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정착 '탈북 외로움' 축구로 해소하는 남북축구의 장


입력 2016.08.22 19:03 수정 2016.08.22 19:04        박진여 기자

남북청년축구교실, 6년간 매주 일요일 5시 축구경기 진행

"'외로운' 탈북민, 축구로 '형제' 얻고 정착생활에도 도움"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남북청년축구교실, 6년간 매주 일요일 5시 축구경기 진행
"'외로운' 탈북민, 축구로 '형제' 얻고 정착생활에도 도움"

“골이야, 골!!!”

21일 오후 5시.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 잔디구장에서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여름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속에서 시원한 골 축포를 쏘아 올린 팀은 탈북청년 축구단인 '미래 FC'. 이들은 이번 주도 어김없이 통일을 향한 ‘첫 골’을 터뜨렸다.

매주 인덕대학교 운동장에서는 조그마한 통일의 장이 열리고 있다. 운동장 중앙 스탠드에는 ‘남북청년축구교실-통일대한민국의 주역으로 준비하자!’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 현수막의 주인공인 미래FC는 20~30대 탈북청년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탈북자단체인 통일미래연대가 2010년 발족,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6년 간 매주 남한 출신으로 구성된 축구팀들과 친선경기를 펼치고 있다.

미래FC라는 이름으로 모인 탈북청년들은 약 50여명. 여느 청춘들처럼 웃음이 많고, 장난기도 많은 이들은 대부분 가족 없이 한국에 홀로 정착해 ‘외톨이’로 지내다가 미래FC라는 이름으로 만나 서로 가족이 되며 지금의 밝은 모습을 찾았다. 또 매주 남측 축구팀과 경기하며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 소통하고 있다.

이날 미래FC는 남측 축구팀인 강북FC와 25분씩 총 4쿼터 경기를 진행했다. 통상 전·후반 45분 경기가 기본이지만, 양측 축구팀 모두 약 50여 명씩 참가하기 때문에 11명씩 총 4번의 경기를 진행한다. 상대팀인 강북FC는 미래FC가 창설된 때부터 지금까지 6년간 함께 경기를 펼쳐온 팀으로, 연령대도 비슷해 이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경기에 앞서 남색 유니폼을 입은 미래FC와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강북FC 선수들은 각자 몸을 풀면서도 중간 중간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미래FC 박명남(30) 팀원은 “혼자 여기(한국에) 와서 많이 외로웠는데 팀원들을 만나 같이 운동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떨쳐냈다”면서 “특히 축구를 통해 남한 분들이랑 만나면서 운동뿐 아니라 생활전반에 대한 경험 이런 걸 많이 배우니까 정착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기 시작 전 미래FC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잘 살았냐”고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던 강북FC 주경진 운영위원장(38)은 “서로 나이도 비슷해 ‘형 동생’ 하는 사이”라면서 “(탈북자라고) 별로 차이를 느낀 적이 없어 그냥 일반 다른 축구팀과 경기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오후 5시. 경기가 시작돼서도 이들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계속됐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1쿼터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공을 두고 양측의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이때 크게 넘어져 시선을 끈 미래FC 팀원이 잘 일어나지 못하자 두 명의 강북 FC 선수가 다가와 양쪽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살뜰히 챙겼다. 이후에도 넘어지고 부딪히는 인원이 속출하는 가운데, 이때마다 곁에 있던 인원이 허리를 굽혀 일으켜 세우고 등을 두드려 주는 모습이 익숙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합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해 거칠고 무뚝뚝하게 상대방을 대했던 탈북 청년들은 남측 축구팀과의 축구경기를 통해 축구보다 ‘매너’를 확실하게 배웠다. 처음 탈북 청년들의 태도에 오해가 쌓여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남측 축구팀도 탈북 청년들에게 ‘매너’를 손수 보여주며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미래FC 박남일 팀원(29)은 “축구를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서로 이질감이 없어진 것”이라면서 “탈북자고 하니 좀 많이 거칠고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축구가 몸을 쓰는 과격한 운동이라 처음에는 태클도 많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좀 부딪혀도 서로 손잡아 일으켜주고 서로 가족이 아니어도 형님, 동생 하는 게 참 좋다”라고 전했다.

이날 경기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박빙으로 전개됐고 5시 25분 무승부로 1쿼터가 종료됐다. 이후 5시 35분 2쿼터가 시작, 양 팀 모두 양 골대를 종횡무진 하는 넓은 행동반경으로 박빙의 승부를 이어갔다. 이 때 경기 시작 15분 만에 미래FC 선수가 현란한 드리블로 공을 빠르게 치고 나간 뒤 상대팀 골망을 뒤흔들었다. 미래FC의 선취점으로 경기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21일 오후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에서 탈북청년 축구단 미래FC와 남측 축구팀 강북FC가 축구경기를 벌였다. ⓒ데일리안

첫 골이 나왔어도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3쿼터, 4쿼터에서 미래FC가 2골을 더 넣고 강북FC도 2골을 넣으며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으나 ‘남북축구교실’ 경기에서는 양 팀 감독들이 자체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을 제외하고 ‘점수판’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총 3:2로 미래FC가 승리했으나, 이를 따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미래FC 유대희 감독(37)은 오늘 경기에 대해 “축구에 대한 매너가 아주 향상된 것 같다. 전에는 승부에 집착해 상대방에게 고의적으로 안 좋은 언어를 쓰거나 과격하게 터치하는 등 비매너적인 행동을 했다면, 이제 경기를 보니 그런 행동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점수를 따로 기록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는 생활축구인들이니 축구 실력보다도 운동장 안에서 22명이 함께 할 수 있는 팀플레이를 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강북FC 김동화 회장(45)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처럼, 형제처럼 경기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은 것”이라면서 “우리가 6년간 함께하면서 이 모습, 저 모습 겪어가며 이를 하나로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으로, 우리의 활동은 축구경기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족 응원단을 대동해 양 팀을 응원하던 통일미래연대 최현준 대표는 “탈북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함께 살 부딪고 소통하는 이 자체가 통일”이라면서 “6년간 함께 축구하며 믿고 의지하는 ‘형제’가 생긴 만큼, 이 친구들이 축구를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며 미래 통일 주역으로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박진여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