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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진화법'이 최순실의 최대 우군?


입력 2017.02.23 17:27 수정 2017.02.23 17:30        이슬기 기자

4당 뭉쳐도 특검 수사시간 연장법안 직권상정 불가

국감 '증인 채택' 막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정세균 국회의장이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안건을 처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안건을 처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여야의 합의실패로 특검법 개정안 본회의 직권상정이 무산된 무산된 가운데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의원석 모니터에 '특검연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붙여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여야의 합의실패로 특검법 개정안 본회의 직권상정이 무산된 무산된 가운데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의원석 모니터에 '특검연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붙여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솔직히 우리라고 안 하고 싶겠느냐. 규정상 의장 손발을 다 묶어놓았는데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고 정말 방법이 없다."

특검 연장이 사실상 무산된 22일 의장실 관계자는 "그렇다고 지난 번 정 의장처럼 본인 의지대로 밀어붙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또 "자기들끼리 싸운다고 국민들한테 하도 욕을 먹으니 말 그대로 좋은 의도로 선진화법을 만들어놓은 건 맞는데, 동시에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고도 했다.

국회선진화법의 장벽 앞에서는 야4당의 협공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헌선인 200석을 이미 넘어섰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쳐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도 물 건너 간 모양새다.

아울러 직권상정도 멀어졌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이 22일 단체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특검법 개정안 직권상정을 요구했으나, 정 의장은 '여야 교섭단체 간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여야 합의 없이는 의장 재량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있을 때만 국회의장이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고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의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이 가능하며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하다.

선진화법은 이른바 ‘동물 국회’를 끝내자며 2012년 5월 18대 국회 당시 도입됐다. 이전까지 특정 정당의 날치기식 법안 통과나 의장 재량에 따른 직권 상정 등으로 본회의장 내 난투극이 잦아 여론의 비난이 거셌던 만큼,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여야의 합의실패로 특검법 개정안 본회의 직권상정이 무산된 무산된 가운데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들이 처리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여야의 합의실패로 특검법 개정안 본회의 직권상정이 무산된 무산된 가운데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들이 처리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제는 선진화법이 오히려 ‘최순실 게이트’ 의혹 해결을 합법적으로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해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당초 야당이 정유라 씨의 이대 입학 특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최경희 이대 총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으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선진화법을 동원한 바 있다.

당시 교문위 소속 야당 위원들이 최 총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하자,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국감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증인채택안을 '안건조정대상'으로 신청하겠다고 통보했다. 선진화법 상 안건조정대상이 되면 최대 90일간 안건 채택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법적으로 국감 기간 동안 아예 증인을 부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에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교문위 증인 채택을 가로막았다"며 "비선실세 의혹 무마를 위해 국회선진화법까지 악용해 국감을 무력화하는 새누리당의 몸부림을 가상하게 여길 사람은 대통령 단 한 사람뿐"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의석은 121석이며, 자유한국당(94석), 국민의당(39석), 바른정당(32석), 정의당(6석), 무소속(7명) 순이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전제돼야 한다.

만약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가 불발돼 본회의 부의가 안 될 경우,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을 확보해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면 된다. 다만 본회의 표결까지 장장 330일이 소요되고, 실제 통과된 사례도 없다. 설사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연합한다하더라도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약 11개월을 기다리는 길뿐이다. 제1당조차 180석이 안되기 때문에 직권상정도 불가하다.

물론 민주당에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현 상황 자체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할 수 있다며 의장의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있다. 비상 상황 여부를 규정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인데, 국가 원수가 없는 공백 상태이기 때문에, 의장 판단에 따라 ‘비상 상황’을 신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특검 연장 법안을 상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야권 내에서도 의장이 법적 근거를 들어 직권상정을 거부할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자유한국당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기간 종료 3일 전인 오는 25일까지 기간 연장을 승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물론 황 대행이 이를 승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국가의 모든 업무가 완전히 멈췄는데 지금 상황 자체가 비상사태로 해석할 수 있다”며 “한국당이 태도를 바꾸거나 의장이 직권상정을 안하는 한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다. 황교안 손에 넘기는 것 외엔 법적으로 막혀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당 빼고 제1당과 나머지 당이 다 합의를 해도 발이 묶여있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말 그대로 ‘식물 국회’가 됐다”면서도 선진화법 재논의 여부에 대해선 “폐해가 분명하지만 좋은 의도로 만든 법인데, 당장 쉽게 없애자고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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