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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이 정권 바뀔때마다 되풀이 되는 나라


입력 2017.02.27 04:31 수정 2017.10.16 10: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대한민국 민주정치 파탄 막으려면 개헌해야

누가 대통령 되든 정당성 부정당하는 사활적 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을 맞은 25일 대한문 및 서울 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제14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왼쪽)와 광화문 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자유한국당 해체, 특별검사 수사기한 연장 등을 촉구하는 제17차 촛불집회(오른쪽)가 각각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을 맞은 25일 대한문 및 서울 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제14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왼쪽)와 광화문 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자유한국당 해체, 특별검사 수사기한 연장 등을 촉구하는 제17차 촛불집회(오른쪽)가 각각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리인단이 26일 헌재에 이 뜻을 전했다고 한다. 아마도 출석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79일간 엄청난 중압감을 안겼을 재판이다. ‘한없는 이 심사’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박 대통령에게 헌재 법정은 정글이나 다를 바 없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눈에 불을 켜고 벼르는데다 재판관들의 기세도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마음속에 뒤엉켜있는 소회의 일단을 밝히자고 갔다가 되레 질타 추궁 조롱 억측에 짓이겨질 수도 있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 이제쯤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더욱이 옆에서 살뜰히 챙겨 줄 배우자도 없는 홀몸의 여성 아닌가. 어쩌면 절대고독의 오랜 경험이 오히려 버티는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떳떳하다면 헌재에 나가서 당당히 결백을 주장하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진실을 밝히는데 주저하고 두려워할 일이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박 대통령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그러기를 바랐을 것 같다. 흔들림 없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출석 기피를 이해하게도 된다. 다시 소크라테스 이야기다. 당시엔 검찰의 기소독점권 따위는 없었다. 시민 모두가 기소권을 가졌다. 고소 고발이 곧 기소였다. 그리고 변론은 피고 자신의 몫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변론’이 바로 그 같은 재판 제도의 산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무슨 사형을 받을 만한 죄를 지었겠는가. 그는 지독히 가난한 거리의 현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시민 세 사람이 ‘나라의 신을 믿지 않고 청년을 타락시킨 죄’를 물어 그를 고발했다. 사실은 법정에 갈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의 아테네 상황이 그에게 아주 불리했다.

BC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괴뢰정권인 30인 참주의 지독한 폭정을 경험해야 했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민주파 시민 1500명이 학살당했을 정도였다. 민주정 회복 후 시민들은 참주정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스파르타의 귀족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참주정의 지도자였던 크리티아스와 그의 동료 카르미데스를 제자 겸 친구로 두었었다.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미워할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했지만 거기에 더해 그는 아테네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조롱했다. 자신은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있지만 현자로 행세하는 인사들은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 자신이 무지하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는 거짓 현자들이라고 매도했으니 무사할 리 없었다.

법정에서라도 고분고분했으면 벌금형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501명의 재판관을 앞에 두고 유장한 웅변을 토했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게 아니라 재판관들을 가르치듯 했다. 재판결과가 사형에까지 이른 게 그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자기변론을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비판자 적대자들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가 있겠는가. 이들은 오히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꼬투리를 잡기에만 몰두할 게 뻔하다. 최근에 와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집회가 서울 도심과 전국 주요도시의 거리를 뒤덮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년 10월 24일 저녁 JTBC TV의 폭로 방송과 다음날의 박 대통령 사과담화가 만들어 놓은 크레이터를 덮어 버리기엔 역부족이다. 박 대통령도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직접 변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혹 박 대통령이 별도로 대국민 담화나 ‘정규재 TV와의 대담’ 같은 형식을 빌려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나오고는 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민심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선택할 까닭이 없다. 헌재의 결정을 담담히 기다려 보겠다고 결심했을 개연성이 높다.

아직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그간의 헌재 측 처사로 미루어 ‘탄핵소추안 인용’쪽인가 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단할 일은 아니다. 아무리 민심에 큰 충격을 안긴 사안이었다고 하더라도 임기를 겨우 1년 남기고 있는 현직 대통령을 재판관 8명의 심리와 6명 이상의 찬성만으로 밀어내는 게 쉽겠는가.

