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D-인터뷰]이병헌 "'싱글라이더' 반전, 지독하게 쓸쓸"


입력 2017.02.23 07:00 수정 2017.02.24 08:57        부수정 기자

증권사 지점장이자 기러기아빠 강재훈 역 맡아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 결심"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했다"고 밝혔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했다"고 밝혔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증권사 지점장이자 기러기아빠 강재훈 역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 결심"


"지독하게 쓸쓸했어요."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이 밝힌 영화 속 반전에 대한 생각이다.

'싱글라이더'는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치닫다가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한 남자 강재훈(이병헌)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기의 신' 이병헌이 16년 만에 택한 감성 드라마다. 영화는 재훈이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반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나오면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반전의 여운이 꽤 깊어 영화를 다시 곱씹게 된다. 영화가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헛헛한 기분이 든다.

앞서 언론시사회에서 이병헌은 "연기 인생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 대한 애착이 컸다.

21일 서울 소격동에서 만난 이병헌은 "앞만 보고 달리던 한 남자가 주변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반성하는 이야기"라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영화"라고 전했다.

'내부자들'(2015), '밀정'(2016), '마스터'(2016)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인 이병헌을 이끈 이 영화의 힘을 무엇일까. "영화가 주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표현이나 정서가 세련되고 고급스러웠죠. 떠올리기 쉬운 이야기인데 울림도 컸고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영화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을 거예요. '나도 저렇게 살고 있는데'라면서."

배우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는 연기 인생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시나리오"라고 전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배우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는 연기 인생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시나리오"라고 전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극 중 강재훈은 잘 나가는 증권사 지점장이자 기러기 아빠다. 안정된 직장과 반듯한 가족,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던 그는 부실 채권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이후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들이 있는 호주로 떠나지만 이웃집 호주 남자와 다정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할리우드와 한국을 오가며 월드스타로 활약 중인 이병헌의 상황도 기러기 아빠와 비슷하다. 배우도 재훈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단다.

그는 "이해가 안 됐다면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인생의 목표가 어떻든, 보이지 않는 행복을 미룬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놓친 행복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매그니피센트7'(2016)을 촬영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이후 '마스터' 촬영차 필리핀을 오갔다. 재훈과 묘하게 비슷한 상황이었단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판 그는 "최근 재훈이보다 바빴고 정신없었다"며 "육체적, 정신적 소모를 했는데 나를 잘 추스르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뜻대로 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다"고 했다.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역시나 '가족'이다. 일과 가정을 둘로 쪼갤 수 없으니깐 시간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단다.

아들을 둔 이병헌에게 기러기 아빠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목표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함께하면서 느끼는 어마어마한 행복을 포기하는 건 자신 없어요. 목표는 잃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아이와 함께하는 그 소중한 시간을 다시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니까요. 상상도 안 해봤어요."

배우 이병헌은 영화 '싱글라이더'에 대해 "앞만 보고 달리던 한 남자가 주변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반성하는 이야기"라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영화"라고 말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배우 이병헌은 영화 '싱글라이더'에 대해 "앞만 보고 달리던 한 남자가 주변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반성하는 이야기"라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영화"라고 말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남편, 아빠 없이도 즐겁게 지내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본 재훈은 씁쓸하다.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 호주 남자를 본 재훈은 화가 치밀어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하고 참기만 한다.

실제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난리 치거나, 남자의 멱살을 잡기도 하겠지만 감정이 극에 달하다 보면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모든 걸 놔버릴 듯하다"며 "그래서 재훈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재훈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지만 사실 잘못한 게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 것뿐이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챙기지 않은 모든 사람의 잘못이다. 배우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재훈이 악역도 아니고요. 자기가 일부러 엉망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자신의 선택이 안 좋은 결과를 내자 자책한 듯해요. 이런 부분에서 '싱글라이더'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영화예요."

이병헌은 많은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캐릭터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다. 눈물 연기가 관객의 가슴을 울리면서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병헌은 이병헌이었다.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라고 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라고 했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대사도 별로 없고, 주변을 맴돌면서 관찰하는 역할이죠. 처음엔 '너무 할 게 없는 거 아냐? 이렇게 걸어 다니다 끝나겠네' 생각했죠. 표정만으로 의미와 의도를 전달하는 연기가 힘들어요. 표정은 제 의도와 다르게 왜곡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감독님과 모니터링을 자주 하면서 꼼꼼하게 살폈어요. 배우로서는 재밌는 작업이었답니다."

어떻게 방식으로 연기하길래 매번 '연기의 신'이라는 극찬을 들을까. 배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입을 뗐다. "음...전 시나리오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어요. 그러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감이 안 잡히면 상상해서 만들어내요. 모든 인간이 한 두 가지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없잖아요.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필요한 성격을 제 안에서 끄집어내 극대화하는 작업을 거치죠."

영화 속 반전의 전후 상황을 표현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그는 "감독님과 촬영 전부터 얘기한 부분"이라며 "(비밀을) 알 듯 말 듯한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이병헌은 아이디어가 풍부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그는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며 "코믹하거나 스펙터클한 상황이면 애드리브를 하지만 '싱글라이더'나 지금 촬영 중인 '남한산성'처럼 진중한 영화에선 아이디어나 애드리브가 필요 없다. 특히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는 워낙 완성도가 뛰어나서 내 아이디어가 의미 없었다"고 했다.

이병헌은 아내 수진 역의 공효진, 워홀러 지나 역의 안소희와 호흡했다. 공효진에 대해선 "힘을 들이지 않는 편안한 연기를 한다"며 "쿨한 성격도 매력적"이라고 칭찬했다.

안소희에 대해선 "말수가 적은데 연기 얘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말이 많아진다"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 의욕, 열정이 대단하다"며 "자기 안의 무언가를 깨기 시작하면 '확' 터뜨릴 수 있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반전을 보고 지독하게 쓸쓸했다"토 털어놨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 '싱글라이더'에 출연한 이병헌은 "반전을 보고 지독하게 쓸쓸했다"토 털어놨다.ⓒ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스스로 '확' 터뜨린 순간을 물었다. "자기 자신은 잘 모른다"고 밝힌 그는 "작품을 찍다 보면 어떤 장면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며 "이번 작품에선 아들과 찍은 응급실 장면에서 내 실제 경험에서 나온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와 한국, 두 영화 시장을 경험했다. 한국 영화 시장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시장이 커지면서 오로지 '관객수'에만 집착하는 이면도 있다. "할리우드 시스템처럼 발전하는 현상은 좋은 일이지만 영화의 성패를 '숫자'로 판단하는 건 슬픈 일이지요. 그래도 영화산업 근로 분야 표준계약서가 개정된 건 엄청난 변화예요. 아! 그리고 젊은 영화인들이 많아진 것도 놀라워요. 제가 촬영장에 들어서면 다들 인사하더라고요. 제가 갑자기 나이 든 느낌이 들었습니다(웃음)."

이번 영화에는 배우 하정우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하정우는 배우이면서 연출자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연출하는 배우들이 부럽고, 능력만 된다면 나도 하고 싶다"면서 "만약 하게 된다면 '번지 점프를 하다' 정도의 판타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연기의 신'을 드라마에서 보고 싶어 하는 팬들도 많다. 배우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며 "내게 맞는 드라마가 있다면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이병헌은 현재 '남한산성' 촬영 중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공격을 피해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 안에서 적군에 포위된 채 47일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는다. 이병헌 외에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이 뭉쳤다. "처음 만나는 배우들이라서 기대 돼요. 쟁쟁한 배우들이 모여서 시너지 효과를 낼 듯합니다. 분위기도 좋고요!"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부수정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