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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는' 스펙 다 모여라" 탈북민 성공적 남한정착기


입력 2016.10.28 08:38 수정 2016.10.28 08:38        박진여 기자

배고파 찾은 한국에서 대농장 운영하는 '평양댁' 되기까지

북 베테랑 기계공, 자타공인 남한 최고 '먹쟁이' 되기까지

27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남북하나재단(손광주 이사장)이 주최한 ‘2016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남북하나재단 27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남북하나재단(손광주 이사장)이 주최한 ‘2016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남북하나재단

배고파 찾은 한국에서 대농장 운영하는 '평양댁' 되기까지
북 베테랑 기계공, 자타공인 남한 최고 '먹쟁이' 되기까지

대농장 운영자, 청년 사업가, 여성 최고 ‘먹쟁이’, 중환자실 간호사, 교육계 연구원, 미래 영화감독, 미래 초등교사까지. 사회 각계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경험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배고파서 찾은 한국 땅에서 이제는 꿈을 찾는 이야기, 가족 없이 홀로 찾은 한국에서 자신보다 소중한 가족을 만난 이야기들이 ‘후배 탈북민’ 등 2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27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남북하나재단(손광주 이사장)이 주최한 ‘2016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총 92명의 응모자 가운데 두 차례의 예선을 거쳐 최종 발표자 12인이 ‘着韓(착한) 탈북민’으로 선정됐다. 이날 행사에는 하나원에서 적응교육을 받고 있는 하나원 교육생 150명이 참석해 선배들의 정착경험담을 듣고, 탈북민 채용을 검토 중인 기업체 인사담당자도 참여해 발표자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세 번째 개최된 행사는 남한 사회 성공 정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탈북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탈북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획됐다. 한국 땅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을 이룬 12인의 탈북민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이 겪은 ‘좌충우돌’ 대한민국 정착경험담을 생생히 전달했다.

“실수는 도전을 낳는다”, “오기도 힘이 된다”, “내 꿈은 통일 교육 전문가”, “‘꿀’처럼 달콤하게 정착중”, “탈북민에서 통일 서예강사”, “남한 최고의 ‘먹쟁이’” 등 발표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행사에 참가한 탈북민들은 입국 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끝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함으로서 주변에 감동을 주고 있다.

배고파 찾은 한국서 대농장 운영하는 ‘평양댁’ 되기까지

“아이들에게 추위와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온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노력해 지금은 6000평의 어엿한 포도농장 주인이 됐습니다”

2011년 두 아이와 함께 생계를 위해 남한 땅을 밟은 김주영(가명) 씨. 현재 그는 6000여 평의 포도밭을 운영하며 영농인으로, 사업가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생계를 위해 한국 땅을 밟은 김 씨는 이제 아이들의 꿈을 위해 인생 제2막을 성공적으로 열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성공 정착사례로 선정된 김 씨는 ‘포도와 함께 영글어 가는 꿈’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겪은 지난 5년간의 남한 정착기를 생생히 전했다. 정착 초기 궂은일도 마다하며 밤낮으로 일하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부터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김 씨는 이 모든 과정을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말한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만큼은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에 왔지만, 차별과 멸시로 처음에는 시련과 좌절의 땅이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6000평의 어엿한 포도농장 주인이 돼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먹이고, 꿈도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간의 과정은 혹독했다. 김 씨는 발표 도중 자신의 왼손을 들어올리며 “정착 초기 돈을 벌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작업 중 왼쪽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면서 “장애를 얻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자 귀농을 선택했고, 영농기술을 배워 포도농사를 시작해 새벽부터 일어나 매일같이 농사에 매달렸다”고 전했다.

그는 “몸은 피곤해도 계절에 따라 익어가는 포도를 보며 희망도 주렁주렁 열렸다”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을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평양댁’이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대해줬고, 지금의 남편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시련이 참 아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보상을 위한 선불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북 베태랑 기계공, '남한 최고 먹쟁이'가 되기까지

“북한에서 기계수리공으로 15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남한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싶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다수의 기계차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지금은 자타공인 ‘철의 여인’이 됐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들과 함께 남한 땅을 밟은 김영순(가명) 씨. 현재 그는 전문기술로 최소 월 3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슈퍼우먼’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이민형 탈북’을 선택한 김 씨는 북한에서의 전공을 살려 남한 사회에서 전문 기술자로서 인생 제2막을 성공적으로 열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성공 정착사례로 선정된 김 씨는 ‘남한 최고의 먹쟁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겪은 남한 정착기를 생생히 전했다. 북한에서 기계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김 씨는 자신의 기술을 키워 남한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이루고자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전기용접, 특수용접, 굴삭기, 지게차, 타워크레인 등 기계차 관련 자격증을 다수 취득하며 작업현장에서 인정받는 ‘고급인력’이 됐다.

김 씨는 “북한에서 배운 기술이 있으니 이 경험을 살려 최소 월 300만원은 벌자는 목표를 갖고 남한 현장에서 인정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용어가 어려워 수험서를 통째로 외우다시피 공부해 필기에 합격했고, 실습도 초심의 마음으로 공부해 기계차 관련 자격증 5개를 한 번에 취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김 씨는 자격증 학원에서 한 번에 수개의 자격증을 딴 전설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는 자격증 공부보다 훨씬 어려웠다. 김 씨는 “일하는 곳이 주로 남성들이 많다보니 여성이라서 차별받기도 했고, 탈북민이라서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나만의 기술’이 있었고, 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무시를 당한 만큼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기술을 더 익히기 위해 공부를 쉬지 않았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일당도 높고, 현장 동료들로부터 남한에서 제일 먹(현장용)을 잘 놓는다는 칭찬도 받게됐다”면서 “노력한 만큼 실력과 성실함은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됐고, 이제는 입소문이 나 일을 찾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취득한 자격증이 모두 강인하고 커다란 기계들인 만큼, 씩씩하고 굳세게 살아가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사례자들의 남한생활정착기 발표 이후 심사위원단의 심사와 하나원생 청중평가 결과에 따라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특별상, 우정상 등의 시상식이 진행됐다. △대상에는 ‘양봉 400통’ 양봉사업가 부부 △최우수상에는 ‘자격증 부자’ 기계공, 치기공사 청년 △우수상에는 북한음식을 판매하는 청년사업가, 교육계 연구원 △장려상에는 미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상영화학과 학생, 미래 초등 교사를 꿈꾸는 교육대생, 음식점 운영자, 간호사 △특별상에는 농장 운영자 △우정상에는 서예 강사, 기숙사 사감 등이 선정됐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남북하나재단의 손광주 이사장은 “12인의 정착경험담이 탈북민에게는 정착의지를 고취하고, 일반국민들에게는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북한이탈주민 3만인 시대, 재단은 이 분들과 같은 정착성공담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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