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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철폐 비웃는 20대 국회 문열자 입법 홍수


입력 2016.07.17 10:11 수정 2016.07.17 10:1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개인 자유 보호하려는 법치가 외려 심각하게 제약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3주 만에 400건이 넘는 의안이 접수되었다. ‘입법의 홍수’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법안은 대부분 시민생활과 기업 및 시장에 대한 규제와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국가가 어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해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들도 상당수다. 여객운송업무 등에는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입사지원서에 사진 부착, 용모, 키, 체중 등 신체적 조건 등을 기재하도록 요구할 수 없게 만드는 법안, 최저임금 하한선을 대폭 높이자는 법안, 그리고 농어업재해 발생 시 농어가에 대한 복구비용 지원을 늘리자는 법안 등등이 접수되어 있다.

이렇듯 오늘날 시민과 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개입은 갈수록 입법부에서의 법률제·개정, 즉 입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입법만능주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민과 기업 활동의 거의 모든 것을 입법을 통해 규제하고 통제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없고, 자신의 집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도 없이 제비뽑기를 해야만 하고, 근로계약도 사용자와 근로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으며, 투자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일들이 입법부에서 정한 ‘법’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렇게 행해지는 것을 ‘법치’가 구현되고 있다고들 말한다.

이상한 일이다. 법치 혹은 법치주의(Rule of Law)는 본래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법치’가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하이에크는 “입법부가 정한 법이면 무엇이든, 이런 법 아래에서 정부가 내리는 명령은 무엇이든, 이를 법이라고 부르는 것, 이런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는 없다. 이런 것은 무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필자주1)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식의 법치에서는 법은 곧 무법과 다를 바 없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에 예속되고,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입법부에서 제정된 법이라고 해서 그것이 무엇이든 법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런 법을 통해 통치한다고 해서 법치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법과 법치의 오용(誤用)에 불과하다. 이런 언어의 오용은 모든 통치행위는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적법성의 요구와 법치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본래 의미의 법과 법치는 정의의 규칙에서 나온다. 정의의 규칙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①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행동규칙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적이다. ②그것은 목적이나 동기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 그래서 탈목적적인 행동규칙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이다.(필자주2) 하이에크는 이 정의의 규칙의 특성을 법과 연관시켜 법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설명한다. 법의 일반성, 법의 추상성 혹은 탈목적성, 그리고 법의 확실성이 그것들이다.

법의 일반성이란 법은 개인과 사적 조직은 물론 국가까지 포함한 모두에게 예외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차별금지 원칙과 동일하다. 특정 집단이나 특정 계층에게 특혜를 주거나 차별을 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법의 추상성 혹은 탈목적성이란 법은 달성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나 동기를 내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법은 사람들의 특수한 이해관계, 다시 말해 취향이나 이상 등에 관해 중립적이어야 하며, 사회 및 국가의 목적과도 독립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이해관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 따르면, 법은 목적과 동기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특정의 행동 국면만을 금지하고, 금지되어 있지 않은 행동들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의 확실성이란 법은 당사자들이 알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상황과 관련되어야만 하고, 개개인들의 의사결정 영역은 그의 행동으로부터 생겨나는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결과에 좌우되도록 구획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법률 불소급의 원칙도 법의 확실성을 위한 원칙이다. 과거에는 자녀를 많이 낳았다고 차별을 했고, 요즈음에는 자녀를 많이 안 낳았다고 차별을 하는 법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것만이 법으로 인정되며, 이런 법에 따라 지배하는 것이 곧 법치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입법부에서 만들어지는 법은 본래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 타락했다. 법의 타락과 더불어 법의 본래의 목적과도 정반대로 가고 있다. 즉 정의를 확립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법의 본래 기능이며 목적인데, 오늘날의 법은 오히려 정의를 질식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법을 타락시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법실증주의가 여기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법실증주의는 법을 입법자의 의지의 산물이라고 보는 사상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입법권을 가진 사람의 명령을 곧 법이라고 여긴다. “법학의 관점에서 볼 때 나치정부 하의 법도 법”이라는 법실증주의의 대표자인 켈젠의 말은 법실증주의가 무엇이며, 그것이 법을 얼마나 심각하게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 법실증주의가 주권재민 사상과 결합하여 권력에 대한 일체의 제한은 불필요하며, 그 어떤 내용의 법도 만들 수 있다는 무제한적 민주주의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권력자 자신들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법들,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게 들어 있는 법들, 자생적 질서인 시장경제의 분배적 결과를 인위적으로 수정하기 위한 처분적 정책들, 복지정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 특혜와 차별을 담고 있는 법들이 양산되고 있다. 무제한적 민주주의에서 입법부는 ‘신’의 흉내를 내고, 법은 심각하게 타락했으며, 법의 본래의 목적이었던 개인 자유의 보호는 큰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다.

무제한적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이런 정치를 뷰캐넌은 ‘이권에 따른 정치 (politics by interest)’라고 불렀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을 ‘원칙에 따른 정치 (politics by principle)’라고 했다.(필자주3) 여기서 ‘원칙에 따른 정치’란 한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의의 규칙에 따른 정치, 곧 법치를 말한다. 법치는 민주주의가 무제한적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참된 이상을 실현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20대 국회에서 ‘법치’를 재발견해야만 하는 이유다.(필자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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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yek, F.A.v., Die Verfassung der Freiheit, Tuebingen, 1971, p. 187.

2) 민경국, 『하이에크, 자유의 길』, 한울아카데미, 2007, p. 383.

3) Buchanan, J./Congleton, R., Politics by Principle not Interest: Towards Nondiscriminatory Democracy, Cambridge, 1998, p. XI.

4) ‘Rule of Law’를 통상 ‘법치’로 해석하다 보니 ‘Rule by Law’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Rule by Law’는 ‘법대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법실증주의가 말하는 법 개념에 맥이 닿아 있는데, 이것이 ‘법치’라고 잘못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Rule of Law’를 ‘법의 지배’로 불러야 한다.


글/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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