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대통령직의 저주' 잠룡들은 각오하고 계신가


입력 2017.01.23 09:39 수정 2017.10.16 10:02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역대 대통령 대부분 악몽의 퇴장길

정치보복과 대선 불복종의 고리를 끊어야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과 개신교 단체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서 '9차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과 개신교 단체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서 '9차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설을 앞두고 이른바 ‘잠룡’들이 다투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조기대선 전망에다 설대목 까지 겹쳤으니 마케팅을 적극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을 이해는 하면서도 세상인심의 차가움에 마음이 스산해 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유폐상태로 헌재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데, 정치권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은 그가 비우게 될 자리를 노려 우르르 몰려들고 있다. 대부분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자들이다. 변호나 위로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참으로 궁금한 게 있다.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편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복을 누리지 못했다. 재임 중 부하의 총격으로, 또는 퇴임 후 자살로 서거한 대통령이 있었는가 하면, 유배길인 줄도 모르고 해외에 갔다가 타국에서 영면한 대통령도 여전히 국민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무기 징역과 17년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고 장기간 복역한 두 전직 대통령의 자리 값도 혹독했다. 그런 험한 일까지는 아니었지만 여타 대통령들 또한 재임 시에는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온갖 비난 비판 조롱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예상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진해일처럼 덮친 언론‧정치권‧군중의 파상 공격에 제대로 저항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헌재 결정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나오겠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어, 비록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명실상부한 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잠룡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이 같은 ‘대통령 잔혹사’를 충분히 보고 읽어서 잘 알고 있을 인사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직 쟁취를 필생의 목표로 삼은 듯이 덤벼들고 있다. 아마 자신만은 절대로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自信)할 것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인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그 직을 욕심냈겠는가. 심하게는 ‘대통령직의 저주’라고 까지 불릴 수 있는 그 불운이 자기만은 피해갈 것이라는, 근거 없이 확고한 믿음에 의해 부추겨졌을 터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귀신의 저주’이기야 하겠는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까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①우선 우리 민주정치의 역사가 일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현대사를 일별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민주정치에는 월반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입으로는 대단한 식견을 자랑하지만 정치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에게 민주주의가 체질화될 때에만 모범적 민주정치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허황한 명제를 버리고 “국민은 언제나 옳은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을 배출하고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정치인들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이고, 정치인들의 행태가 우리의 행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를 새롭게 깨닫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제1과제다. 터무니없는 위선으로 남을 재단하는 일은 말아야 한다.

②그 다음으로 지적될 수 있는 민주정치 저해 요인은 대통령직에 대한 오해다. 그 직책은 경시하고 지위만 중히 여긴 탓에 한국적 대통령병이 생겨났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능력을 과시하고 싶고, 국민은 그가 무슨 일이든 다 해결해 주기를 요구한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왜 대통령이 못하느냐고 다그친다. 대통령 자신도 가끔씩 부지불식간에 신이 된 자신을 목격하게 될지 모른다.

③임기제가 주는 강박감도 ‘불행한 대통령’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5년의 임기 안에 뭔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여건이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초조해지고 그만큼 무리하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과욕’이 바로 이런 대통령직의 조건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 때문에 상시적인 사정(司正) 작업을 벌였고, 그것이 정치‧사회갈등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와 민족통일의 초석 마련을 염원했지만 성급한 대북 접근정책이 심각한 남남갈등‧좌우대립을 초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구조의 전면적 개조, 지배세력의 전면적 교체를 추구했다. 새 도읍 건설은 그 표상이 될 것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토목분야 전문가답게 한반도 대운하를 구상했다가 ‘4대강 사업’으로 규모를 줄이긴 했지만 어쨌든 기어이 그 일을 해치웠다.

현재의 박 대통령은 취임하기 무섭게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시달렸고, 이듬해부터 탄핵소추 때까지는 세월호참사와 그 충격 및 후유증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외에도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그의 바쁜 걸음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렇게 임기를 마치고 나면 역사에 기록될 어떤 업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감에 시달렸을 수 있다.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문제가 그 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닐까?

④게다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국회선진화법 탓에 심각할 정도의 제약을 받았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후반에라도 경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낙제를 면하고 싶었겠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무장한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대통령은 다른 방식의 업적 만들기를 구상했을 것이고, 이는 역대 정부의 관행이기도 해서 후유증 걱정은 하지 않았을 법하다. 그런데 언론과 야당 시민사회들과의 역학관계에서 심각한 비틀림 현상이 생겼다. 이 바람에 얼기설기 엮여져 있었던 국정체계가 구조 째 무너져 버렸다. 그 결과가 박 대통령 자신으로서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탄핵사태였다.

⑤정치전통과 정치구조도 한국적 대통령제의 취약성을 가중시킨다. 왕조시대의 전통과 의식이 이어짐으로써 정당정치 또한 왕조시대의 붕당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이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중앙집권적 국민정당체제를 고수해 왔다. 대통령과 정당 유력자들 간의 권력투쟁이 일상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9차 개정헌법에 의해 이미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위축되었는데 국회선진화법이 결정적 타격을 안겼다. 대통령이 제도적으로 국회, 그 중에서도 야당의 관리 하에 놓이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야당 및 정부에 적대적인 사회단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유신부활’ ‘독재타도’라고 윽박지르면서 시쳇말로 대통령을 갖고 놀았다.

어느 날 “아야!” 소리도 못하고 탄핵을 당하게 된 전말이 대략 위와 같다. 그런데 박 대통령으로서는 탓할 대상이 없다. 그 자신이 국회선진화법 국회 통과를 지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굴욕적 참패를 당한 배경에도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반성은커녕 8‧9전당대회를 통해 오히려 당 지도부를 석권했고, 이것이 당 분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 배경에도 역시 박 대통령의 역할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거리에서는 서로 ‘민심’을 앞세운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가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처음엔 촛불집회가 압도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태극기집회의 기세가 전자를 누르는 분위기다. 종전의 보수집회와는 양상이 아주 다르다. 해병전우회, 경우회, 어버이연합 등 특정 보수단체들의 동원집회가 아니라 보수적 국민의 자발적 시위다. 그래서 열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대결 구도가 향후 한국 대통령제의 최대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해 진다. 헌재가 탄핵소추를 인용하면 태극기집회는 거대한 불복종운동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탄핵 덕분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선다면 임기 초 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임기 4년차의 탄핵이었지만 다음엔 임기 3년차 탄핵이 안 될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헌재가 기각 결정을 한다고 해서 보수세력의 감정이 누그러들 것 같지도 않다. 모함을 당했다며 보복의 당위성을 부르짖을 게 틀림없다.

촛불집회가 태극기집회를 유발했듯이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촛불집회 세력 또한 어떤 경우에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용이 되면 구시대 잔재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 대 개조 운동에 나설 개연성이 높다. 탄핵이 기각될 때는 반발시위로 맞설 게 명약관화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헌재가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위협했었다.

양대 세력의 대결이 어떤 상황을 초래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 빠져들고 말았는가.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이처럼 보수 진보 양측이 대규모 집회를 같은 날 바로 옆에서 벌이는데도 물리적 마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도 최소한 이 정도의 성숙함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 특히 잠룡이라는 분들의 각오는 어떻습니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