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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김민희는 죄가 없다는데 진짜 그럴까


입력 2016.07.01 09:01 수정 2016.07.01 09:03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자신이 감내해야할 부분에 책임지는 모습 있어야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이 확산되고 있다.ⓒ(주)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이 확산되고 있다.ⓒ(주)영화제작전원사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당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는 스캔들이었다. 남의 사생활에 왜 간섭인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 알려진 홍상수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은 질투와 시기의 문화심리를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스캔들은 항상 세간의 관심사항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더구나 나이 많은 감독과 젊은 배우의 스캔들은 많은 작품들에서 다뤄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실제 사례이기 때문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물론 이목집중은 비판과 비난이 홍수터진 듯이 쏟아진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에서 비판을 넘어 비난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홍상수 감독이 아내와 자식이 있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민희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과 연정을 쌓은 것이고 통상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불륜이라고 말한다.

혹자들은 프랑스와 비교하면서 그곳에서는 이런 스캔들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남아 있는 열정에 대하여 존중한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당연히 한국은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간통죄가 폐지되었으니, 이제는 이런 스캔들에 대해서 관용을 하자는 말이 있을 수 있었다. 실제로 간통죄 폐지를 언급하면서 두 사람을 두둔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 두사람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간통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생활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해진 것은 책임과 신뢰의 문제였다. 그것은 형사법차원의 간통죄와 다른 것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간통죄가 폐지되었어도 부부의 맹약과 신뢰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을 만약에 어기거나 폐기했다면 분명히 비판을 받을 수가 있다. 그것은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도덕과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한 것은 당사자에 해당하는 가족 즉, 아내가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서 먼저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개인간의 문제를 과도하게 언론이 개입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렇게 과도한 개입이 일어나는 것은 개인들의 사생활 문제를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개입하는 과잉문화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은 문자메시지를 임의로 가공했고, 홍상수 감독의 아내가 항의를 하기도 했다. 과도한 개입이 일어난 것은 그들이 유명한 감독과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도한 개입문제는 유명한 셀럽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기 때문에 이를 전부 도외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들의 스캔들은 유명인이 미칠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공신력있는 행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방향을 탐구하는 것이 예술인, 그 가운데 영화감독이라면 자신의 입장과 거취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홍상수는 나타나지 않았고, 두문불출했다. 그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 때문에 수많은 남성들이 같이 묶여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개개인들의 사생활이나 애정행각은 그들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도리와 신뢰, 책임에 대해서는 견지하는 모습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그에 미흡할 때, 그들에게 비판을 가할 수 있다. 그들의 애정행위와 별도로 자신이 감내해야할 부분에 대해서 책임지는 행위를 보여주지 않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비판을 할 수가 있으며,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것이 관음증적인 대리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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