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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배신자는 안 돼”, “홍준표 지켜봐야”…TK 민심 어디로
"유승민 평가 너무 안좋다. 그렇다고 딱히 누굴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의 본산 TK 민심은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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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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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희 기자(jhyk777@dailian.co.kr)
▲ 바른정당 대선 경선 유승민(왼쪽) 후보와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홍준표 후보. (자료사진) ⓒ데일리안

지난 주말 서울에서 12시 30분 KTX에 올라 2시 20여분 동대구역에서 내렸다. 동대구역사 대합실 안에는 주말을 맞아 상춘객들로 붐볐다. 기차시간이 아직 여유 있는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이내 50~60대 어르신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뉴스를 통해 서울 삼성동 박 전 대통령의 사저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70대 한 할머니는 TV를 보며 “우야꼬”를 연신 내뱉으며 손수건으로 연신 눈시울을 닦아냈다. 이를 보고 있던 할머니의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됐다. 그마 해라”라며 역정을 내며 씩씩거렸다.

동대구역을 나서자 날씨는 완연한 봄이 됐지만 미세먼지로 시야는 탁 트여 있지 않았다. 동대구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운전 중인 권모(66)씨는 ‘서울에서 왔냐’며 ‘무엇 때문에 왔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묻자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답했다. 재차 질문하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70~80%가 아무 죄도 없는데 탄핵해야 한다고 했겠냐”고 말했다.

권씨는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빨갱이라고 할 수 없지만 너무 친북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거 막기 위해서라도 투표는 꼭 할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까지 나온 보수후보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가 묻자 “나는 유승민은 나쁘게 보지 않는데, 대구에서 배신자라는 딱지가 붙어 힘들 것으로 본다”며 “문재인과 싸워서 이기려면 이길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해야지”라고 답했다.

▲ 지난 18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정식을 가진 뒤 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홍준표 후보 캠프 제공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찾았던 대구 서문시장은 보수진영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컸다.

서문시장 도로변 좌판에 앉아 수제비들 드시던 70대 할머니 두 분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하자 “서울에서 왔능교? 뭣하러 왔는교”라고 되물었다. 취재차 내려왔음을 알리면서 보수진영에서 유력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홍준표 후보에 대해 물었다. 두 할머니들은 “누고? 홍준표? 좀 지켜봅시더”라며 이내 자리를 떴다.

자리를 옮겨 서문시장을 둘러보는 중 정치이야기를 나누는 커튼 장사를 하는 이모씨(66)와 건어물 가게를 하고 있는 허모씨(70)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 대한 반감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는 호감을 표했다.

허씨는 “유승민은 이제 글렀다. 대구에서 정치는 끝났다”며 “대구에서 누가 찍어주겠노”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씨는 “박 대통령 탄핵은 사실상 유승민이 한 것 아니냐”며 “대구사람들은 의리를 중요시 생각하는데 대통령하겠다고 배신하고 뛰쳐나갔는데 누가 그 말을 듣겠냐”고 되물었다.

이씨는 “탈당만 안하고 있었으면 유승민이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결국 (바른정당으로) 탈당하니까. 헌법재판소에서 8대 0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라고 격정을 토해냈다.

홍 후보에 대해서 허씨는 “호전적이긴 한데 사람 참 괜찮아 보인다”고 평가했고, 이씨도 “뚝심 있고 당당해서 좋다. 그나마 보수에서 문재인과 싸워볼 만하다”고 호평했다.

서문시장에서 박 전 대통령 옹호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산가게를 운영 중인 구모씨(67)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했다”며 “대구 시민들은 대부분 탄핵반대 입장이지만 난 다르다. 오히려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씨는 “이제 정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대구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탄 택시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기사는 “대구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오히려 대구사람들은 안나간다. 관광버스 수십대가 경남에서 올라와 마치 대구사람들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것처럼 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기사는 “모임에 나가보면 유승민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안좋다. 그렇다고 딱히 누굴 지지하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며 “대구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TK는 무조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공천만 받으면 찍었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그들이 한 것이 뭐가 있냐”며 “이번 일들을 계기로 TK라고 무조건 찍어주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의 민심의 시계(視界)는 이날 대구의 하늘처럼 멀리 내다보기 어려웠다.[데일리안 = 한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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