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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위한답시고 보수의 가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입력 2017.02.24 01:10 수정 2017.02.24 06:38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헌재의 위상을 훼손하는 것은 법치에 대한 배신행위

헌재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도록 독립성 보장해야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오른쪽)와 정기승 전 대법관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오른쪽)와 정기승 전 대법관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치(法治)’는 보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설사 법 조문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내용이 있더라도 법적 절차를 거쳐 개정해야 한다. 법적 질서를 무시하고 초법적인 인치(人治)를 동원한다거나 다수의 위력으로 현상을 바꾸려한다면 그것은 엄연히 보수의 가치에서 벗어난다.

그간 보수 진영에선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국회의원들이 참가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집회에서 나오는 광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제도권 안으로 수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이 법치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를 어떻게든 압박하려는 시도에 국회의원들이 가세해서 부채질하고 방조하는 것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바람직한 행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리력이 아닌 법치 덕분에 배지를 달고 내로라하며 행세하는 의원들이 법 질서를 위협하고 흔들려고 하는 행태는 자신의 모태(母胎)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배신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헌재의 공정성을 부인하고 위상을 훼손하려는 대통령 측 대리인단도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 일원인 김평우 변호사(전 변협회장)는 22일 헌재 변론에서 재판관들을 향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다”는 둥, “…재판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둥 극렬한 표현을 써가며 재판부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심지어 헌재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대리인단이 변호하는 대상은 장삼이사가 아닌 보수정권의 수장이다

그들이 법률 지식과 현장 경험을 총동원해 법익을 보호하고 무죄를 입증하려는 의뢰인은 대한민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다. 5년 전 보수정당의 후보로 공천장을 받아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보수정권의 수장 박근혜 대통령이다. 행정부 수반에 대해 입법부가 법적 절차를 밟아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이상,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최종 결론은 삼권의 남은 축인 사법부가 내릴 수밖에 없다.

헌재의 권능을 인정해야 현 국정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 측에선 헌재의 권위와 위신을 존중하기는커녕 통째 뒤흔드는 것도 모자라 결정에 불복마저 암시하고 있다. 헌재가 아니면 누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치상황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느 기관이 국정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심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양분된 민심을 봉합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대법원이 할 것인가? 중앙선관위가 할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면면의 헌재를 바라는가? 법 개정을 통해 탄핵심판 소관기관을 다른 기관으로 대체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곳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는 엄연히 지금의 헌재만이 국가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심판자적 권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국민 모두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국가 운영체계에 대해 누구보다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을 대리인단이 의뢰인을 위한답시고 헌재의 위상과 권위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언행은 보수 가치가 용인할 수 있는 금도(襟度)를 훨씬 벗어난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국익보다 의뢰인의 이익이 우선하는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안녕과 질서가 후순위로 밀려나도 전혀 부담감을 느끼는 외국산 변호사들인가?

대통령을 포함, 그 어떤 법익도 대한민국 국익보다 앞설 수는 없다

보수의 또다른 덕목은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이다. 대리인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고 국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법치 체계를 흔들어선 안된다. 그들이 대통령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어떤 성질의 자긍심과 공명심으로 헌재 모독을 서슴지 않는 자신들의 언행을 정당화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법익도, 대통령의 그것도 대한민국의 국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조에는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면서 ‘재판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지금의 헌재는 지난해 12월9일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인적구성이며 그 이후에 급조된 재판부가 아니다. 그들의 중립성과 공정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장되고도 남는다. 그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면서 시비를 거는 것은 그 자체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편파성을 조장하려는 수작이라고 의심받을 만하다.

헌재 능멸에 문제의식을 못갖다면 그 법치는 '독선'에 불과

김 변호사는 자신의 저서 ‘탄핵을 탄핵한다’에서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언론, 법조 모두가 법치주의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서 대통령 탄핵소추를 비판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과정에서 아무리 법리적으로 하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제도권 안에서 합당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이를 반대했던 집권여당에서도 사후에 법적 무효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탄핵안 가결이 법치주의와 상충한다고 비난하면서 본인의 헌재 능멸 행위에 대해선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그의 법치는‘독선’에 불과하다.

대리인단의 그 같은 행태가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하는 일인지, 아니면 국민과 대통령 사이를 더 벌려놓는 행위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리인단의 처신에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개인의 보신과 안위보다 아버지의 명예를 중요시하고 한때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정치인으로서 공인의식이 남아 있다면 지금의 헌재 대응방식을 시정해야 할 것이다. 보수의 가치에서 동떨어진 대리인단의 언행이 추후 계속되지 않도록 대통령이 제지하는 게 필요하다.

헌재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도록 독립성 보장해야

국회 소추위원단이든 대통령 대리인단이든 헌재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탄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아울러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깨끗하게 승복하겠다는 자세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판검사와 국회의원을 하면서 온갖 명리(名利)를 누린 자들로서 최소한의 도리이자 마땅한 의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땅에 얼마남지 않은 보수의 영역을 지키고 새로운 보수가 잉태될 수 있는 생명력을 보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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