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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독주(獨走)가 독주(毒酒)인 결정적 이유


입력 2017.02.07 07:00 수정 2017.10.16 10: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 보수 후보가 위협적이어야 확고해져

헌재의 결정은 어느쪽이든 역풍 초래할 것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한국인이 유엔사무총장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아득한 일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마술사 노릇을 해줬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유엔 창립 61년여 만에 그 자리에 오른 한국인이 바로 반기문 전 총장이다. 애초에 정해졌던 우리 측 후보도 아니었다. 총장실 문 앞에까지 이르렀던 유력인사가 놓친 의자를 꿰찬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고 하겠다.

‘세계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자리에 앉았으니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적어도 명예, 그리고 활동 무대의 측면에서는 대통령을 능가하는 감투일 수 있다. 희소성에서도 그렇다. 대통령은 11명 째이지만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은 오직 한명이었고 앞으로 언제 다시 우리 차례가 올지는 예상할 수조차 없다.

10년의 임기를 대과없이 마쳤다. 다음 순서는 명예로운 은퇴생활이다. 아마 반 전 총장도 그런 생활을 설계해 봤을 터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세상 어느 곳보다 더 요란스럽고 거칠고 험악한 한국의 정치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의 권유, 혹은 격려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흔들었으리라 짐작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후임자의 격을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보수 성향을 가진 인사로서 자신의 격까지 지켜줄만한 경력과 명망의 소유자를 물색했으리라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유엔사무총장 정도의 인물이라면 전임자의 위상까지 높여줄 만한 적임자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현직 대통령의 신뢰와 지원을 등에 업을 경우 여당 후보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당연히 본선 경쟁력 강화도 기대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의 생각을 짐작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다. 그 요인의 큰 부분이 박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 반 전 총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상과 인기로 박 대통령과 여당이 잃은 것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여긴듯하다. 그랬기 때문에 작년 5월 귀국해서 출마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더 큰 충격파가 밀려왔다. 박 대통령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를 해 버렸다. 또 다시 마음이 흔들렸겠지만 이미 내디딘 발걸음이었다. 시도조차 안 해보고 포기하기가 너무 아쉬웠을 것이다. 어쩌면, 그럴수록 보수진영의 기대가 자신에게 집중되고, 그 힘으로 본선을 치를 경우 승산은 부족하지 않다고 계산했을 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난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보수 단일정당인 새누리당이 쪼개지고 말았다. 상황이 이에 이르렀으면 포기할 만도 했겠는데 그는 다시 계산 방식을 바꾸었다. 인기가 곤두박질치는 보수정당과 그 지지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신 ‘진보적 보수’를 표방함으로써 표밭의 면적을 넓히겠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생각을 입 밖에 낸 순간 그의 지지기반은 와해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겠다는 욕심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확고한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무도 반 전 총장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표해 줄, ‘우리의 리더’로 여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작 그의 중도 포기를 예언했었다. 다만 그처럼 빨리 물러나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적었다. 귀국한지 20일이 되었을 뿐이다. 더욱이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로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의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래서 더 이상 버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득 과정 없는 포기 선언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처사였다.

전직이 너무 화려했고, 세계의 환대가 너무 각별했던 탓에 고국 정치권의 냉대를 감당하기가 더 힘겨웠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평가가 박할 경우도 있긴 했지만 어느 나라를 가든 그는 국빈이었다. 더욱이 한국 정치인들의 그에 대한 예우는 각별했다. 다투어 그를 만나려 했고, 만날 수 있었던 인사들 다수가 그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다짐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예상되기로 귀국하는 날 공항은 환영인파로 뒤덮이고, 여론 지지율은 급등세를 보일 것이었다.

“지금이 내가 떠날 때다. 내 정신이 온전할 때 떠나야 한다.”

2002년 7월 3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월드컵 4강 축하연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친구이자 축구칼럼니스트인 랍 휴스에게 했다는 말이다(동아일보, 2002. 7. 8). 대중의 환호에 도취되어 떠날 때를 놓칠까봐 걱정했을 히딩크의 마음이 그 한 마디에서 온전히 읽힌다.

