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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우유 산업의 역사 '서울우유'


입력 2017.02.25 06:00 수정 2017.02.25 08:18        박지수 기자

[브랜드 100세 시대⑰-끝]서울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

서울우유협동조합 국내 우유시장 점유율 33.5%

최초를 거듭하며 품질 개선에 앞장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지난해 3월 선보인 '나100%우유'.ⓒ서울우유협동조합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지난해 3월 선보인 '나100%우유'.ⓒ서울우유협동조합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제품을 증량한 1985년부터 2015년 말까지 국민이 마셔온 200㎖ 우유는 700억개에 달한다. 팩을 일렬로 세워 나열하면 지구 78바퀴를 돌고도 남으며, 서울우유협동조합의 국내 우유시장 점유율은 33.5%(지난해 9월 기준, 링크아즈텍 자료)에 달한다. 생산실적 1조원 이상의 7개 식품 업체 중 유가공업체에서 유일하게 4위에 올랐다.

1937년 7월 직접 목장을 운영하던 낙농인 21명은 서울 정동에 현판을 내걸고 출발한 서울우유의 전신 경성우유동업조합을 세웠다. 낙농인들 손으로 근대식 우유 처리장을 갖춘 조합을 세우고 국내 우유 산업을 일구기 시작한 것.

서울우유협동조합에 따르면, 경성우유동업조합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유를 가마솥에 끓인 뒤 일본에서 수입한 병에 담아 가정에 건넸다. 경성우유동업조합은 1945년 9월, 서울우유동업조합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서울우유 판매에 나섰다.

1950년대 서울우유동업조합은 우수한 젖소 종자(종모우) 확보를 위해 종부사업과 손잡고 젖소 진료시설(수의무실) 설치, 낙농기술 지도 등 젖소개체 관리에 힘썼다. 1961년엔 유지방의 소화를 돕고 지방이 뜨는 부유 현상을 없애기 위해 균질기를 도입해 고급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기틀을 다졌다.

1962년 1월 농협중앙회 회원 협동조합으로 거듭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그해 12월 서울 중랑교 옆에 첫 공장을 준공했다. 1972년부터는 초고온순간살균법을 통해 국내 우유 보급에 큰 획을 그었다. 우유 고유의 맛은 유지하면서 영양성분 손실은 줄인 것.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최초를 거듭하며 품질 개선에 앞장섰다. 국내 유업계 최초로 1984년 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를 냉장상태로 소비자들이 마실 수 있도록 중간유통 전 과정에 콜드체인시스템을 구축했다. 우유 품질 고급화 시대를 연 셈.

서울우유협동조합이 1970년대 선보인 제품들.ⓒ서울우유협동조합 서울우유협동조합이 1970년대 선보인 제품들.ⓒ서울우유협동조합

서울유유협동조합은 2005년 '1A등급' 우유를 선보이며 선진국 수준으로 품질을 높이는 기반을 닦았다. 1A등급은 원유 1ml당 세균 수가 3만 마리 미만이라 1등급 원유 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2009년 국내 유업계 최초로 '제조일자 병행 표기제'를 도입했다. 소비자들은 제조일자 표기 병행 표기 전까지 유통기한만 보고 우유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제조일자 표기를 통해 소비자는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을 동시에 보고 신선한 우유를 고를 수 있게 됐다. 당시 서울우유협동조합이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경제 불황에도 서울우유의 하루 평균 판매량이 15%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3월에는 원유 위생등급을 결정하는 세균 수 1A등급에 젖소의 건강 상태까지 알려주는 체세포 수까지 1등급 원유만을 사용한 '나100%우유'를 내놓았다. 스트레스나 질병 없이 건강한 젖소에서 체세포 수가 적은 원유를 얻을 수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나100%우유 출시 이후 3개월간 흰우유 판매량이 전년 동기와 견줘 103.8% 늘었다. 저출산과 우유 대체 식품 증가 등의 영향으로 줄어든 흰우유 판매량이 반등세로 돌아섰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품질 좋은 원유를 얻기 위해 ▲노쇠한 젖소 원유 생산 중단 ▲지정수의사를 통한 젖소 1대1 건강관리 ▲목장과 공장에서 원유 체세포 수 이중 검사 ▲목장 환경 개선 및 교육 지원 확대 등에 힘썼다. 생산실적 1조원 이상 국내 식품 업체 7개 중 유가공 업체로는 유일하게 4위에 이름을 올린 비결이다.

서울우유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서울우유협동조합은 "품질 향상을 위한 혁신과 노력이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지수 기자 (pjs06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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