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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 "뮤지컬만 고집? 다 편견이라니까요"


입력 2016.09.21 17:34 수정 2016.09.21 17:34        이한철 기자

뮤지컬 '킹키부츠' 찰리 역 열연, 편견과의 싸움

"사람들은 잘 몰라요, 내가 얼마나 갈망하는지"

배우 김호영이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울림이 깊은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CJ E&M 배우 김호영이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울림이 깊은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CJ E&M

"고정관념과 편견의 아이콘이었던 제가 '킹키부츠'를 통해 도전과 성공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하겠습니다."

뮤지컬 '킹키부츠' 제작진과 출연진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상견례 자리, 배우 김호영(33)의 예상치 못한 인사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평소 밝고 장난기 많은 김호영이기에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김호영은 '킹키부츠'를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바꿨고, 그 절실함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시작했다. 공연이 개막한지 2주가 훌쩍 지나 만난 김호영은 "개인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라며 "지인들이 안부를 물으면 항상 '행복하다'고 얘기한다"며 뿌듯해했다.

사실 김호영은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남자 배우로 뮤지컬 팬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었다. 뮤지컬 '프리실라' '라카지' '렌트' 등 유독 여장 남자 연기를 많이 한 데다, 목소리 톤과 말투 역시 보통의 남자 배우들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끼가 많고 화려한 패션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도 이런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게 한 요인 중 하나였다.

그가 가진 '희소성의 가치'는 지난 15년간 뮤지컬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힘이기도 했지만, 편견과 오해로 겪는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킹키부츠'의 캐스팅 발표가 났을 때 의아해하는 팬들의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김호영이라면 당연히 여장 남자인 롤라 역을 해야 한다는 편견 가득한 시선은 그가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였다. 드래그퀸이 무대 위를 휘젓는 작품에서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고민하고 도전하는 찰리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 캐릭터다.

"'마마돈크라이'와 같은 작품은 연기적인 것으로 B급, 병맛의 느낌을 살린 것인데 하다 보니 '귀여웠어' '끼가 많아' '너무 잘 노는 애야' 같은 반응이 많았어요. 의도한 게 아닌데 그런 반응만 나올 땐 솔직히 씁쓸하죠."

김호영에 대한 편견은 '킹키부츠'를 통해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 ⓒ CJ E&M 김호영에 대한 편견은 '킹키부츠'를 통해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 ⓒ CJ E&M

특히 30대 중반의 나이, 15년차 뮤지컬배우가 되면서 편견을 깨고 자신의 감춰진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간절함은 커져만 갔다. '희소성의 가치'에 안주하면 자칫 그 이미지의 함정에 빠져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역할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큰 걱정을 안했는데, 내 이미지가 완전히 굳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큰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밖에서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의 한계로 보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런 찰나에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 바로 '킹키부츠'였다. 무엇보다 여장 역할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오디션을 통해 다른 역할로 선택됐다는 점은 김호영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관객들보다 더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를 제작진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찰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배제한 상태, 기대치가 없는 상태에서 오디션에 임해서 그런지 다들 대놓고 '생각보다 잘해서 당황했다.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마음)가 움직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됐다 싶었죠."

김호영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생각이다. ⓒ CJ E&M 김호영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생각이다. ⓒ CJ E&M

오디션 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한 건 자신의 SNS를 거르는(?) 작업이었다. 유머러스하게 보인다거나 여성스러워 보이는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옷 입는 스타일 부터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킹키부츠'인 셈이다. '킹키부츠'는 그동안 잘 부각되지 못했던 김호영의 연기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특히 공장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자신을 질책하며 부르는 '솔 오브 어 맨(Soul Of A Man)'을 부를 땐 관객들은 물론, 동료 배우들마저 감동케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그러나 김호영은 그 어떤 말보다도 "그저 '찰리 같다'는 말이 가장 기분이 좋다"며 편견이 사라진 무대 위 자신의 모습에 가장 큰 의미를 뒀다.

물론 이 정도로 만족할 김호영이 아니다. "평생 연기를 하겠다"는 김호영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예능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곳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돼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길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인 이사 표시가 중요하다며 자신만의 철학 '아기론'과 '수면론'을 끄집어냈다. 아기도 울어야 젖을 주고, 물에 빠진 사람도 수면 위에 올라와 있어야 구해줄 확률이 높다는 거다.

"악역이나 결핍이 있는 연기에 대한 로망이 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오히려 일부러 뮤지컬만 고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편견도 깨고 싶어요. 전 발산하고 싶거든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예요(웃음)."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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