대통령의 폭정으로 국민이 상시적인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게 아니다. 맹자의 혁명론은 그 대상이 폭군임을 전제로 한다. 근대적 의미의 혁명도 그 배경은 대동소이하다. 백성 또는 국민이 폭군이나 독재자, 폭력적인 지배계급의 압제로 인한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저항해서 구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가치체계를 확립하는 게 이른바 ‘혁명’이다.

물론 헌법이나 법률을 심대하게 위반해서, 민주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대통령도 추방의 대상이 되긴 한다. 그런데 그것은 현존하는 위태로움이다. 예방적 탄핵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탄핵은 국회권력과 대통령권력의 충돌이라는 양상으로 급속히 전개됐다. 이 점은 훗날 정당성 적절성 적법성의 측면에서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태극기집회 쪽에서는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경우, 그러니까 대통령을 쫓아낼 경우 저항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하는 실정이다. 이미 이 집회를 주도해 온 탄기국(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행동본부)은 지난 18일 집회에서 ‘국민저항본부’로 개편한다고 선언했다.

대통령 측 변론인인 김평우 변호사의 변론 내용이 법리적으로 이들의 운동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는 탄핵소추가 원천적으로 잘못됐고 그 내용이나 절차도 헌법과 법률에 크게 위배되었다고 조목조목 따져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정해진 일정에 짜 맞추기식 재판을 강행,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헌법 재판관들에 대해서도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비판을 가했다.

야당과 언론들은 일제히 그의 과격한 언사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아무래도 불복 저항 투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간의 대결양상이 너무 격해졌기 때문이다. 비단 태극기집회 측만이 아니라 촛불집회도 자신들의 기대에 반하는 결정이 나올 경우 수용하려 할 리가 없다. 이젠 횃불 시위대가 청와대로 행진하며 퇴진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12월 광주를 찾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시민들에게 “촛불을 횃불로, 횃불을 들불로 키워달라”고 했다더니 점점 그런 양상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불복종 투쟁은 일단 시작되면 헌재 결정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투쟁은 헌재→대선→차기 정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출범도 하기 전에 그 정당성을 부정당하는 사활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 문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과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조속한 탄핵과 함께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를, 헌재 결정이 임박한 지금에도 여전히 압박하고 있다. 일전엔 여야 정치권 쪽에서 ‘자진 사퇴론’이 제기돼 잠시 언론에 거론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정치인들이 사퇴를 요구하는 까닭은 또 뭘까?

어쩌면 탄핵의 후폭풍과 스스로의 죄책감(이게 거북하게 들린다면 부담감)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일 것도 같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에 축출하게 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쇼킹한 폭로가 있었고, 이를 기회삼아 국회는 촛불집회와 언론들의 비호(?) 하에 전격전을 벌이듯 탄핵소추를 해치웠다. 따라서 격렬한 저항을 면키 어렵다. 게다가 두고두고 법적 정치적 도의적 재평가와 비판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탄핵을 서둘렀던 국회의원들로서는 부담이 없을 수 없다. 차기 주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직 대통령을 급급히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확산될 때 각자의 처지가 아주 곤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해결책은 박 대통령이 알아서 나가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마음의 짐을 덜게 된다. “자기 발로 나가지 않았느냐. 죄가 있으니 알아서 나갔겠지”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박 대통령의 결심은 확고한 것 같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겠다. 그 이전에 사퇴는 없다. 후에 사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법정에서 싸우겠다. 잘잘못을 그 때가서 분명히 가려보자.” 그렇게 마음 먹은듯한데, 기실 달리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민심을 생각해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 역사에 남기는 것 또한 리더의 덕목이고 책무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처지도 처지지만 나라의 앞날도 캄캄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다가 대통령 탄핵이 상시화하지나 않을까 해서 지레 공포스럽다. 이를 피하는 길은 개헌뿐일 것 같다. 원래는 5년 단임의 현제도를 앞으로도 한 20년쯤을 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한국 민주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불가피해 보인다.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러는 분도 있겠지만 4년만의 탄핵이 3년만의 탄핵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반대만 할 일도 아니지 않을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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