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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수를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있는가?


입력 2016.12.04 16:51 수정 2017.01.04 23:21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불꺼진 청와대에 적막이 감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불꺼진 청와대에 적막이 감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치인의 리더십에서 도덕성, 판단력, 인내력, 결단력, 포용력 같은 내용물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전에 리더로서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미리 알고자 하는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이 이런 것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리더십을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가 ‘포장술’이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된 세상에선 정치인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적은 것도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후보자들을 놓고 선거를 통해 주권을 넘겨줄 최종 승자를 가리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내용물과 상관없이 포장술에 의해 권좌의 주인이 달라질 개연성은 상존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98년4월 정계 입문 뒤 2012년12월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리더로서 필요한 내용물에 대해 여러 차례 검증을 받았다. ‘천막당사’, ‘선거의 여왕’, ‘친박계’ 등 그의 정치 이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름대로 도덕성과 판단력, 인내력, 결단력 등에서 많은 의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특유의 ‘레이저’를 생각하면 포용력에선 의문표가 따라 붙었지만 그 우산 밑에서 공생했던 친박 의원들에겐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권 성공 요인으로 이런 내용물만을 꼽는다면 설명이 부족하다. 포장술의 덕을 안 봤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최순실 사태’로 원칙과 신뢰를 앞세웠던 그의 도덕성에도 적지 않은 ‘거품’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런 관점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포장을 위해선 내용물을 박스에 담고 포장지를 씌운 뒤 끈으로 묶고 리본으로 장식한다. 박 대통령에게 화려한 포장지가 돼준 것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일 것이다. 춘궁기에 초근목피로 견디며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세대에는 산업화를 성공시킨 부친에 대한 사의(謝意)가 그의 지지로 연결됐을 것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로운 삶을 살아온 그의 생(生)에 대한 측은지심도 발동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영애로서 어깨 넘어라도 보고 배운 게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국민들이 가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부친의 후광을 본인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그의 리더십을 포장한 마지막 끈과 리본은 ‘과묵’이라고 본다. 탁월한 언변력을 갖고도 불필요한 발언으로 곧잘 설화를 겪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하면 박 대통령의 과묵은 이점이 많았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 굵고 짧은 메시지는 국민들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일찍이 전여옥 전 의원은 ‘베이비 토크’ 수준이라고 평가절하 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과묵에서 오는 또다른 강점은 은폐와 막연한 기대감일 것이다. 은폐되고 숨겨진 미지의 상자 안에 든 내용물에 대해 국민들은 뭔가 남다른 자질과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더욱 키웠던 것이다.

이들 내용물과 포장술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4년 전 박 대통령은 대권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건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 차이를 스스로 국민 눈앞에 보여줬다.

그의 과묵은 고질적인 ‘불통’으로 나타났다. 토론이 없는 회의 주재, 대면보고를 꺼리는 업무 스타일, 기자회견 기피와 일문일답 부재 등 해당 사례가 많다. 내각 및 비서진과의 원활한 정책협의뿐 아니라 최적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대통령의 불통은 치명적인 장애물이 됐다. 대면보고가 없었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이번 최순실 사태로 박 대통령을 감싸고 있던 ‘포장 체계’는 완전히 해체됐다. 어제 촛불집회에 전국에서 232만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했다. 참가인원을 놓고 주최 측과 경찰 추산이 다르더라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역대 최대 규모’라는 기록경신이 계속된다는 점에선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점점 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깃발과 팻말을 보고 광장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평소 집회나 시위는 노조나 이익단체 몫이라고 생각했던 일반인들도 가족의 손을 잡고 '문턱'을 넘고 있다.

아무리 집회가 축제 분위기라고 하더라도 정치구호가 분출하고 경찰병력이 출동해 있는 현장이다. 그런 공간에 대통령을 비꼬고 풍자하는 해학이 흐르고 어린 꼬마들의 눈요깃감이 넘친다는 것은 대통령 리더십이 조롱거리가 됐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최순실 일가의 3대에 걸친 국정농락에 들불처럼 성난 민심이 박 대통령 리더십을 포장하고 있던 리본을 뜯어버렸고 끈을 풀어헤쳤으며 포장지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대통령이 기득권에 집착할수록 입지는 점점 좁아드는 양상이다.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책임총리’와 ‘거국중립내각’ 간의 힘겨루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눈앞에 탄핵안이 노려보며 버티고 있다. 탄핵안은 야3당이 3일 공동발의함으로써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9일 표결로 날아가고 있다. 화살은 적중할 수도 있고, 빗맞을 수도 있다. 새누리당 비주류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비주류가 작심하고 표적을 옆으로 제치면 탄핵안은 부결될 수 있다.

그런데 비주류에 부여된 운신의 폭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당초 비주류는 '대통령이 7일 오후 6시까지 4월 자진사퇴를 공언하면 9일 표결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대통령에게 퇴로를 열어줬다. 그러나 야권은 그 퇴로마저 막아버릴 심산이다. 만일 9일 표결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모든 책임을 비주류 측에 돌리겠다고 경고했다. 비주류로선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선 날아오는 화살에 자신들의 등을 대신 내밀어야할 판이다. 부결에 뒤따를 성난 민심을 견뎌낼 각오를 하고 탄핵 대오에서 이탈할 수 있을 것인가?

박 대통령은 ‘신보수주의’ 노선을 걸어온 10년 보수정권의 후반 주자다. ‘낙수효과’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에 이어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이끌었다. 최근까지 ‘증세 없는 복지’ 원칙도 고수해왔다. 비록 박근혜 정부의 5년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2.9%)가 세계경제 평균성장률(3.3%)보다 밑도는 건 사실이지만, 보수정권의 ‘판정패’를 선언할 만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최순실 사태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재평가가 불가피하지만, 보수정권의 정체성과 효용성이 도매금으로 매도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남미의 좌파정권은 포퓰리즘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고, 유럽의 좌파정권도 과도한 복지정책에 따른 재정파탄으로 몰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3차례 대국민담화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보수 이념의 가치와 좌표를 새롭게 정립하고 보수정권의 새로운 출발을 조금이라도 염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박 대통령의 희생(犧牲)이 자양분으로 필요하다. 이문열 작가가 최근 조선일보 칼럼에서 ‘창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왕보다 더 품위 있고 고귀한 여왕이 돼 죽는다’라고 읊었던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왕이 아니면서 여왕으로 행세하며 죽음을 받아들인 그 여인과 달리 실제 여왕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역사의 재단에 바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그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스로 바칠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고 판단될 때 국익과 후세를 위해 과감한 희생과 양보, 포기가 가능할 따름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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