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연말 극장들은 망했다. 왜?.....


입력 2016.12.04 11:47 수정 2016.12.04 11:49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현실 반영과 개선에 미흡한 영화시장

ⓒ연합뉴스 ⓒ연합뉴스

11월말 개봉이 중요한 이유는 연말까지 흥행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연말 극장가는 세 가지의 장르가 관객을 찾는다. 하나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여기에는 가족 영화, 로맨스 영화가 속한다. 이런 영화는 관객들의 휴머니즘이나 사랑의 정서를 자아낸다. 다음으로 액션 오락 영화를 두 번째로 들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은 눈을 시원하게 정화할 수 있는 볼거리와 통쾌한 결말로 한 해 쌓인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판타지 영화를 들 수가 있다. 환타지 영화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벗어나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각종 특수효과가 버무려져 초현실의 세상에서 시름 근심을 잊게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송구영신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적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장르의 구분은 갈수록 무의미해지고 있다. 많은 관객들을 포괄해야 하는 상업 영화는 이런 각각의 코드를 하나의 영화에 융합하기에 적극적이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붙이자면,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는 방학을 겨냥해 가족까지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들은 노고에 비해 엄청난 복병을 맞았다. 만약 그것이 장애물이 아니라면, 사회적인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잊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난 것일까.

최순실 정국에서 드라마나 예능보다 뉴스가 재미있다는 말이 이제 전혀 새롭지도 낯설지 않다. 그대로 전달하는 뉴스가 이렇게 재미를 위주로 하는 콘텐츠보다 몰입을 이끌어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히려 갈수록 뉴스는 그에 부응하고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 뉴스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픽션보다 놀라움과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철저히 팩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팩트들은 온전하게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각각 나뉘어진 조각과 파편을 맞추어 가는 방식은 팩션이나 팩추얼 컨텐츠보다 더 추리물에서 맞게 되는 성취감을 얻게 한다. 해외 판타지 영화는 그렇다해도 국내 판타지 영화는 현실을 생각할 때 미안함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영화 '가려진 시간'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혼자 집에서 본다고 미안함이 들 리가 없을 것이다.

연말이면 영화의 가족 코드를 통해서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 희망을 말하려 한다. 애니메이션도 대부분 세상에 관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자는 내용들이 작금의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가능할 지 알 수가 없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받고, 그 능력에 맞게 자신의 꿈을 이뤄갈 수 있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라도 그런 모습들이 충분히 반영되면 대중적 관심을 가질 것이다. 불의와 악행에 판치는 현실을 바로잡거나 고발하는 내용이 이에 해당할 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 자체를 고발하는 영화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대중적 눈길을 끌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현실의 모순과 부정부패를 다룬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는 영화들의 흥행세가 작년만 못한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

예컨대, '아수라' 같이 자치단체장의 비리를 다룬 영화는 무력했다. 더 중앙 핵심 권력에서 일어나는 농단이 더 무섭다는 것을 국민들은 날마다 보고 있다. 영화 '마스터'가 이러한 범위와 층위를 커버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단지 지진 문제를 다룬 재난 영화가 '판도라'도 충격과 고통, 분노를 대변할 수 있을 지 되새기게 된다. '자백'이나 '무현'에 들른 관객은 뭐라도 잡아 보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비수기에도 영화 관객은 늘었기 때문에 올해는 근래에 다양한 장르들 예를 들어 공포영화까지도 이때 개봉했다. 하지만 실제 극장가에는 관객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이 촛불 집회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촛불집회가 아니라면 극장에 관객이 많아질 것이라는 추론에 따른 말이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있는 토요일 외에 다른 요일에도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를 정말 보고자 한다면 다른 시간대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동기 부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었는지 따져 볼 문제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적인 목적 때문에요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극장 방문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알 수가 있다. 반대로 지금 극장을 가는 동기가 정말 봐야할 영화가 있기 때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영화를 찾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라면 언제든 포기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을 요약한다면, 판타지에 빠지기엔 너무 현실이 분노스럽고, 현실에 관한 영화를 보자니 현실을 오롯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었던 세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력한 현실에서 문화콘텐츠에서 말하는 세상은 부질없게 느껴질 만하다. 그러니 극장에 관객이 덜 드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해 보인다. 촛불의 탓이 아니라 문화콘텐츠 자체가 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과 문화콘텐트의 가치 지향은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고 수익 모델도 그에서 나온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김헌식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