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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취업박람회, 금수저·흙수저 감별 박람회?


입력 2016.09.26 16:14 수정 2016.09.26 16:14        이선민 기자

가족관계 묻고 사진 붙이라는 이력서 버젓이 비치

23일 국회 앞 잔디광장에서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23일 국회 앞 잔디광장에서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가족관계 묻고 사진 붙이라는 이력서 버젓이 비치

청년들의 취업 과정에서 부모의 직업이나 출신 대학 등 직무와 연관이 없는 사항을 묻는 관행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를 지양하자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국회·정부가 주최한 취업박람회에서는 외모와 지원자 및 가족의 학력, 직업, 동거여부 등을 묻는 입사지원서가 이력서 작성대에 버젓이 놓여 있었다.

지난 23일 국회 잔디광장에서는 ‘청년에게 힘이 되는 국회!’라는 슬로건으로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서울고용노동청, 서울중소기업청,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청년희망재단, 동반성장위원회,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공동 주관한 대규모 취업박람회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장 곳곳에 비치된 이력서 작성대에는 취업박람회 측에서 제공하는 입사지원서가 쌓여있었다. 이 입사지원서는 고용노동부에서 추천하는 표준이력서와는 다른 사진, 출신학교명, 가족의 학력·직업·동거여부 등을 기재하도록 돼있었다.

고용노동부는 10년 전 취업준비생들이 취업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겪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표준이력서'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다. 이 표준이력서에는 직무와 관련된 사항만 기재하도록 돼있다.

이번 취업박람회를 주최한 고용노동부가 10여년 전 이미 청년들의 취업불평등을 위해 표준이력서를 배포했지만 '표준이력서'가 여전히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국회에서 진행한 채용박람회에서도 입사지원서에 가족의 학력 및 직업, 사진을 기재하게 하면 공정한 채용에 목이 마른 청년이 국회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신보라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조차도 표준이력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고용노동부 및 각 지방청의 자체 채용에서 4557명을 채용한 786건의 채용 중 786건 모두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하도록 돼 있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조차 표준이력서를 사용하지 않은 셈이다.

신 의원은 "청년이 구직과정에서 직무와 무관한 성별이나 외모, 가족관계, 나이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관행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진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고용노동부)가 주최한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 고용노동부 측이 제공했다는 구직신청서(왼쪽)와 ‘데일리안’에서 발견한 입사지원서(오른쪽). ⓒ데일리안 사진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고용노동부)가 주최한 ‘2016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 고용노동부 측이 제공했다는 구직신청서(왼쪽)와 ‘데일리안’에서 발견한 입사지원서(오른쪽). ⓒ데일리안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도 "정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인만큼 기준을 제시해 줘야하고 선진적인 채용문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데,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스펙초월을 주장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문화 정립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허들부터 없애야 한다”며 “가족정보, 신체나 외모에 대한 사항, 불필요한 학력이나 스펙에 대한 사항은 과감히 배제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서울고용청 관계자는 본지에 “원래 비치된 면접자용 구직신청서는 고용노동부 표준이력서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면서 "위탁기관인 인크루트에서 개별 기업 면접자의 편의를 위해 추가로 입사지원서를 비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사안은 꼼꼼히 확인해야하는데, 경황이 없어 미처 확인을 못한게 사실"이라면서 "미리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취업박람회를 운영한 인크루트의 고위관계자는 “문제가 된 이력서는 저희 측에서 구직자들의 편의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며 “사진, 가족관계 등은 기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물의를 일으킨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력서의 사진부착, 과도한 학력사항 기재, 가족정보 기재는 꾸준히 문제가 되어왔으나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는 취업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위해 성별·신앙·연령·신체조건·사회적 신분·출신 지역·학력·출신 학교·혼인·임신·병력을 이유로 구직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 나서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 권고’, ‘표준이력서 도입’ 등을 제시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의 경우 채용 시 나이나 가족관계를 요구하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 받는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이력서에 신체적 조건과 출신지역, 부모 직업 등을 기재하도록 요구할 경우 과태료 부과’라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19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선민 기자 (yeats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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