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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즐겨라" 욜로 열풍의 씁쓸한 이면


입력 2017.01.09 10:27 수정 2017.01.09 10:37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미래를 준비하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

인터넷 화면 캡처. 인터넷 화면 캡처.
지난 연말에 ‘욜로 열풍’을 다룬 기사가 페이스북에서 화제였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 트렌드 코리아 2017 >에서도 ‘욜로’가 2017년의 키워드중 하나로 제시됐다. tvN ‘트렌더스’에서도 욜로를 2017년 주요 트렌드로 제시했다.

욜로(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한번뿐인 인생’이란 뜻이다. 원래는 미국에서 2011년에 등장한 신조어이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쓰면서 유명해졌다. 자신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직접 출연해 'yolo, man'이라고 한 것이다. 2016년 9월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되기도 했다.

우리에겐 tvN의 < 꽃보다 청춘 > 아프리카 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출연진이 아프리카에서 홀로 여행중인 서양 여성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자 그 여성이 ‘욜로!“라고 화답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던 것이다.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즐기며 사랑하자는 뜻이다. 이것이 2017년 키워드로 꼽히는 이유는,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한번뿐인 인생인데 불편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즐거운 게 최선이다’라는 사고방식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1990년 개봉작인 < 죽은 시인의 사회 >가 한국인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위로 꼽혀 재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화제가 된 대사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이다. 욜로족 코드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작품을 재개봉시킨 것에서도 욜로족의 영향력이 확인된다.

욜로족의 흐름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여행분야다. <꽃보다 청춘>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거기에서 홀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사람이 ‘욜로’라고 하자 한국 네티즌이 강하게 반응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여행을 즐기며 매 순간순간을 SNS에 올리는 네티즌에게 다른 사람들이 ‘#yolo’라고 응원하기도 한다. 여행의 내용도 모두가 으레 하는 유명코스 순례가 아니라, 고생스럽더라도 자기만의 의미와 짜릿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개별 여행의 수요가 많아지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욜로족은 성공을 꿈꾸며 도시에서 각박하게 사는 것보다 여유로운 지방에서 일상을 즐기는 삶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효리가 제주도로 이주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도 욜로 트렌드와 연관이 있다. 웹디자이너 권산 씨는 전남 구례로 귀촌해 ‘한 번뿐인 삶 YOLO'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꾸미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과거엔 전셋집을 꾸미기보다 그 돈을 아껴 집 살 돈을 마련했지만, 요즘엔 전셋집 꾸미기에도 아낌없이 투자한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벤트에도 많이 참여하고, 취미에도 몰입한다.

모두가 비슷한 형태의 성공만을 꿈꾸며 비슷한 삶을 살았던 시대에서, 사회가 보다 풍요로워진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나의 가치, 나의 취향, 나의 행복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금욕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대에서 욕망을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는 시대로의 전환이기도 하다. 과거엔 즐거움(쾌락)을 악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선이 돼가고 있다. 즐겁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다.

이것은 불안의 결과이기도 하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젊은이들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 시대엔 현재를 희생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타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었으며, 집을 사면 저절로 자산이 커졌다. 지금은 만성적인 저성장에 진입했고, 불황과 양극화로 미래 희망이 상당부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욜로인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고행길을 자처하기보다 지금 당장 즐거운 일에 올인한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나타나면 몸을 던진다. 전세를 빼 세계여행을 떠난다. 그런 즐거움을 참고 허리띠를 졸라매봐야 미래에 내가 얻을 것이 없으니까.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현재를 강요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래희망이 사라지니까 현재만 남은 것이다. 올해 뽑힐 지도자는 미래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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