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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 배구협회, 태극마크 반납해도 할 말이...


입력 2016.08.24 09:00 수정 2016.08.24 09:01        데일리안 스포츠 = 임정혁 객원칼럼니스트

리우올림픽 부실 지원으로 뭇매 '예견된 촌극'

대표 선수들과 수평적 파트너라는 인식 전환 필요

여자 배구대표팀 에이스 김연경. ⓒ 연합뉴스 여자 배구대표팀 에이스 김연경. ⓒ 연합뉴스

대한배구협회가 상식 이하의 여자 배구대표팀 지원을 놓고 환경 탓만 하고 있다.

2016 리우올림픽 부실 지원부터 회식조차 없이 강행한 선수단 해단까지 모두 어쩔 수 없었던 결과라는 식이다. 간판스타 김연경이 라디오에서 대외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했을 정도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 말인 만큼, 더 깊었을 속앓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연경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배구협회의 리우올림픽 지원 논란에 "아쉬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김연경은 "협회에서 AD카드를 산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가는 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안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리우올림픽에서 여자 배구대표팀은 감독, 코치, 전력분석원, 트레이너 4명이 16명의 선수와 동행했다. 선수단의 경기 외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할 통역과 전담 의료진이 빠졌다. 배구협회는 논란이 일자 뒤늦게 "AD카드가 부족해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른 종목은 AD카드 없이 외곽에서 선수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 여론은 더욱 치솟았다.

설상가상 리우 현지에서는 해외 선수생활 덕분에 영어에 능한 김연경이 통역까지 했다. 이런 실상을 모르던 팬들은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 번 4강 진출을 응원했기에 실망이 크다. 불합리한 사태가 드러나고 보니 여자 배구대표팀의 8강 진출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선수들은 그렇게 먼 타국에서 '대표 선수'라는 사명감만 갖고 싸웠다. 애국심에 기댄 비유가 아니라 사실 자체가 그렇다.

프로 선수들이 비시즌에 부상 위험까지 무릅쓰고 브라질까지 갈 이유는 많지 않다. 요즘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자 배구대표팀 선수들은 병역특례와도 관계가 없다. 오로지 태극마크라는 상징성과 선수들 스스로가 느끼는 영광을 원동력으로 삼아 12시간 시차의 리우까지 건너간 것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돌아온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대표팀 운영과 '각자도생' 귀국이니 배구협회 홈페이지가 한때 다운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자 배구대표팀 선수단은 4강 진출에 실패한 뒤 대회 도중 조기 귀국했는데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따로 비행기를 탔다. 배구협회는 이에 "대표팀 경기가 끝났기에 지카 바이러스나 불안한 치안 문제가 있어 일찍 귀국했다"면서 "현지에서 항공편 마련이 어려워 선수단이 나눠서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자 배구대표팀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직후 인천의 한 식당에서 김치찌개 회식을 한 것이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회식조차 없었던 것이 김연경을 통해 확인됐다.

김연경은 "이번엔 아무것도 안 먹었다. 경기 끝나고 회식이 없었다"면서 "(다음엔) 선수들하고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만 있더라도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을 목표로 한다는 국가에서 보기 힘든 방만한 선수 대우다.

이러한 논란들 속에서 배구협회의 해명은 궁색하다. 선수단 AD카드가 문제라면 경기장 근처 숙소를 활용해 스태프들이 선수들을 지원하는 방법도 얼마든 있다. 경기장 근처에 휴게 공간과 숙소 등을 마련한 양궁과 골프가 실제로 그렇게 선수단을 지원했다. AD카드가 없어서 스태프 지원이 힘들었다는 말은 그저 돈을 쓰기 싫어 내놓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실 배구협회의 옹졸함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돈을 엉뚱한 곳에 펑펑 쓰면서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단체가 배구협회이기 때문이다. 배구협회는 지난 2009년 11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배구회관 건물을 매입하며 막대한 빚을 짊어졌다. 당시 배구협회는 114억원이라는 과도한 돈을 은행에서 대출 받아 세금 포함 총 177억원의 돈을 주고 건물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 건물은 당시 감정가가 13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왜 32억원이나 되는 돈을 더 썼는지 해명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그러다 실제 건물 매입 과정에서 협회 내 인사 2명이 차용증을 쓰지도 않고 1억원의 돈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춘표 전 부회장이 협회가 비싸게 건물을 매입하도록 힘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부회장은 올해 초 징역 1년6개월 추징금 1억3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퍼부은 돈은 고스란히 배구협회가 해결해야 할 빚으로 남았다.

이번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4년 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배구대표팀의 존속 여부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대한배구협회 이번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4년 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배구대표팀의 존속 여부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대한배구협회

협회 예산을 눈먼 돈 취급하며 엉뚱하게 쓴 사례는 또 있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에도 배구대표팀에 대한 부실한 지원이 도마에 올랐다. 반면 임태희 회장이 참석한 출정식 행사에는 거액을 쏟아 부어 논란이 됐다. 임태희 회장을 비롯한 협회 고위층이야 언론에 사진 몇 장 찍히면서 '셀프 홍보'의 효과를 누렸겠지만, 선수들은 그 돈 만큼 얻을 수 있는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배구협회는 지난 9일 서병문 전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이 제28대 회장으로 선출되며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고교 시절 배구 선수 활동을 했다는 서 전 부회장은 체육 개혁을 큰 틀로 내걸고 "배구협회 건물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을 내겠다"고 강조했다. 건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부실 지원과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4년 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배구대표팀의 존속 여부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협회가 한 가지 되새겨야 할 것은 이젠 선수가 비시즌 휴식도 포기한 채 무조건 국가대표 소집에 응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상과 같은 그럴듯한 이유로 국가대표 소집 자체를 거절한 사례는 타 종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번처럼 국가대표 운영 자체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다시 받는다면 선수들의 '태극마크 반납'에는 큰 명분이 생긴다. 그때 가서 출중한 기량의 선수들이 배구대표팀 소집을 거부한다면 피해는 배구협회로 돌아가게 돼 있다. 협회를 비롯한 체육 단체가 선수 위에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 배구협회가 건물 문제 해결과 더불어 선수와도 서로 수평적인 파트너라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임정혁 기자 (bohemian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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