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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휴가' 일상으로의 초대


입력 2016.07.31 08:40 수정 2016.07.31 08:45        고수정 기자

<기자수첩> '청콕 휴가' 벗어났지만…본인 위한 시간 가져야 국정 해법 찾을 여유 생긴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기간 중인 28일 울산 중구 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을 찾아 구경하고 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기간 중인 28일 울산 중구 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을 찾아 구경하고 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靑(청와대)콕 휴가’에서 3년 만에 벗어났다. 지난 25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휴가를 관저에서만 보낼 거라는 예상을 깨고 본인이 휴가지로 추천한 울산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시민을 만나고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경남 거제시 저도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콕 휴가’를 택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레임덕’이라는 꼬리표가 박 대통령에 따라 붙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줄이은 비리 의혹,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찬반론, 친박계의 공천 개입 파문, 서별관 회의 논란 등 악재가 겹겹이 쌓였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 침체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 등 정치권의 거센 요구도 부담이다. 1년여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고민의 무게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도 관저를 벗어나지 않을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휴가 나흘째인 28일 박 대통령이 울산을 깜짝 방문했다. 앞서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지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울산을 휴가지로 추천한 바 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박 대통령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소탈했다는 평이다. 내수 진작을 위한 박 대통령의 행보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조금은 아쉽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청와대를 나섰다는 점은 눈여겨 볼 일이지만, 국정 운영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의 휴가는 사실상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잠시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온전한 휴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내야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도 ‘사람’이다. 스스로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국정에 대한 해법을 여유롭게 찾을 수 있다.

타국 수장은 국가의 비상사태가 있을 때에도 휴가를 떠난다. 관저가 아닌, 현안과 연계된 곳이 아닌 ‘휴양지’에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4년 8월 경찰의 비무장 흑인청년 살해로 인종분규가 발생한 미주리주 퍼거슨시 사태 당시에도 매사추세츠 마샤스 비니어드 휴가지로 2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당시에는 미군이 이라크의 수니파 반군 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 공습을 단행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상황도 겹쳐있었다.

비록 오바마 대통령은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국가적인 재난이나 비상사태 발생 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당장 야권에서는 우 수석 거취를 휴가 중에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매년 휴가 종료 직후 단행돼 왔던 개각설이 박 대통령의 휴가 마지막 날인 29일 넌지시 흘러나오며 인사 개편을 압박하는 분위기다.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여행을 가고, 책도 읽는 ‘일반적인 휴가’를 보내야 ‘불통’ 이미지와 ‘엄숙주의’를 벗어던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직위 이미지를 탈피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잠시 떠난다고 국정 공백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보내야 할 ‘일상’을 ‘비상’처럼 행동하다 보면, 실제 비상 상황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은 크게 와 닿지 못한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저도에 오게 돼 그리움이 밀려 온다’고 했던 2013년 박 대통령의 휴가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에는 평소 보았던 딱딱한 정장 차림이 아닌 원피스를 입은 평상복 차림으로 바닷가 모래에 나뭇가지로 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처럼 국민은 일하는 휴가가 아닌,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이 휴가지로 추천한 울산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떡·과자·과일을 한 아름 산다해서 휴가다운 휴가가 되진 않는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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