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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시급


입력 2017.02.22 06:00 수정 2017.02.22 08:43        이광영 기자

[기업살인 상법개정안 논란·하/전문가인터뷰1]신석훈 한경연 실장

“상법개정안,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악법 될 것”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상법개정안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를 약화시켜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상법개정안이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들의 권리 보호에는 별다른 역할을 못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해외 유출만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기업무장해제' 상법개정안, 왜 집착하나
(중)집중투표제, 멕시코·칠레가 선진 사례인가
(하-전문가인터뷰1)'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시급
(하-전문가인터뷰2)"독소조항 산재, 경영권 방어수단 대등하게 제공돼야"


신석훈 한경연 실장 “상법개정안,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악법 될 것”

2월 임시국회에서 상법개정안 일부 법안의 통과가 유력해지면서 재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상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여론과 표심만 계산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자 ‘표’풀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계는 이번 상법개정안이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소수주주 보호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내기업 경영에 외국 자본이 개입할 여지가 커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22일 상법개정안 중 기업에 가장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법안으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집중투표제 도입’ 두 가지를 꼽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외국계 투기자본이 일명 ‘지분쪼개기’로 대주주의결권 3% 제한을 회피하며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대주주보다 주식을 적게 보유하고 있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게 되는 것. 집중투표제 역시 적은 지분만 가지고 있는 투기자본이 손쉽게 자기 사람을 1명 정도 이사회에 진출시킬 수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데일리안 이광영기자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데일리안 이광영기자
신 실장은 “두 가지 중 하나만 도입해도 외국계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이 손쉬워 진다”며 “두 제도가 동시에 도입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에 이사진 모두를 뺏겨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무장해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실제 한경연이 이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 당 3~5명 수준인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회사는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여섯 곳에 달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에도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을 무조건 이사회에 포진할 수 있는 기업은 10대 기업 중 네 곳으로 나타났다.

신 실장은 이러한 경영권 위협 시나리오가 과장됐다는 반론에 대해 아이칸과 KT&G 경영권 분쟁, 엘리엇의 BMC소프트웨어 지분 취득을 예로 들었다.

그는 “최근에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지분만을 확보해 자기 사람 1~2명만을 이사회 진출시켜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고 주가를 상승시켜 차익을 취득하는 전략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며 “상법 개정으로 엘리엇 ‘먹튀’와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제한’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나라만 존재하게 되는 악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했다.

신 실장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으나 개정안처럼 의무화 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3개국 뿐이다. 미국도 1940년대 22개주에서 집중투표제를 강제했었지만 기업사냥꾼들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대부분 임의규정으로 전환한 바 있다.

다만 최근 최순실 사태로 인해 오너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서 개별 기업은 물론 재계단체도 좀처럼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신 실장은 “법안에 대한 정치권과 재계간 소통이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서 법을 통과 시킨다면 재계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며 “여론에 치우치기 보다는 법리와 경제적 효과, 글로벌 동향 등을 꼼꼼히 검토해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오너의 권한남용 통제를 이유로 기업에 규제를 강제적으로 부과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기업체질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부드러운 접근 방식인 ‘넛지(nudge)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너통제를 위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규제영역에서 상호출자 금지, 신규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전 세계 유례가 없는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 상법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대주주를 규제하기 위한 강력하고 다양한 제도들이 대거 도입돼 있어 이를 도입하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

신 실장은 “소수주주 보호를 빌미로 외국 투기자본에는 없었던 창을 만들어주면서 국내 기업에는 이를 막을 방패를 마련해주지 않는 셈”이라며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일본 등도 도입한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해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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