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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미지에 주홍글씨 새겨주기


입력 2017.02.20 10:42 수정 2017.10.16 10:01        데스크 기자

특검의 무모한 위세과시...항해중 선장 하선 시켜

보수 결집의 기세가 대단...'최순실 게이트' 진상 달라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기어이 잡아넣고야 말겠다는 특검의 끈질긴 집념이 마침내 결실을 봤다.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다면 ‘특검의 무모한 위세과시’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황천항해 중인 초대형 선박에서 선장을 갑자기 하선시켜 버리는 격이 아닌가.

세계의 정·재계는 이 사태를 주목하면서 다양한 평가와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을 짐작하긴 어렵잖다.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아마도 이 부회장의 혐의, 즉 ‘정경유착’을 기정정사실로서 강조할 공산이 크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삼성의 실질적 리더인 이재용의 체포는 남한에 있어 정부와 거대기업의 유착관계를 종식시키려는 투쟁의 극적인 전환점이다.”(뉴욕타임즈 헤드라인, 2.16)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대주주인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삼성물산과 삼성모직의 합병이 절박한 과제였다. 이 부회장 일가를 위해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찬성이 필요했다. 국민연금은 기대에 부응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엄청난(?) 재산상의 이득을 챙겼다. 특검의 스토리텔링이다.

특검이 밝힌 박 대통령과 삼성의 거래내역은 대충 다음과 같다.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 씨 일가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2800만원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와의 컨설팅 계약 213억원(이중 78억원 지급) 등 430여 억원의 뇌물을 줬다. 이 부회장에게는 이 외에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청문회 위증의 혐의도 더해졌다.

그런데 거래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대해서 대화하고 무엇을 거래하려고 하는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까? 정말 이 부회장은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을 했고, 박 대통령은 그 대가로 한 밑천 크게 챙겨달라고 압박했을까? 아니면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과 스포츠 진흥에 대한 대기업들의 지원을 강조했는데, 이 부회장이 그걸 강요로 느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박 대통령은 돈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 부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강조하는 말로 들었을까?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해 박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측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더 나아가 SK 현대 롯데 등에 대한 수사는 왜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한다. 많이 잡아넣는 것이 민심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투다. 예부터 부자에 대한 거부감, 심하게는 증오가 유별난 게 우리네 심성이다. 가난을 운명처럼 지고 살았던 탓일까?

세계적으로도 유수의 경제 강국이 된 후에도 이런 경향은 여전하다. 상대적 빈곤감 때문일까? 빈부의 격차는 못 가진 사람들에게 빈곤감뿐만 아니라 상실감 박탈감까지 안긴다. 내 몫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 빠지면 들끓어 오르는 복수심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부자는 악이 되고 자신은 정의의 사도가 되는 것이다.

악은 대화의 상대일 수가 없다. 다만 축출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선과 악의 대결장이 되고 말았다. 이 같은 사회의 양분화는 어제 오늘 비롯된 게 아니다. 이미 독립운동 시절에도 좌우 대립이 있었고, 해방공간엔 물리적 충돌까지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다가 좌파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를 거치면서 지하로 숨어들었고 표면적으로는 우파의 세상이 되었다. 6.25참극의 기억과 반공의 구호, 그리고 공권력이 좌파의 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것이다.

그러다 87년의 6월 민주항쟁과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선언, 집권 후의 의욕적 북방외교, 대북 포용정책 추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이 상황을 급변시켰다. 80년대를 통해 지하에서 이론적‧물리적 투쟁력을 비축했던 좌파세력이 정치·사회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호응하듯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그가 충분히 숙고한 끝에 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쨌든 남북화해·협력의 언설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정치사·문화사적으로 90년대의 주어는 ‘북한’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성립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계기로 진보와 보수는 수에 있어서나 영향력에 있어서나 대등한 지위에서 경쟁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는 좌파적 인식, 친북적 입장을 피력하는 데 있어 더 공공연하고 당당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도 거침없이 표출되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문화예술계는 진보세력에 의해 점령된 것으로 여겨졌고 참여정부에 이르러서는 권력화하기에 이르렀다. 탄핵정국 속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1만명 가까운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고 주장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보세력이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전교조에 의한 좌경적 이념 및 역사 교육으로 초·중·고 학생들의 의식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 세대가 오늘날 40대에까지 이르렀다.

