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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만 확립해도 국민 소득 늘어난다


입력 2016.07.09 06:42 수정 2016.07.09 06:43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OECD 국가중 27위 법치 후진국…규제 많을수록 가난해져

한국경제는 법치(法治)만 제대로 확립해도 추가 성장할 여지가 많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법치주의가 1% 개선될 때 실질국민소득은 최소 0.75%에서 최대 1.75%까지 증가하는 관계가 있다고 한다.(필자주1) 우리나라는 법치에 관한 한, OECD 34개국 중 27위에 불과할 정도로 법치 후진국이다. 세계은행에서 조사하는 WGI 법치 지수는 한국이 0.97로 OECD 평균(1.27) 보다 26% 뒤떨어져 있다. 그만큼 개선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한국이 법치주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선진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1인당 실질소득을 크게 끌어올릴 수 것으로 기대된다.

‘법령 따로, 경제 따로’가 아니라 법 제도는 국민경제의 활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왜 그런지는 규제법령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규제법령이 복잡하여 예측하기 어렵고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이 많으면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은 위축되고 그 대신에 규제 관련 지대추구(regulatory rent-seeking)와 유착비리, 부패가 횡행하게 된다. 지금 한국이 이와 비슷한 상황일 듯싶다. 법치주의 순위가 그렇듯이 세계투명성기구에서 평가한 반부패지수(CPI)에서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제는 경제성장의 근본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경제성장은 여전히 노동, 자본, 기술의 함수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채 계속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까닭은 사람, 돈,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예컨대 의료, 법률, 회계시장을 보자. 여기에는 공부깨나 하는 인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입되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변변한 회사가 없다. 그 이유는 전문 자격사 아니면 투자도, 경영도 못하게 하고 업종간 융·복합을 가로막는 규제법 때문이다. 또한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의 비중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한국에서 드론, IOT 등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산업에서 중국에 벌써 뒤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기술 문제가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법령 때문이다.

모든 규제는 국회에서 독점적으로 만들고 고치는 법률에서 비롯된다. 법치의 내용과 수준은 국회가 어떤 내용의 법을 어떻게 만들고 고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국회의 입법 활동이 생산적·창의적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국회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경제 회생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지난 19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경제 회생을 위한 규제 개혁에는 냉담한 반면에 부실·졸속 입법과 규제 생산에는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제20대 국회는 과거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올바른 의미의 법치 확립은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경제 회생의 주춧돌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확립될 수 있도록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법치는 합당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률의 준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의 법률 통치(rule by law)와는 다르게, 정의(正義)를 지향하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개념으로서의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大憲章)에서 보듯이 법치의 본래적 의미는 국가 공권력을 비롯한 제3자로부터 개인의 인격, 자유,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법률의 내용과 집행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 국회는, 국회가 만든 법은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는 법률 통치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법의 지배 관점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해야 한다.

법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원칙금지-예외 허용’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원칙 허용-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의 포지티브 시스템은 이미 효용성이 끝났고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다. 이미 기존의 산업·기술간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 융·복합 기술들이 이 시스템 때문에 무산되거나 뒤처지는 폐단이 심각한 만큼 공을 들여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 새로 만드는 법에만 적용할 게 아니라 기존의 법률을 전수 조사해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법의 지배 확립에 중요한 또 다른 과제는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 현상의 억제이다. 크든 작든 불미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와 정부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며 형사 처벌을 도입, 강화하는 식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해왔다. 행정 규제의 경우에는 경제적 제재의 강화가 범죄 억지력에 더 큰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규제 집행을 쉽게 할 요량으로 형벌 조항을 도입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 결과 인구 대비 전과자 누적 비중은 2010년에 22%를 넘었고 2020년에 이르면 32%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 20대 국회는 ‘과잉범죄화는 법의 지배와 자본주의 모두에게 해롭다(The increasing criminalization … is bad for the rule of law and for capitalism)’는 명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필자주2)

끝으로 이 모든 이야기가 복잡하다면 법의 지배와 민생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노자(老子)의 도덕경 57장 한 문장만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 法令滋彰 盜賊多有”

요즘 말로 풀면 이럴 것이다.

‘세상에 금기(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은 더욱 가난해지고, 법령이 많고 엄할수록 도적(전과자)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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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인학, 한국의 법치주의와 과잉범죄화의 문제점, 2015 참조

2) 2014년도 8월 30일 자, The Economist 특집 기사 참조

글/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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