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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불복? 청와대 나온 게 '승복'…그만 비틀자


입력 2017.03.13 04:48 수정 2017.10.16 10: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검찰 수사 앞두고 탄핵사유 인정하라고?

헌재재판관들 담합 의혹...'역사의 법정은 없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1472일만에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앞에 도착해 마중나온 친박 의원들 및 전 청와대 참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1472일만에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앞에 도착해 마중나온 친박 의원들 및 전 청와대 참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웃과 지지자들, 그리고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환호와 박수갈채에 싸여 떠났던 그 길을, 4년 15일 후에 메운 것은 태극기 물결, 지지자들의 분노에 찬 함성이었다.(이들은 대선 때까지 사저 주위에서 농성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집 앞에서 차에 내려, 잠시 측근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언급이었다. 절제되고 정제된 말에서 고심의 흔적, 그리고 그의 눈물이 묻어났다. 그간에도 박 전 대통령의 ‘승복’ 여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일부 언론은 이 메시지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 ‘승복’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순간(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그는 대통령이 아니게 되었다. 승복을 선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복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언론도 있던데, 그건 과한 비틀기다. 불복이라는 것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겠다며 농성할 경우를 두고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법이 정한 바에 순응한 것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사유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정할 생각이 있을 리 없다. 자신이 파면 당할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음은 그간에도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이는 그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서 명시적으로 ‘승복’의 의사를 밝힐 경우 예상치 않았던 후유증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축약’ 혹은 ‘거두절미’를 특징으로 하는 언론 기사에서는 “박 전 대통령 죄과 시인”으로 표현될 위험성이 다분하다고 하겠다.

박 전 대통령에겐 이미 뼈아픈 경험이 있다. 작년 10월 24일 저녁 JTBC가 뉴스를 통해 이른바 ‘최순실의 태블릿PC’를 폭로했을 때까지는 수습의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바로 다음날 대국민 사과를 해 버림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니트로글리세린 한 방울을 떨어뜨린 바람에 집 전체를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사실 ‘승복’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시키지 않는데 입으로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파면당한 사람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호통치면서 그 죄과를 통회(痛悔)하고 떠나라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유배를 당해 가면서도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라며 북향사배(北向四拜)를 해야 했던 왕조시대도 아니고….

어쩌면 탄핵으로 몰아댄 사람들이 심적 부담을 덜기 위해 그렇게 주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혹은 우리가) 억지로 쫓아낸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파면당한 것일 뿐이다. 그걸 본인도 아니까 승복한다고 말한 것 아니겠는가.”

이에 앞서 헌재는 10일 11시에 박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모범생이 교과서를 낭독하듯 또박또박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우선 사건의 진행경과부터 설명했다. 그 마무리 부분이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시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합니다.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진 오늘의 이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헌재 재판관들이 8명 전원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키로 했으면서 왜 판결문에다 이처럼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전문(前文)을 두기로 했을까? ‘역사의 법정’이라니까 작년에 타계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웅변이 생각난다.

“나는 70여 명의 내 동료들을 살육한 야비한 독재자의 광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감옥 역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시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

그는 1953년 동지 156명과 함께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는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체포돼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의 쿠바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쿠데타였다. 이 법정에서 그가 행한 최후 진술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는 55년에 특사로 풀려났다. 58년에 마침내 친미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권을 성립시켰다. 그 후로 50년간 쿠바를 통치한 다음 2008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미국 자본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대신 쿠바 국민들에게 오랜 혼란과 심한 가난을 맛보였다.

그 역사의 법정에 우리의 헌법재판관 전원이 당사자로 선 심정이라고 했다. 그만큼 진지하게, 자신의 양심이 시키는 바에 따라 재판에 임했다는 뜻이겠는데,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물론 그 말에 감동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법정’ ‘역사의 심판’이란 표현 자체가 허황하다. 역사라는 것이 법정을 열어놓고 인간의 공과를 판결하는 일 따위는 없다. ‘염라대왕이나 하데스의 심판’ 만큼이라도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가 폴 존슨은 ‘세계현대사’(이희구 외 역)에서 말한다. “역사라는 인간은 없다. 판결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다.”

헌재 재판관들의 자기 심판은 이미 자신의 양심에 의해 내려졌다. 거리낄 게 전혀 없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굳이 판결문에 자신들의 법정이 아닌 역사의 법정을 끌어들일 까닭이 없지 않은가. 혹 마음에 조금의 구애라도 있다면 이 또한 자신의 양심에 의해 이미 심판되었을 일이다. 역사 핑계를 댄다고 마음의 짐이 덜어지겠는가.(참고로 ‘역사의 심판’이란 표현은 주로 독재자들이 즐겨 썼다. 역사에 미뤄 버리면 당대엔 아무도 자신의 과오를 지적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부분도 많이 어색하다. 그건 정치인들의 몫이고 광장 국민의 몫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정치인도 교사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걱정까지 했을까? 탄핵소추안이나 헌재의 판결문이나, 대통령을 파면시켜야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고 헌정질서가 회복된다는 뜻을 담은 것 아니던가? 그래서 그렇게 선고했으면 이 또한 그것으로 된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성 짙은 희망사항을 피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혹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과 판결문에 대해 일말의 회의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게 아니라면 판결문에 이런 군더더기를 붙일 까닭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대통령을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 탄핵할 명확한 근거가 있다고 해도 ‘8대 0’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결과다. 그래서 이런 의심도 하게 된다. 야당들의 서슬과 광장 민중의 기세로 보아 ‘기각’이나 ‘각하’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로 뽑힌 현직 대통령을 임기 1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 파면한다는 것도 부담이 너무 크다.

그래서 결국 정치성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기각’보다 ‘인용’의 위험부담이 적다. 그런데 소수 의견을 첨부하게 되면 피청구인은 물론이고 태극기집회 측에서도 이를 빌미로 반발하기 십상이다. 이왕이면 공동책임의 형식을 취하는 게 낫겠다. 운을 ‘역사’에 맡기고 공동책임으로 하자. 혼자 해보는 상상이지만, 그렇게 뜻이 모아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탄핵사유로 지적된 구체적 사항들에 대해서도 의문이 없지 않다. 설령 헌재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고 해도 그것이 대통령의 통치권적 재량권의 한계, 또 정치적 관행을 크게 벗어난 것인지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려와 배려가 있었을까. 검찰이 ‘최순실의 공범’으로 적시함으로써 피의자의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의 수사 비협조를 문제 삼은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가 어떻게 징벌, 그것도 ‘대통령직 파면’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과문한 탓에 수긍이 안 된다.

당연히 대통령이라도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헌정질서를 심대하게 훼손했다면 파면해야 한다. 따라서 정말 그러한 확신으로 판결했다면 헌재 재판관들은 ‘역사’에 기대거나, ‘분열과 혼란 종식‧화합과 치유’를 주문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당히 말할 일이다.

“우리 각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판결을 했다. 우리는 결코 담합 식으로 재판관들의 의견을 일치시키지 않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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