진보세력은 선전선동이나 전략전술에 있어 보수세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능란하다. 그들이 지금 정권교체의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헌재가 재판 중인데도 야권의 대선주자들과 각 당 지도부가 촛불집회에 나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촛불로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면 다음 대통령은 태극기집회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진보측이 기세를 올리는 동안 보수 측은 목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점잖아서가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골몰했던 것이다. 오만 부패 나태 나약 비겁이 보수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이들에겐 위기의식이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냄비속의 개구리’였다.

그러다가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궤멸적 패배를 당했고 그 끝에 ‘보수정당의 와해’라는 참담한 지경을 스스로 초래했다. 물론 여전히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 있기는 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다. 그렇지만 이들을 더 이상 보수정당이라고 하긴 어렵다. 다투어 진보성을 과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리더들도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졌다. 진보정당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북한에 대한 거부감 정도이다.

보수정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이지만 거리에서는 보수 결집의 기세가 대단하다. 보수가 더 이상 소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주 토요일 대한문 앞(남대문에서부터 서울광장과 태평로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탄핵반대를 외치는 대규모 태극기집회가 열린다. 탄핵소추 이전에는 촛불집회가 규모면에서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뒤바뀌었다. 고영태 등의 통화기록이 공개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이제껏 알려졌던 것과 아주 다를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일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의 구속위주 수사와 헌재의 일정 맞추기 재판은 그대로다.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기 때문에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일까?

장용학의 단편소설 ‘현대의 야’(1960년)를 떠올리게 하는 이즈음의 상황이다. 전후의 뒤죽박죽된 사회와 인간성, 그로 인한 인텔리의 관념적 방황, 자아상실과 자포자기 등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현우는 1.4후퇴 때 월남해서 은행에 근무하던 줄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고문에 못 이겨 자백을 했다.

검사는 그에게 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으면서도 징역 십년을 구형했다. 재판장의 선고도 같았다. 놀란 것은 검사였다. 당연히 무죄가 될 것을 예상했는데 재판장이 노망이라도 난 듯 구형대로 선고한 것이다. 재판장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내에게 멱살을 잡혀 두세 번 휘둘렸다. 그 때문에 와이셔츠 단추가 떨어지기까지 한 것을 배석판사가 법정으로 가면서 알려줬다. 울화에다 수치심까지 겹쳐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는 무죄 선고를 내리리라 하며 흐뭇해했는데 피고까지도 횡설수설 화를 돋우고 있지 않은가.

판사는 2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재판장이라고 신이 아니다. 오심할 때도 있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피고가 항소를 포기해 버렸다. 재판장은 눈앞이 아찔했다. 이일을 어쩌나 해서 검사를 봤더니 그도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검사는 이내 시치미를 뗐다. 10년이 적합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15년 구형이 마땅한데도 그만큼 줄여줬으니 관대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검사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본 재판장도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피고에게 너무 동정적이었다. 내가 출세를 못하는 것도 이 동정 때문이다. 출세 못하는 것은 좋지만 법관은 법에 충실해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 법을 집행해야 한다. 피고에게는 좀 안 되었지만 국가 사회의 안녕질서를 위해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우리의 학식 높고, 사명감 확고하며,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까지 갖췄을 검사 판사님들이 자신의 기분이나 시류에 휘둘려 ‘법과 양심’을 저버릴 일이야 있겠는가. 그렇지만 시중의 공기가 심상찮다. 혹시라도 구형하고 선고할 수 있는 자신의 권한에 너무 심취하고, 군중의 충동질에 부추겨져서 훗날 뼈저리게 후회할 결정을 내리는 일이 있을까 해서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진곤 정치학박사, 국민일보 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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