 비전문가의 예상일뿐이다).

보수세력이 정권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는, 자신들이 주도했던 탄핵의 정당성이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부인되는 상황을 정권적 차원에서 감내하려 할 리가 없다. 사법부로서는 설령 박 전 대통령에게서 사법적 징벌을 가할 만한 위법사실을 확인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무죄 선고에 따를 정권, 진보적 정치‧사회세력, 대다수의 언론, 검찰, 헌재 등의 반발로 인한 대혼란을 감당할 각오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 국민은 그간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을 받아 왔던 한 정치인의 몰락을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박 전 대통령은 ‘제왕적’ 권위와 권력을 누리고 행사한 통치자였을까? 천만에! 오히려 너무 약했기 때문에 당한 정치적 재앙이었다고 하는 게 진실에 더 근접한 평가일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용어와 개념은 아서 슐레진저 2세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통치 행태를 두고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랬던 슐레진저 조차도 “대통령직이 언제나 허약했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고 자신의 저서 '미국사의 순환'(정상준‧황혜성 역)에 쓰고 있다.

“루스벨트의 비서였던 조나단 다니엘스는 ‘이론적으로 명령과 마찬가지인 대통령의 제안 사항 가운데 절반은 내각의 각료가 잊어 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후일 회상했다. 해리 트루먼은 아이젠하워에 대해 ‘그가 여기에 앉아 이걸 해! 저걸 해!라고 말하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황제와 같은 대통령직이 닉슨에게서 절정에 달했지만, 그는 만성적이고 모욕적인 좌절 상태에서 살았다.”(위의 책)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발생한 온갖 사건사고로 편한 밤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의회는 거대한 권력이 되어 대통령직을 딛고 올라서는 형국이 되었다. 주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었지만 그로서는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주도하다시피 만든 법이었던 탓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이 자신의 구상과 계획과 의지로 할 수 있는 국가적인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처지가 그러한데도 대통령은 신(神)이거나 최소한 슈퍼맨이 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박 전 대통령에게도 온갖 민원이 ‘민심’ 또는 ‘민의’의 이름으로 밀려들었을 게 틀림없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서 슐레진저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링컨 대통령에게 어떤 친구가 악수하느라고 피곤하겠다고 말하자 링컨은 ‘손을 잡아당기는 것은 내가 나의 권한으로 어떤 청원을 들어 줄 수 없을 때 가슴이 아픈 것보다는 훨씬 견디기 쉽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벤저민 해리슨이 이 말을 전한 사람인데, 그가 덧붙인 바에 의하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전국 각처에서 왔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여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모든 어려움에 대통령이 개입하고 그들을 보호해 주기를 요청했다.”(위의 책)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그 늪에 빠져 버렸거니와 차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말은 새겨들어둘 일이다. 이제 대통령의 ’선의‘ 따위는 소용이 없게 됐다. 대통령의 통치권적 재량권이라고 여겨 이런저런 건의, 청원 등에 응했다가는 바로 헌재행이 될 수 있다. 주변에 자문변호사를 1개 사단쯤 두고 사사건건 유권해석을 받아 처리하는 게 그나마 정해진 임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다. 더 좋은 것은 ’무위‘(無爲)다. 뭔가 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최상의 보신책일 수 있다. 어쩌다가 이런 말을 조언이라고 하게 되었는지, 혼자 생각에도 기가 막힌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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