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업무장해제' 상법개정안, 왜 집착하나


입력 2017.02.20 10:00 수정 2017.02.21 16:51        박영국 기자

[기업살인 상법개정안 논란·상]소액주주 권리 보호 효과 미미…해외 투기자본 먹잇감 전락 우려

주요 대기업 사옥 전경. 왼쪽부터 삼성그룹 서초사옥,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여의도 LG트윈타워, SK서린빌딩ⓒ각사 주요 대기업 사옥 전경. 왼쪽부터 삼성그룹 서초사옥,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여의도 LG트윈타워, SK서린빌딩ⓒ각사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상법개정안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를 약화시켜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상법개정안이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들의 권리 보호에는 별다른 역할을 못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해외 유출만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기업무장해제' 상법개정안, 왜 집착하나
(중)집중투표제, 멕시코·칠레가 선진 사례인가
(하-전문가인터뷰1)'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시급
(하-전문가인터뷰2)"독소조항 산재, 경영권 방어수단 대등하게 제공돼야"


소액주주 권리 보호 효과 미미…해외 투기자본 먹잇감 전락 우려

“내가 만일 기업 사냥꾼이라면 좋은 사업기회를 제공해 준 대한민국 국회에 감사를 표하겠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 대주주의 지배력을 낮추고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주주 중심 지배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법 개정안으로 대주주 지배력이 약화되면 외국계 투기 자본으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공통적인 우려다.

개정안 중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은 정치권 내에서도 논란이 클 정도로 우리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조항으로 꼽힌다. 각각 외국계 헤지펀드가 우리 기업에 이사와 감사위원을 꽂아 넣고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막대한 이익을 취한 뒤 ‘먹튀’하기에 수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조항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주총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후보자가 4명 나왔다면 주주들은 4명의 후보자들 중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에게 4표를 몰아줄 수 있게 된다.

현행 법안은 주주제안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하더라도 정관으로 집중투표 배제가 가능하지만, 개정안은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명목상으로 소액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재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보다는 2~3대 주주, 투기펀드 등이 대주주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표를 규합하는 게 어려운 반면, 일정 지분을 확보한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표를 몰아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인물을 경영진에 투입시킬 수 있게 된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정책 결정에 압력을 넣은 뒤 막대한 이익을 빼먹고 지분을 매각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실제 미국계 펀드 칼 아이칸이 지난 2006년 KT&G 주식 5.69%를 매입한 뒤 정관상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뒤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지분을 되판 사례가 있다. 당시 칼 아이칸은 경영진에 보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배당을 확대하라고 요구했고, KT&G는 당시 부동산 매각은 하지 않았지만 2조8000억원을 배당금으로 써야 했다. 칼 아이칸은 150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그해 12월 KT&G 지분을 매각했다.

배당 확대는 다른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지만, 투자와 배당의 적절한 배분 없이 배당에 집중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이 이같은 공격에 노출될 경우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기 차익을 올리는 게 목적인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해당 기업의 중장기 전략은 관심 사안이 아니다”라며 “배당 위주의 정책결정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기업의 투자자금이 고갈되건 말건 이익을 챙겨 떠나는 게 투기자본의 생리고, 집중투표제는 그걸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법개정안 주요내용.ⓒ대한상공회의소 상법개정안 주요내용.ⓒ대한상공회의소

감사위원 분리 선임 의무화도 기업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조항 중 하나로 꼽힌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일괄적으로 선출한 후 이들 가운데 감사위원을 뽑는 방식이다.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는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지만 이사 선임 때는 별도 제한이 없다. 그러나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처음부터 별도로 선출하고 이 단계부터 대주주는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 의무화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에서 단기차익을 빼먹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3% 의결권 제한규정을 이용해 표를 분산한 후 규합하면 이사와 감사 자리에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쉽게 밀어 넣을 수 있게 되는 반면, 기존 대주주들은 우호지분이 급감해 의결권이 축소된다.

일례로 현재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7.2%),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5.5%),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5.5%), 삼성전기(2.64%) 등 특수관계인과 주요 계열사의 의결권이 39.4%에 달하지만, 감사위원 분리 선임 의무화로 오너 일가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이 수치는 20.1%까지 떨어진다.

정부 장려정책에 따라 지주회사제를 도입한 기업들에게 있어 감사위원 분리 선임 의무화의 불합리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지주회사인 상장사는 자손회사 주식을 20% 이상 보유토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3%밖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국회 처리 앞둔 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도 부작용 많아

여야 4당 합의를 거쳐 이달 중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여러 부작용들이 우려되는 조항들이다.

전자투표제의 경우 이미 제도 자체는 도입돼 있지만 이사회 결의를 통해 채택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로는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많다.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주주 수가 일정규모 이상인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한다.

재계에서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될 경우 기업 의사결정과정에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확인되지 않은 악의적 루머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의도적인 조작이나 오류발생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주총회는 주주들 간 의견 교환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수단인데,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현장 주총 참석률이 오히려 떨어지는 형식적인 주총이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다중대표소송제도 투기자본에 의한 악용이나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조항이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일정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을 경우 모회사 지분 1%(상장사는 0.0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에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정수준’에 해당하는 지분율은 정당별로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개정안은 50% 이상, 국민의당 안은 30%초과가 기준이며, 새누리당은 모회사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에만 적용하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 안이 채택될 경우 그나마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안이 통과되면 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이 75%를 넘고 있는 우리 지주회사 체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재계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도가 과도한 기준으로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들의 이익 보호보다는 투기자본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배상액이 주주에게 직접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투기자본들이 다중대표소송을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차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자회사들의 경영활동 위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과감한 투자나 혁신에 나서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경영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