반 전 총장은 오히려 영광의 제2막을 기대했다. 그는 표표히 떠나지 못했고, 하필이면 한국의 정치판, 그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의 황야, 아니면 모래폭풍이 덮쳐 오는 메마른 사막에다 장미화원을 꾸미고자 했다. 무모한 도전, 무책임한 포기가 그 자신의 명성에 큰 흠을 남겼고, 그를 통해 재기를 꿈꿨던 일부 보수세력에는 엄청난 좌절을 안겼다.

사실 그는 정치적으로 거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맷집이 너무 빈약했다. 무엇보다 명예에 흠집이 나는 게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 신사로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에 먹물이 뿌려지는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의 직업 정치인들에겐 그게 일상이지만, 그의 이력은 이를 감당하기에 너무 화려했다. 유엔의 이미지를 자신이 일그러뜨리고 말 것 같은 두려움도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반 전 총장은 링을 떠났다. 대선판도는 재편될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으로서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반 전 총장의 여론 지지도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치기는 했지만 그 나마의 위상을 대신할 만한 주자가, 현재로서는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다곤 하나 그 입지를 감안할 때 넘어야 할 산이 반 전 총장의 경우보다 훨씬 높고 험하다. 게다가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적할만한 진영내의 경쟁자가 있어야 국민의 주목을 받는 성공적 흥행이 가능해진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고서야 에베레스트가 있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하긴 지금 드러난 주자들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드러나지 않은, 말 그대로 물속에 숨어있는 잠룡(潛龍)도 있을 수 있다. 어느 물에서 용이 때를 기다리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는지를 누가 알랴. 정치권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인재는 많다. 위기에 처하면 생존본능이 더 강력히 작동한다. 보수세력은 최선의 선택을 위해 정치적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 어디 미국만의 것이겠는가.

보수진영이 ‘반기문 사퇴’의 충격에 휩싸여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희희낙락하는 분위기다. 대선 승리를 굳혀 준 사건으로 인식하는 빛이 역력하다. 황 대행의 향후 행보가 걱정스럽기는 하겠지만 효과적으로 저지한다면 대선은 진보의 독무대가 되리라고 믿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되레 입지 위축을 우려해야 하는 주자가 있다. 반 전 총장을 가볍게 누르며 승승장구해 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다. 보수 쪽에 위협적 주자가 있는 동안엔 확고한 진보의 중심일 수 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상대가 없어질 땐 꼭 문 전 대표여야 할 필요성도 같이 없어진다. 더 미래지향적인, 더 매력적인 주자가 누구인지, 표의 확장성이 커서 대승을 거둘만한 선수로는 누가 적격인지에 대해 다시 판단하려 할 개연성이 높다.

인간사, 세상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외부의 압박과 위협이 줄어들면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심해진다. 벌써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반대로 안희정 충남 도지사의 지지율은 올라가는 추세라지 않는가. 독주(獨走)는 자칫 독주(毒酒)가 될 수 있다. 일방적 게임은 재미가 없다. 관중은 치열한 호각지세의 경기에 환호하고 대반전에 열광한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이 보여준 바가 그것이다.

기실 결정적 고비는 헌법재판소가 만들어 내게 된다. 야당들은 너무 성급하게 탄핵소추를 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퇴진압박을 끈질기게 가해 왔다. 이 때문에 헌재 결정이 탄핵소추 인용으로 나든 기각으로 나든 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그해 4월 28일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옮겨갔다. 담장 밖에서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반기는 85세의 노(老) 대통령 모습이 그 다음날 신문에 실렸다. 186명의 사망자를 비롯 숱한 희생자를 낸 끝이었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단 한 사람의 희생도,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초래하지 않았다. 애초에 독재정치 강압정치 같은 것을 시도한 적도 없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정치적 배경과 이유로 심하게 몰아세우긴 했어도 끝까지 야박하게 대할 만큼 모질지가 못하다. 혼자 사는 여성 대통령의 고난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가질 사람인들 왜 없겠는가. 헌재 결정 이후에 형성될 민심의 풍향계가 대선 과정에서 어느 쪽을 가리키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큰 바람이 불기는 불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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