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7년 02월 20일 08:13:14
말레이시아서 피살된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은 누구?
90년대 김정일의 유력 후계자에서 떠돌이 신세로 전락
김정은 집권 후 신변 위협 속에서 동남아 전전하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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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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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아 기자(yuna1112@dailian.co.kr)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13일(현지시각)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김정남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당국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은 '비운의 황태자'였다. 19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이복동생인 김정은(현 노동당 위원장)에게 밀려 북한을 들어가지도 못하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김정남은 1971년 5월 김정일과 배우 출신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은 유부녀이던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킬 정도로 사랑했고, 그와 동거하며 낳은 아들 김정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며 자라온 장남 김정남은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장과 군복을 직접 선물 받으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김정남은 개방적인 성향 탓에 점차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1980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로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하며 국제사회의 정보를 습득한 그는 평소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에 도입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특히 90년대 말 북한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모인 성혜랑이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한 것도 그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고, 2001년 도미니카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된 사실이 대외에 공개되며 국제적 망신을 산 일로 완전히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밖에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지 못한 이유와 관련, 김정일과 유부녀인 성혜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일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데다 북한 간부들에게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정남은 이후 중국과 마카오,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뒤를 봐주던 고모부 장성택마저 처형되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겨 궁핍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성된 2010년 김정남은 일본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는 등 체제 비판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북한 정치나 체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김정남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신변 위협 속에서 동남아 각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식당에서 포착됐고, 그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김정남은 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살 당일 김정남이 왜 말레이시아에 있었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보당국은 말레이시아에 내연녀를 두고 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데일리안 = 하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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