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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本物)족 왜 영화관을 급습했나


입력 2017.01.17 10:23 수정 2017.01.17 10:34        데일리안=김헌식 문화평론가

진상 오타쿠, 온라인에서 오프로 민폐를 주는 마니아

혼자서 하던 습관과 행동 공공장소에서 드러나

공연계에서는 민폐족을 따로 부르는 '관크'라는 용어가 있다.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인데, 이는 본래 온라인 게임에서 쓰이는 용어에서 온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힐 때 크리티컬이라는 말을 쓰는데, 공연장에서 피해를 주는 관객들에게 관크라고 이름붙였다. 즉 공연장 민폐관객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기침을 많이 하는 것, 구토나 트림, 방귀 같은 신체현상의 과잉도 속한다. 여기에 휴대폰 울림이나 불빛, 촬영 등이 단골로 꼽힌다. 이외에도 애정행각을 하거나 신발을 벗는 행위도 꼽힌다. 공연 중에 박수를 잘못 치는 것도 넓은 범위에서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가 않다. 사전에 핸드폰에 관한 주의를 주거나 기침이 나오지 않도록 사탕을 주기도 한다. 물론 되도록이면 타율적이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가 있는 관객에 대해서는 관객들 스스로 진행요원에게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CCTV 설치의 경우에는 아직 논란의 와중에 있다. 개인의 인권침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색다른 도구가 쓰이는데, 주로 강연장에서 사용하는 레이저 포인트이다. 민폐를 끼치는 관객에게 레이저 포인트의 불빛이 가해지는데, 주로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사진 촬영 그리고 통화를 하는 이들에게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관크족들의 행위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런 레이저 포인트를 사용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일으킬 때가 생긴다.

그런데 최근에 더욱 사용동기를 부여시켜주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들은 관크보다는 더욱 더 집중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혼모노(本物)족’이다. 말뜻은 말 그대로 ‘실체’를 말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민폐를 주는 마니아 즉, ‘진상 오타쿠’를 가리킨다. 진상 오타쿠들이 영화관에 등장했으니 이 말이 회자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화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면서 이 현상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지적이 매체를 통해서 보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지적인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된 면이 있다.

일단 영화 상영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효과음을 흉내 내기, 배경 음악을 따라 부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굿즈를 받기 위해 팝콘을 구입하고 정작 팝톤 알은 모두 버리는 일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고 지적되었다. 그야말로 민폐를 끼치거나 자원 소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얼마나 좋아하면 그럴까 싶은데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민폐일 뿐이다. 이러한 점은 관크와는 다른 점이 있다. 단지 공연장에서 자신을 위해 민폐를 저지르는 것과 콘텐츠 자체에 대한 열광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사적인 행동은 분명 지적받아야 함이 분명하다.

문화콘텐츠 심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니아 콘텐츠가 대중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벌어질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워낙 관련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하위 공간 속에서 활동을 하다가 공공의 공간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집에서 혼자 컴퓨터 스크린으로 볼 때 하던 행동들이 공공장소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즉 대형 영화 자본이 소수 하위 문화 콘텐츠를 대중공간에 끌고 나올 때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례가 종종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한편으로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소수의 취향은 생명력을 부여받아 대중성을 얻고 콘텐츠의 다양화에 기여한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소수지만 열성적인 마니아들이 많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덕후들이 생산과 소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더욱 더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즐기는 모든 콘텐츠가 이런 혼모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런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것이 소망스런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옆에 있다면 당장에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이용당하는 노이즈의 대상에 머무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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