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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맨입' 녹취록 파문 국회를 덮치다


입력 2016.09.27 12:53 수정 2016.09.27 12:57        문대현 기자

개회사 파문 이후 정 의장과 새누리당 간 2R

집권당 대표의 이례적인 단식 농성, 타협점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26일 오전 국회 의장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26일 오전 국회 의장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국회 대표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국회 대표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의 '맨입 발언'에 새누리당이 집단 반발하며 국회 의사일정이 올스톱 됐다. 지난 1일 정 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를 새누리당이 문제 삼은 지 한 달도 안 돼 또 다시 갈등이 일어난 것. 정 의장 취임 이후 두 번째 발생한 새누리당과의 악연이 어떻게 마무리 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새누리당이 국회 보이콧을 한 건 지난 24일 새벽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투표 과정에서 정 의장이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나눈 대화 내용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정 의장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나…세월호든 뭐든 다 갖고 나오라는데 그게 안돼. 어버이연합(청문회) 둘 중의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냥 맨입으로 안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를 확인한 새누리당은 정 의장을 향해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문제 삼았고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2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국정감사를 전체 불참하고 소속 의원 129명 전원이 번갈아가며 국회에서 1인 피켓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야당이 상임위원장인 위원회에서 주 안건 상황이나 의사일정 변경 등을 야당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노했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고 "정 의장은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철저히 파괴하고, 한 장관에 대한 인격살인이란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못 느끼고 있다. 정 의장이 무면허 폭주 운전사처럼 태연하게 국회운영을 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강도를 높였다.

이정현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기로 했다. 국회의장에 반해 여당 대표가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달 초에도 정 의장과 부딪쳤다. 정 의장이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논란은 부끄러운 일', '사드 배치 관련한 정부 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등을 언급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에 정 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의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 갔다. 그러나 하루 만인 2일 정 의장과 정 원내대표가 전화통화를 통해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국회 부의장이 정 의장 대신 사회를 보고 정 의장이 5일 본회의에서 파문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밝히는 조건으로 의사일정 재개에 합의했다.

실제로 정 의장은 5일 본회의에서 "본인의 개회사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여러 지적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새누리당에 불리하던 상황, 정세균 '맨입 발언'으로 전세 역전?

새누리당이 이번 일로 국회 보이콧을 맨 처음 언급한 것은 24일 새벽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직후다. 당시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회의장의 위법과 최악의 중립성 훼손으로 국회와 민의가 파괴된 엄중한 사태"라면서 "정상적으로 국회일정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김현아 대변인도 "하지만 정 의장의 중립적이지 못한 자세와 야당의 행태에 끌려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청와대는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에 대해 야당의 부당한 정치공세라고 비판하며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다는 점과 거대 야당을 방치할 경우 국정이 마비된다는 점, 김 장관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해소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든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여론은 여당보다는 야당 쪽에 우세했다. 여야가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며 진행하던 23일 대정부질문에서 여당은 알맹이 없는 질문으로 국무위원들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필리버스터급' 답변으로 일관했다. 국회의원들의 질의 시간에는 제한이 있지만 국무위원들의 답변 시간은 무제한이라는 점을 이용해 김 장관 해임 건의안 상정을 미루고자 하는 정부와 여당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이에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새누리당이 형식적으로는 대정부 질문이라는 외피로 시간 끌기, 방해 꼼수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부에 의한 필리버스터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초유의 의사방해를 목격하고 있다. 김재수 일병 지키기가 눈물겹다"고 비판했다. 시간이 길어지며 대정부질문은 정회 없이 계속됐고 새누리당은 국무위원들의 밥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정회를 요구했고 이 역시 시간을 벌기 위한 행동으로 비춰쳐 야당에선 '필리밥스터'라는 우스꽝스러운 단어를 내기도 했다.

또한 1987년 개헌 이래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앞서 2001년 8월과 2003년 8월 각각 가결된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우, 모두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청와대는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뜻을 표했고 국민 사이에선 행정부가 입법부를 무시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여당은 나름대로의 논리로 정 의장을 압박했으나 여러모로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장의 '맨입 발언'이 알져지자 여당 쪽으로 기울어졌던 비판의 추가 서서히 정 의장을 향해 옮겨가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정 의장이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4일 본회의 투표 도중에 의장석을 찾은 의원과의 대화 내용은 이 같은 노력에도 여야 간 협상과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고 해임건의안이 표결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중립적으로 국회를 운영해야 하는 의장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어떤 안을 두고 여야가 협상을 하며 딜을 할 순 있지만 국회의장은 중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자리"라며 "녹취록이 공개되며 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안을 정당성 없이 협상 카드로 사용한 것으로 비춰져 새누리당이 단식이라는 압박 카드까지 꺼내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과 정 의장의 두번째 대결, 결론은 어떻게?

새누리당과 함께 정 의장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겨눠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간의 기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장 새누리당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상태다. 정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 들어갔다 나온 뒤 "이 대표가 그야말로 끝장을 보려할 것이다. 독한 사람이다"며 "보수 여당을 만만하게 본 것 같은데 물러서지 않는다. 정 의장이 버틸 수 없다"라고 말했다.

8선의 서청원 전 최고위원도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다들 알지 않나"라며 "국회법에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건의안이) 이뤄졌으니까 바로잡아야 된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이러니까"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특히 그는 중재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지금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정 의장도 일단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날 일정 도중 취재진과 만나 "지금은 할 말이 없다"면서도 "그럴 일(사퇴)는 없을 것 같다"고 해 이 대표의 단식에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당 소속 의원의 한 보좌진에 따르면 정 원내대표와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밀리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눴고 27일부터는 적당히 정리될 거란 얘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보에 "쉽게 수습되지 않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신 교수는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는데 한 이틀 정도하다 그만 두면 모양새가 안 좋지 않겠나 최소 1주일은 가지 않겠나 본다"며 "정 의장이 쉽게 물러나진 않겠지만 여당은 국회 공전으로 정 의장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국민의당이 3당으로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최소한 일주일은 이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정 의장과 새누리당만의 문제라는 해석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현재 과정을 보면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볼 수 없다. 정 의장은 대화와 설득으로 국회 운영 파행을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고 여당은 정국을 막고 있다"며 "최소한 정 의장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으면 새누리당도 현재 입장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엄 소장은 "그러나 국회의장이 사퇴까진 힘들 거라 본다.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고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집권당의 대표가 단식 투쟁을 하는 모습을 굉장히 생소한데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 있으면 중단하지 않을까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당 지도부를 정세균 사퇴 관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했다. 비대위원장은 조원진 최고위원이 맡았고 3선의 김성태 의원이 추진본부장을 맡았다. 새누리당은 이 밖에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매일 오전 10시에와 오후 7시 두 차례 의총을 소집해 결기를 다지기로 했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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