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RUN to YOU] 4C(보수·소통·변화·도전), 대한민국을 바꾼다


입력 2017.01.01 05:18 수정 2017.01.04 23:23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사회 지도층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복원 절실

가사상태 현 정권 반면교사 삼아야 새로운 보수 잉태

31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의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집회 1000만명 돌파를 자축하며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31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의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집회 1000만명 돌파를 자축하며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다들 ‘보수의 위기’라고 얘기한다. 탄핵 위기에 몰린 보수 정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보수 진영의 위기이지 보수 이념의 위기는 아니다. 이념으로서 보수는 진보와 함께 민주주의가 계속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양대 축이다. 어느 사회든 강자와 약자가 혼재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배분 기준에 따라 우열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이 지력(知力)이든 체력(體力)이든 합의된 기준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느 모친께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아들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형 하나만 대학에 보내기로 하고, 대신 동생에게는 대학을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집안의 기둥인 형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서 성공하면 부모형제를 보살펴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어이 헌책을 사서 주경야독한 끝에 대학에 입학했고, 고학으로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이후 사회에 진출해 형보다 더 성공했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굳이 따진다면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모친의 성향은 보수주의였다. 반면 형의 성공 가능성에 안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로를 개척했던 청년 이명박은 진보주의자였다. 보수와 진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 속에 녹아있고, 불가피하게 우리는 양쪽 사이 한 지점에 서 있다.

신당의 보수가 새누리당의 보수와 얼마나 다르겠나…'실천'이 문제
‘개혁보수신당’이 새로운 보수의 길을 주창하며 신당창당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자신들이 박차고 나온 새누리당과 차별화하기 위해 신당의 정강정책이 경제민주화 등 ‘좌클릭’ 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기존 새누리당 강령에는 보수의 핵심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가 담겨 있다. 기본정책에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이란 제목으로 경제민주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은 단지 ‘실천’을 제대로 못했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이 땅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전장에서 빛났다. 미국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전사 또는 부상했다. 1950년 미 육사를 졸업한 신임소위 678명 중 365명이 한국전에 참전해 41명이 전사하고 69명이 부상당했다. 이들은 맥아더, 아이젠아워, 패튼 등 제2차 세계대전 전쟁영웅들의 영향으로 육사에 입학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한국전장에서 빛났던 미국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개전 한 달 남짓한 8월 1일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해야 했다.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뒤 “죽음으로 지켜라(Stand or Die)”라면서 결사항전을 독려했다. 워커 장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한국의 지도층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당시 상황을 전한 글들을 보면, 고위층 및 부유층 인사들은 부산항에 금품을 가득 실은 배를 대놓고 전황이 여의치 않으면 일본으로 밀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일부는 이미 제주도로 넘어갔다. 육군은 헌병 1개 소대를 풀어 부산항만 일대를 수색한 결과 유명 정치인과 고위 장성까지 붙들려 왔으며 중령급 이상 8명이 체포됐다고 한다.

한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언제부터인가 붕괴됐다. 국가 위난시기에 초개처럼 목숨을 바쳤던 우국충절의 선비정신은 세도정치가 창궐한 조선말기와 국권을 빼앗긴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질식사하다시피 했다. 갈등과 혼돈의 해방공간을 거쳐 남북한이 무력 충돌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는 ‘꺼삐딴 리’ 같은 기회주의적 처세의 달인들이 적자(適者)로 활보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정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선 국가권력을 이용하는 편법과 특혜가 성공을 보장하는 필수카드로 자리매김했으며, 공동체보다 개인의 영달을 우선시하는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기도 했다. 이런 황량한 시대상황 속에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 의식이 뿌리내릴 만한 토양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거머쥔 권력의 칼날을 주체하지 못해 안쪽 날에 살이 베이고 말았다. 재벌의 금력을 수십 배 능가하는 국가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나니 이 정도 ‘떡고물’은 별일 없겠지 방심했을지 모른다.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 답변서에서 '국정 총량 중에서 최순실 관여 비율은 1% 미만이다'라고 주장한 데서 이런 사고가 엿보인다. 대면 없는 서면보고와 토론 없는 지시회의로 스스로를 구중궁궐에 가두고 비선세력과 어울리는 ‘불통 문화’의 주인공이 됐다. 수하의 비서 조직은 정권 안위와 대통령 심기를 위해선 국익과 법치를 무시하고 직권을 남용하는 복마전(伏魔殿)으로 변질됐다. 그 결과는 보수 정권의 몰락 위기다.

이 땅의 보수 이념이 다시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기 위해선 보수 정치인들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 자신들에게 정치생명을 안겨준 대권주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편가르기, 줄세우기 같은 계파논리에 젖어 있었던 지난 10년간의 적폐는 뿌리째 청산돼야 한다. 구태 정치인들의 환골탈태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아예 물갈이도 불사해야 한다.

한국 보수 정치인들의 이면은?
자칭 보수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느껴 보라. 따뜻한 혈류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지는가? 얼음처럼 차가운 머리에서 내려온 냉혈(冷血)이 흐르고 있지는 않는가? 선거 때마다 주민들 손을 마주잡으며 억지 미소라도 짓곤 하지만 겹겹의 양파껍질 속에는 유권자를 당선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사고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가?

정치는 왜 하려 하는가?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위해 자기 한 몸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소명의식의 발로인가? 타인을 지배하고 허리를 굽히도록 만드는 권력욕 때문은 아닌가? 이권에 개입해 개인적 치부(致富)를 도모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닌가? 기왕에 축적한 부와 재산을 보호하고 증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열린 사고, 따뜻한 소통, 기득권 도전정신 등 새로운 보수 자양분
앞으로 이런 유(類)의 일탈과 비위는 정치인들 뇌리 속에 입안될 여지부터 대폭 줄어들 것이다. 전국적으로 누적 참가자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한 10차례의 촛불집회는 한국 정치인과 지도층에게 예전보다 몇 배 더 엄격한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은 더 이상 떠받들기만 하는 불가침(不可侵) 대상이 아니라 금도(襟度)를 넘어서면 끌어내릴 수도 있는 것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제 보수 진영은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 활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열린 사고와 포용적 자세로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따뜻한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리더십만이 새 생명을 담보할 수 있다. 변화된 시대정신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그 구현을 위해 현실정치의 기득권 세력에 과감히 부닥칠 수 있는 도전정신만이 새로운 보수 리더십을 잉태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권혁식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