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2017년 지금이 '동지'라면 2029년에나 '경칩'이 온다


입력 2017.03.19 08:05 수정 2017.03.19 10:18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변화하는 글로벌과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경기도 평택항에서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경기도 평택항에서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은 2012년으로서 일단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좀 쉬어갈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간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놓친 것도 많았고 미처 챙기지 못한 많은 것들도 많았으니 그냥 그대로 가기엔 큰짐이 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되돌아보고 뒤돌아볼 때인 것이다.

앞의 글 “고속으로 되돌려본 글로벌의 변화”를 통해 커다란 환경변화들을 살펴보았으니 이를 바탕으로 보다 큰 시각에서 우리의 과거를 반추해보고 장차 나아갈 바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가 오늘날처럼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근본 배경 혹은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냉전(Cold War), 미국과 소련 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반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0년 초까지 장장 반세기(半世紀)에 걸쳐 진행된 긴장과 대치국면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에 있어 더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쪽에선 독일을 경계로 대치했고 동쪽에선 우리 한반도의 휴전선을 경계로 대립했다. 물론 6.25 전쟁은 참으로 끔찍한 비극이었지만 절반의 우리에겐 큰 전화위복이 되었다. 냉전 구도 하에서 미국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해줌과 동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원과 관심 속에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란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무수한 방면에 걸쳐 선진 문화와 기술을 수용함으로써 발전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될 수 있었던 제1원인이라 하겠다.

두 번째 원인은 남쪽의 대한민국은 바다에 접해있는 까닭에 선진의 서구 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이기에 용이한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양세력이 대륙세력을 리드하는 시대라 하겠다.)

해양세력에 속하는 일본의 경우 비록 미국에게 패망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우리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월등한 선진국이었다는 점, 아울러 자원부족 국가인 일본의 발전 모델은 동일한 상황의 우리에게 있어 더없이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어주었다.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즉 중화학 공업 육성을 통한 수출입국(輸出立國)의 모델이 그것이다. 그 까닭에 우리는 열심히 일본의 제도와 문물 그리고 기술을 흡수하면서 일본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초기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7억 5천만 달러의 청구권 자금은 당시로선 실로 막대한 것이었기에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결정적인 활로가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의 예산규모가 15억 달러였으니 그 절반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무렵 일본으로부터 받은 한일경협 명목의 40억 달러 차관 또한 당시 외환부족으로 인해 사실상 국가부도 일보직전에 처했던 우리에게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냉전 구도 속에서 최전선에 위치한 우리를 지원해야 하는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이제 마지막이자 세 번째 원인에 대해 얘기해보자.

6.25 전쟁 이후 우리는 근본적으로 폐허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전적으로 새롭게 출발했다는 점이다. 전 국민이 헐벗고 굶주린 상태였기에 생존에 대한 욕구 나아가서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의욕은 실로 대단했다.

대개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경우 문화나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존재하는 기득권이 발전의 장애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 역시 기득권층이 공고했더라면 결코 과감하고도 신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런 기득권 계층이 일제통치와 전쟁을 거치면서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기에 창조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그 결과 우리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일종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발전과 쇄신의 동력을 얻은 결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앞의 얘기처럼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선진 해양문물의 수용, 그리고 無(무)에서 출발했기에 가능했던 창조적 혁신, 이 세 가지가 오늘날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근본 배경이고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 얘기할 차례가 되었다.

우리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 결과 2002년부터는 전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코리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간에 늘 따라다니던 개발도상국이란 딱지를 떼고 사실상 선진강국의 반열에 들어섰으니 오랜 숙원을 달성한 셈이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 20 정상회담은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었음을 공식 선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2009년은 우리 국운의 입동(立冬), 즉 겨울이 시작되는 때였고 2012년은 국운의 소설(小雪)이었다. 모든 사물은 입동에서 소설 사이에 겉모습이 가장 빛나는 법이기에 이 무렵 우리에 대한 세계 각국의 성가(聲價)는 최고 절정에 달했다.

한 예로서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흥행몰이가 가능했던 것에는 물론 개인의 역량도 컸겠지만 그 바탕은 어디까지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높아진 까닭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그간에 누적된 수많은 문제점들이 바로 그 무렵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사 참으로 묘하고 또 묘하다 하겠다.

우리가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던 2002년 무렵부터 우리 내부는 양극화가 시작되었고 10년이 흘러 2012년이 되자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맹렬한 기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가장 뜨거운 이슈로 대두된 것 또한 그런 연유에서였다.

이 글의 첫 머리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은 2012년으로서 끝이 났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우리 국운이 그때로서 소설(小雪) 즉 겨울이 깊어가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부터 성장률은 정체되었고, 덩달아 가계의 실질 소득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길이었다. 가계대출 증가를 통한 부동산 경기 유지와 수익성 없는 좀비기업들에 대한 자금수혈이 사실상의 전부였다. (대우조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이제 더 이상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어났고 그 결과 가계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 이상 투자할 곳을 찾기 어려워진 기업들은 몸을 움츠렸고 그 결과 일자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청년백수 시대가 일반화되었고 노조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훨씬 더 강경해졌고 보다 더 무리한 요구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제 그나마 버팀목은 수출이라 하겠는데, 이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 닥친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한 보호주의의 대두와 또 한편으로 중국의 추격으로 인해 우리 수출은 가일층 힘겨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이제 금리를 인상해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그간 저금리로 인해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점들 즉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과 부실 리스크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에 거의 모든 국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2017년의 오늘이다.

올해 2017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우리 국운의 동지(冬至)이고 동지는 빛이 가장 짧은 때라서 나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가장 암울한 때가 된 것이다.

아직은 그럭저럭 이어가고는 있지만 지금 그렇다는 것일 뿐 향후의 길과 방향에 대한 전망이 참으로 암울한 때가 되었으니 동지(冬至)인 것이다.

한 해의 운행을 지켜본 이는 알겠지만 추운 겨울 즉 엄동(嚴冬)은 동지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 또한 올해로서 국운의 초겨울을 보내고 늦겨울의 맹추위를 맞이할 것이다. 진짜 겨울이 이제 시작될 참이다.

또 지내봐서 알겠지만 동지부터 찾아오는 추위는 3월 초까지도 이어지고 그 이후로도 두어 번의 꽃샘추위가 이어진다. 그러니 우리 국운의 추위 또한 국운의 경칩(驚蟄)이 되는 2029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올해부터 12년간의 추위가 된다는 얘기이다.

그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춥고 힘들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냥 춥고 힘든 기간만은 아닐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우리는 또 다시 탈태환골(奪胎換骨) 즉 근본 기본 체질을 바꾸고 기본 틀을 새롭게 바꾸는 일을 단행하게 될 것이다.

개혁은 몇몇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에게 절대 그럴 능력이 없다. 개혁이란 것은 전 국민 모두가 더 이상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종의 자체 외과수술과도 같은 것이다.

나 호호당은 우리 국민이 정작 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런 개혁을 해낼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간 큰 대한민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이 다시 길어지는 바람에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이에 다음 글에선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길에 대해 큰 테두리에서 스케치해봄으로써 이번 주제를 매듭짓고자 한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