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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엔 왜 하정우 혼자 갇혔을까


입력 2016.08.29 09:52 수정 2016.08.29 09:54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천만흥행 포기하고 던지는 근원적 질문

'터널'은 여름 사나이 하정우와 '끝까지 간다'(2014)를 만든 김성훈 감독이 만난 작품이다.ⓒ쇼박스 '터널'은 여름 사나이 하정우와 '끝까지 간다'(2014)를 만든 김성훈 감독이 만난 작품이다.ⓒ쇼박스

‘터널’이 개봉 18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놀랄 만큼 성공한 것이기도 하고,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놀랄 만큼 성공했다는 것은 한 사람이 터널 안에 갇힌다는 단조로운 이야기로 600만이나 넘어선 것이 놀랍다는 의미이고,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는 것은 올 여름 시즌이 쌍천만 흥행이 터질 호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천만 고지가 버거워보인다는 의미다.

‘터널’을 만든 김성훈 감독도 한 사람이 터널 안에 갇히는 이야기로는 대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비록 혼자 표류했지만 섬을 탐험하기라도 했다. ‘터널’에선 시멘트 더미 속에 한 사람이 갇힌 채로 2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데,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똑같은 재난 상황이라도, 좀 더 대규모로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액션이 펼쳐지고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했다면 ‘부산행’에 이어 천만 흥행이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올 여름 시즌은 더위와, 한동안 한국 영화를 제대로 못 봤던 관객들의 에너지까지 겹쳐 한국 영화 대박의 절대 호기였다.

하지만 ‘터널’은 단조롭고 답답하게, 딱 한 사람이 갇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여름 시즌의 흥행 에너지를 제대로 터뜨리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감독 자신이 ‘터널’의 약점을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한 사람만 갇히는 이야기를 영화화했을까?

그래야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갇혔을 경우 구조 여론이 당연히 비등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면, 단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손해를 감내할 수 있을까?

단 한 명일 때 우리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히 드러낼 수 있다. 그 한 명을 통해 영화 ‘터널’은 우리에게,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의 존엄함은 절대적인 가치다. 이것은 양적으로 숫자가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가치가 아니다. 한 명보다 열 명이 열 배 존엄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존엄하다.

과거 봉건사회에선 인간을 존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왕이나 귀족만 존엄했다.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봉건사회에서 얼마나 시민사회로 잘 진화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터널’은 바로 이 지점을 찍었다. 단 한 명. 단 한 명의 생명을 대하는 우리 공동체의 자세를 물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종 갑질 논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력 철거 등 인간을 우습게 여기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시민사회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한국은 인간 존엄성이 지켜지는 사회입니까?’바로 이것을 묻기 위해 하정우는 혼자 갇혀야 했다. ‘터널’이 천만 흥행을 포기하고 선택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시민사회의 현 주소를 성찰하게 했다. 올 여름 흥행 영화의 가장 큰 울림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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