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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파괴와 혼란 막을 보수 재집결을 이뤄야"


입력 2017.01.13 05:00 수정 2017.01.13 10:18        이상준 기자

정치권, 무책임 발언으로 이념 싸움에 국민선동에 앞장

功利 관점에서 침묵중인 '보통의 보수주의자' 존중해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한민국은 지금 최순실 게이트로 비롯된 정치권과 국민들은 '혼돈'에 빠져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 상태다. 이 와중에 최근 일련의 정치권에서 나오는 유력 대선 주자들이나 국회의원들의 행태와 발언을 보면 참으로 소영웅심리에 입각한 사이다 발언이 아니라 뚫린 입이라고 말을 막 뱉어 놓고 국민들 선동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어떤 당의 대선 유력 후보는 "거대한 촛불로 보수를 깨부셔야 한다"고 표현했다. 또 그는 "헌재에서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선동과 협박을 동시에 한다. 이런 발언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광장정치를 하면서 대중앞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선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는 어렵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 시점에 본질이 왜곡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국면에 이르자 보수니 진보니 하며 이념 싸움에 여념이 없는 우리 정치권, 그저 온 나라가 안정이 안 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국 사회는 원래 이념사회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당파들은 있었지만 뚜렷한 이념은 없었다. 일부 지식인들에 한정된 상태로 이어져 온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불과 30년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간단하게 우파냐 좌파냐로 간단한 명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각자의 이념을 대변할 수 있는 뚜렷한 이념체계를 말 해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다.

보수주의가 이념사조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때인 1790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펴낸 '프랑스 혁명 및 이에 관한 런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관한 고찰-일명 프랑스 혁명에 관할 고찰'에서 부터다.

즉,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면서 보수주의가 생긴 것. 여기서 보수주의의 핵심은 파괴와 혼란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파괴와 혼란을 막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파괴와 혼란을 막아서 당장은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훨씬 잘 발현될 수 있는 사람들의 창의력과 자발적 적극성을 끌어내어 '발전(진보)'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생명과 행복을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보수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버크는 "변화를 위한 수단이 없는 국가는 그 보존 수단도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보수주의는 끊임없이 변화와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 과거에도 변화와 진보를 추구해야 했지만 미래에는 사회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과거에 비해 몇 배 더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또 변화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빠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의 사회발전을 유지하면서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보수주의의 본질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사회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속도감각을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적절한 균형속도였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지나치게 늦은 속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걸맞은 속도 감각이 무엇인지를 늘 예의주시하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변화해 가야 하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어느 한 쪽 극단으로 치우치면 파괴와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본질적으로 균형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의 균형, 혁신과 전통 사이의 균형, 지나치게 빠른 변화와 지나치게 느린 변화 사이의 균형, 자유와 평등 사이의 균형 등을 모두 중시한다. 그 균형 중에서도 개인과 집단 사이의 균형,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의 균형이 특히 중요하다. 개인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쳐도 사회불안 요소가 생기며 집단주의에 치우쳐도 극단적 현상이 생길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반적인 사회는 쉽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물론 사회 자체에 균형을 추구하는 힘도 있지만 대체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쳤다가 균형을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혼란과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파와 좌파의 대립 그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파나 좌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역사 인식에서 균형감을 크게 잃고 있다. 우파나 좌파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 해보거나 SNS에 올린 글들을 읽어보면 한국근대사와 현대사를 극단적으로 편향되게 보려는 경향이 여전히 매우 강하다. 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들을 극단적으로 비하하거나 일방적으로 찬양하려는 움직임들로 넘쳐난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균형을 추구하는 발언을 하면 기회주의자이거나 첩자로 매도당하기 일쑤이다. 균형을 잃고 이런 극단적인 것을 미화하고 극단적인 것에서 발전의 동력이 생긴다고 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처럼 극단적 주장을 체계적으로 합리화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이 균형을 많이 상실했는지 아닌지 늘 반성하면서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인명 존중의 관점에서 보나 사람들의 공리(功利)의 관점에서 보나 사회 진보의 관점에서 보나 파괴와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보고 파괴와 혼란을 최소화할 속도와 방법으로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세력도 거의 없다. 다만 차마 앞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침묵하고 묵묵히 지켜보는 '보통의 보수주의자'들이 많다. 이제 출발선상에 섰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이념논쟁이 훨씬 건강해지고 덜 위험해지고 미래지향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상준 기자 (bm2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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