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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맷집'과 김문수 '대의', 오세훈 '배수진'…엇갈린 운명


입력 2017.03.20 06:30 수정 2017.03.20 14:08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정치인, 비난여론 이겨내며 제 궤도 지키는 맷집 필요

김문수 '대의 희생', 오세훈 '배수진 재해석' 아쉬워

19대 대선 후보 등록일(4월15~16일)을 고작 25일 남겨둔 지금, 보수 진영은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1차 컷오프 통과자 홍준표·김진태·안상수·원유철·이인제·김관용 6인, 바른정당 경선주자 유승민 남경필 2인 등 총 8명 중 유의미한 지지율이 나오는 후보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15일 황교안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7.1%, 유승민 4.8%, 남경필 1.8%에 불과했다. 세 사람 모두 합쳐도 13.7%에 그친다. 더불어민주당 2위인 안희정 16.8% 한 사람 지지도에도 못 미친다. 문재인 37.1%, 이재명 10.3%과 함께 3인 지지도를 합치면 64.2%로 과반이 훨씬 넘는다.

보수후보들이 맥을 못추는 기본적인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영향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자질과 역량, 도덕성 면에서 민주당 주자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도 스스로 묘혈을 판 광역단체장 출신 주자들이 몇 있다. 본인들의 한순간 그릇된 판단으로 정상에서 추락, 끝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여서 정치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15일 불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다. 그는 불출마의 변으로 "그동안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각하 및 기각을 주장했으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함을 채우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설 연휴가 끝나면 대권도전을 공식 선언할 것”이라고 밝힌 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며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끝내 출사표를 던지지 못했다.

김문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을 주장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문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을 주장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문수, 경기지사 3선 불출마 치명적 패착

김 전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한 게 치명적인 패착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불출마 사유로 ‘3선 지사 임기는 2018년6월까지나 새 대통령 임기는 2018년3월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들었다. 도지사 임기를 다 못 채우고 4개월 먼저 나오는 데 대해 스스로 용납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 "자치단체장은 천재지변 등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임기를 마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큰일을 앞두고 대의를 존중하는 군자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 도지사직을 안고 출마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시달렸던 경험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후 김 전 지사는 지금까지 대선정국에 이르는 2년 9개월간을 온전히 버티지 못해 잠룡에서 이무기로 전락했다. 도중에 지난해 4월 20대 총선에서 이한구 전 의원이 물러난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것은 추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다.

시간을 잠시 2014년 봄으로 되돌려 그가 살짝 생각을 달리 했더라면 지금쯤 남경필 경기지사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도지사직을 깔고 앉아 현직 프리미엄을 맘껏 누리면서 대권가도를 거침없이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남 지사와 달리 아마 보수 후보들 중에선 선두로 내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 춘추시대에 군자를 운운하며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고 여유를 부렸다가 싸움에서 대패한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오세훈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오세훈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오세훈, 무상급식 배수진에 익사

김 전 지사보다 더 미련스런(?) 선택으로 대권 도전이 좌절된 보수진영 정치인이 또 있다. 지난 1월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그 경우다. 오 전 시장이 공직에서 물러나 야인이 된 시점은 지난 2011년8월로 김 전 지사보다 3년이 더 앞선다. 당시 여소야대인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을 강행하자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로 맞불을 놓았다. 이어 주민투표 투표율 저조가 우려되자 시장직까지 걸고 치킨게임을 벌였으나 결국 정면충돌로 묵사발이 됐다.

당시 같은 문제에 봉착했던 김 전 지사는 무상급식 대신에 ‘친환경 급식비’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배정, 경기도의회와 정면대결을 피했다. 김 전 지사는 오 전 시장을 겨냥해 “애들 밥 안 주는 게 보수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주민투표 강행을 평가절하했다. 세인들은 김 전 지사가 정치력에서 오 전 시장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두 정치인은 미련함에서 ‘오십보 백보’였다.

이에 비해 지금 여론조사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뚝심과 배짱은 보수 주자들이 가히 본받을(?) 만하다. 때론 여론의 비난 공세를 적당히 받아넘기고, 때론 유연하게 장애물을 피해 간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서 치른 첫 선거인 2015년 4·29 재·보선 결과 완패를 기록하자 거센 책임론에 직면했다. 국회의원 선거구 4곳 모두 새누리당에 넘겨준 배경에는 당 공천 실패가 주 원인이었으나 당시 문 대표는 사퇴를 거부했다.

그해 10월28일 재보선. 문 전 대표가 당 대표로서 두 번째 치른 선거에서도 민주연합은 대패했다. 기초단체장 1곳과 지방의원 선거구 23곳 중 새누리당이 15곳에서 승리한 데 비해 민주연합은 단 2곳에서 이기는 데 그쳐 책임론이 다시 불거졌다. 그러나 당시 문 대표는 “재보선 결과는 저희가 많이 부족했다. 더 겸허하게 노력할 일이다”라는 한마디로 사퇴 요구를 뭉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6일 오전 마포구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전국 지역맘카페 회원들과의 만남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6일 오전 마포구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전국 지역맘카페 회원들과의 만남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문재인 "호남 지지 거두면 정계 은퇴, 대선 불출마" 광주 발언 불이행

이후 결정적인 자충수는 2016년 4월8일 20대 총선 직전에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를 하고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호남민심을 향해 ‘배수진’을 쳤다. 오 전 시장의 무상급식 배수진과 비슷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광주, 전남․북 28석 중 국민의당이 23석을 석권하고 민주당은 겨우 3석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계은퇴도 거부했고 대선 불출마 약속도 안지켰다. 그는 훗날 “호남의 지지를 받고 싶은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드린 말씀"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정치인은 언행이 신중해야 하고 내뱉은 말에 대해선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쏟아지는 여론의 매질을 이겨내며 자기 궤도를 지킬 수 있는 '맷집'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김 전 지사가 문 전 대표처럼 주위 이목을 덜 의식하고 대의를 조금 희생할 생각을 했더라면, 오 전 시장이 문 전 대표만큼 배수진의 의미를 융통성 있게 해석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보수진영에도 문 전 대표에 비견할 대권주자들이 몇몇 활개를 치고 있을 텐데…아쉬울 따름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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