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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가 덕후스러면 성공 덕후될까


입력 2016.11.19 09:59 수정 2016.11.19 10:01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김헌식의 문화 꼬기>공감과 공유가 전제돼야 성덕 가능

비행기 덕후의 성지,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USA Washington D.C.) 비행기 덕후의 성지,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USA Washington D.C.)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이는 최근 많이 회자되는 성공 덕후라는 말과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덕후는 성공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어떻게 성공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성공한다는 말쯤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여긴다면 애써 덕후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おたく)를 한국식으로 풀어낸 오덕후에서 다시 앞음절을 없앤 말이다. 오타쿠는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집중하는 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쳤다면서 광적이라는 말은 다른 이들에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이 관심있는 것에만 애착하는 사람이므로 외모나 사회적 관계에도 서투를 것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마니아가 긍정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덕후하면 자신만의 취향을 확실하게 가지면서도 전문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좋게 여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때문에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너무나 많아지게 되었다. 온라인을 매개로 활동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온라인공간에서만 활동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규정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혼자 골방에 있어도 덕질을 많이 하면 성덕이 되고 덕밍아웃하는 가운데 그것이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단계로 확립된 모습이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취향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획일적인 트렌드보다는 각자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취향을 유지하는 데는 잉여가 뒷받침되고 있다. 사회적 잉여와 함께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하고 깊은 지식과 분석, 나아가 통찰이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얇고 넓은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좁고 깊은 스페셜 리스트를 원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취향의 공동체의 탄생과 함께 덕후 문화는 같이 진화하고 있다. 같은 취향을 갖고 있는 이들끼리 이합집산을 하고 헤쳐모이기를 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덕밍아웃을 하게 되면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급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그 덕후질을 하는 아이템이 일반적으로 많이 공유가 되지 않은 것일수록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이 쳐다보지도 않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덕후라는 점이 알려지면 놀라움과 함께 경외감을 갖게 만든다. 하찮을 것 같은 대상에 관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매우 오랫동안 공력을 쌓아왔다는 사실은 매우 의식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창조성은 이러한 기질 속에서 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아마추어지만 전문가이고 그냥 정보를 갖고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직접 크리에이터가 되는 일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같은 취향을 가진 존재이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 매혹을 느끼게 된다. 거꾸로 하찮은 덕질을 하던 시청자들에게 자부심과 가치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공진화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

소비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단 한번 그들은 어떤 대상에 충성심을 갖게 되면 끝까지 등골브레이커의 타격을 받을 지라도 떠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덕후들은 연작 시리즈나 스핀오프, 파생상품에 대한 구매력 파워를 갖는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취향을 위해서 덕질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야심이나 욕망이 없다.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순수한 점은 그들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면서도 전문적인 평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결정 장애 현상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해준다.

콘텐츠나 서비스의 기획에서도 이러한 덕후와 덕질은 덕업과도 연결된다. 기업들이 이러한 덕후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후의 기질이나 경험은 이와 관련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제작 마케팅 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후 취향 저격이라면 더욱 이런 유형의 인재를 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 기반되지 않는다면 콘텐츠와 서비스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창원에서 성공한 덕후가 되려면 그것이 경영이나 비즈니스 관점에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온전히 '오타쿠'스러울 경우에는 힘든 면이 있는 것이다. 이는 공감과 공유가 가능해야만 성덕이 가능한 것임을 재인식하면 충분하다. 단지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덕질을 한다고 해서 그 역량을 발휘하고, 그에 따른 효과를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오타쿠는 오타쿠이다.

그러한 오타쿠는 자신의 그런 취향이든 기질을 통해서 구직 활동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 즐겁다면 주변 눈치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으며 노력해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고 했다. 성공 덕후가 아니라도 그들은 그만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그들이 덕후에 빠진 대상들은 과거형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 미래에 어떻게 기획하고 개발하는가가 중요한데 그부분은 여전히 물음표이기 때문이다. 성공은 필연이 아니라 대부분 우연이지만 세렌디피티 법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잘만하면 덕후들은 긍정적인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들만큼 대상에 대해서 사랑하고 깊이 알며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이 클수록 그는 더 이상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통해서 경제현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마니아 수준이 아니라 범용수준으로 들어설 때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상품구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끊임없이 컨베이어벨트처럼 그렇게 덜덜거리는 모양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취향을 좋아하고 자신의 감정이입의 페시티즘은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물건이나 사물은 현대 소비구조가 만들어낸 것이다. 정말 창조적인 정신을 갖는 이들이라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덕후 물건과 서비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트렌드를 쫓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맨땅에 헤딩하기의 달인들은 단기간에 활용하여 수익 상품화로 연결하는 데는 상당한 노고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자아가 충만해지는 가운데 더 심화된 단계는 덕후를 넘어서서 각 개인의 창작 문화로 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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