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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퇴 이후 '보수의 길', 누가 걸을 것인가?


입력 2017.02.06 02:16 수정 2017.02.12 18:23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황교안·유승민·남경필 3인, '대표주자' 놓고 각축전

각자 강점에도 불구 각인된 약점이 지지도 발목 잡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행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개헌협의체’ 구성안을 들고 여야 3당 지도부를 만난 직후 중도하차를 결행했다. 자신의 제안에 3당 반응이 미지근하고 부정적인 데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이 그의 결심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반 전 총장은 한국 정치에 너무 순진하게(naive) 접근했다. 지난 10년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국가 간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온 경륜에선 좁은 한반도 절반 사회의 보수와 진보 간 세대결을 가볍게 봤을 수도 있다. ‘대선 전 개헌’ 기치를 높이 올리면 본인을 중심으로 여야를 아우르는 공동전선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뜻밖에 마주친 반응은 “보수냐 진보냐 택일하라”는 주문이었다. 귀국 후 20일간 행보에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모호 전략’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만났을 때 "수인사도 끝나기 전에 앉자마자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 물어서 당황했다"는 본인의 설명에서 당시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진보주의적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며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국민대통합’을 꿈꿨던 그에게 그 물음은 ‘흰 수건’을 던지게 하는 임계점이 됐을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외교 일선을 뛸 때는 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을 상대했을 것이다. 국가보다 하위 조직인 정당이나 정파와 긴밀히 접촉하다 보면 집권세력으로부터 내정간섭이란 비난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전 총장이 입국 뒤 정치인으로서 새출발한 것은 한국 내정에 깊숙이 뛰어든 셈이다. 그러나 쉽게 메울 수 없는 보수와 진보의 간극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동시에 맛봤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독재체제가 아닌 이상 보수와 진보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한 사회에는 적응력이 서로 다른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해관계가 분화하고 가치관이 다양해진 사회에서는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정치 지도자가 선출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찬반으로 양분된 민심을 뒤로 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한국의 여건이 미국보다 더 좋을 이유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안보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부주도 산업화 과정을 거쳐 경제규모를 키워온 한국으로선 한정된 자원의 배분 순위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끈기 있게 협상을 벌여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과 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국 현실에서 최장 20일간 뛰어다닌 결과로서 일거에 보수와 진보의 벽을 허물고 개헌의 기치 아래 ‘헤쳐모여’ 할 것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했다. "정치의 벽이 아직 높고, 이해도가 낮았다"는 본인의 토로가 이를 대변한다. 한 정당에 먼저 착근해서 교두보를 확보한 뒤 좌우로 외연을 넓혀갔더라면 활로가 열릴 수도 있었으나 시간과 인내력이 부족했다. 본인 스스로 "저는 원래 태생이 상당히 순수, 단순하고 아주 직선적"이라고 말해 중도하차의 불가피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의 앞길은 계속 뻗어 있다. 반 전 총장은 떠나고 없지만, 누군든지 새로운 적임자가 부상해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현재로선 황교안 권한대행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여론조사 명단에 오르는 후보군이다. 출발선상에서 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양새다. 반 전 총장 사퇴 덕분에 황 권한대행이 반사이익을 좀 챙겼으나 각종 지지도 조사에서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더욱이 유 의원과 남 지사는 바닥권에서 좀체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3인의 지지율이 앞으로 상승 계기를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인이 아니기 때문에 인지도는 한결같이 높다. 이는 유권자들이 이들의 강점을 몰라서 지지도가 뜨지 않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황 권한대행은 보수층이 중시하는 안정감을 갖춘 관료 출신이며 유 의원은 현 경제위기 속에서 각광받는 경제 전문가다. 남 지사는 ‘협치’와 ‘연정’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개혁적인 정치인이다.

오히려 유권자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들의 약점이 지지율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황 권한대행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공동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유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는 발언에서 촉발된 보수층의 괴리감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남 지사는 모병제, 수도이전 등 설익은 공약에서 오는 거부감이 보수 민심과 평행선을 달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주자 3인이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마른 걸레 쥐어짜듯' 새로운 강점을 국민들 앞에 제시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주자들의 지지도 합은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동층이 20%도 안 남은 게 현실이다. 보수 주자들의 지지율 변동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설령 부동층 표심을 모두 흡수하더라도 ‘무난한 패배’라는 대세를 꺾지 못할 수도 있다.

보수진영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승부수로 야권 후보 분열과 보수 후보 단일화가 거론된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당을 상대로 ‘합당’ 내지는 ‘연정’을 제안한 것도 ‘87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반면에 유 의원이 최근 ‘보수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권은 개인 자질과 역량뿐 아니라 선거 판도에도 승패의 운수를 숨겨 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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