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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60년' 안성기 "세상이 변해도 초심 지켰죠"


입력 2016.06.27 09:13 수정 2016.06.27 09:15        부수정 기자

'사냥'서 사냥꾼 기성 역 맡아 액션 도전

"내 나이에 이런 영화 출연, 기쁘고 행복"

배우 안성기는 영화 '사냥'에서 사냥꾼 기성 역을 맡아 액션신을 소화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안성기는 영화 '사냥'에서 사냥꾼 기성 역을 맡아 액션신을 소화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5살 때 아버지 친구의 영화 '황혼열차'(1957)에 단역으로 데뷔한 꼬마 아이가 어느덧 60대 중년 남성이 됐다. 5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영화라는 한우물만 팠다. 작은 스캔들 조차 없다. 반듯하고 바른 생활 이미지를 달고 다녔다. 160여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한 '국민 배우' 안성기(64)다.

영화 '사냥'(29일 개봉·이우철 감독)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안성기를 24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지막 시간대 인터뷰에 지칠 법도 한데 배우의 얼굴에선 피곤함을 찾을 수 없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면서 호탕한 웃음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사냥'은 우연히 발견한 금을 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냥꾼 기성의 목숨 건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렸다.

안성기는 백발의 사냥꾼 기성 역을 맡아 산속에서 날아다닌다. 20대 건장한 청년도 하기 힘든 액션 연기를 소화해 배우들을 긴장하게 했다. 평소 꾸준하게 체력을 관리한 덕이다. 이런 액션은 처음이란다.

"'액션 배우로 거듭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 얘기도 나오고요. 허허. 상처받은 인물이 액션을 펼치는 이야기라 가벼운 액션 영화와는 다릅니다. 액션 연기하느라 힘들어서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액션을 감당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배우 안성기는 영화 '사냥'에서 사냥꾼 기성 역을 맡아 조진웅, 권율, 한예리 등과 호흡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안성기는 영화 '사냥'에서 사냥꾼 기성 역을 맡아 조진웅, 권율, 한예리 등과 호흡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안성기는 '행복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했다. "해외에선 내 나이에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엔 별로 없잖아요.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뜻깊어요. '사냥'보다 더한 것도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최종병기 활'과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뭉쳐 만든 작품이다. '최종병기 활'과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안성기에게 '사냥' 시나리오를 주겠다고 말했다. '사냥'은 처음부터 안성기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다. 캐릭터 이름 '기성'도 안성기의 이름 '성기'를 거꾸로 해 지었다.

안성기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며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가 맡은 기성은 수년 전 발생한 탄광 붕괴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사고 후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며 비정상적으로 산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추격 부분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추격이라는 기존 소재를 신선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성과 엽사들의 감정 변화를 비롯해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을 실감 나게 연기해야 했죠. 고립된 기성이 추격전을 벌이고 양순이를 보호하면서 느끼는 감정도 드러내고자 했고요."

안성기는 백발에 수염도 기르는 등 외적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가발을 제작해서 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풀어지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마지막 폭포에선 한 마리 들짐승 같은 모습으로 보였으면 했고요."

영화 '사냥'을 통해 액션신을 소화한 안성기는 "내 나이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밝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냥'을 통해 액션신을 소화한 안성기는 "내 나이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밝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겨울에 찍은 탓에 폭포에서 상의를 못 벗은 부분이 아쉬운 부분이란다. 웃통을 보여주는 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기성이 벗겨진 걸 뜻한다고. 캐릭터의 심리와 장면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추운 겨울에 촬영해서 연출하지 못했다.

배우는 크게 아쉬워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젊은 사람들과 대적하려면 몸이 좋아야 하잖아요. 노출을 해서 건강한 몸을 보여주면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생겨요. 초반에 몸을 살짝 노출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웃음)."

극 중 기성은 자기 엽총은 물론 엽사 무리의 엽총까지 한 몸처럼 다룬다. 연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안성기는 "엽총은 일반 총과 달라서 연습했다"며 "총소리가 정말 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웃었다.

산을 소재로 한 영화인 탓에 배우들은 산을 오르고, 이리저리 뛰며 갖은 고생을 했다. 안성기는 목 디스크에 걸리기도 했다. "낙법을 하다가 그렇게 됐어요. 다른 배우들은 '못 한다'며 힘들어했는데 전 눈치도 없이 계속했죠. 미안했습니다. 결국 저도 다쳤고요. 하하."

'사냥'에서 기성은 마치 불사조 같다. 건장한 사내들에 맞서도 지지 않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일어선다. 총에 맞아도 계속 살아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불사조 설정'에 대해 안성기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처음엔 옆구리, 두 번 째는 어깨에 총알이 스쳐요. 치명상이 아니라서 고통을 안고 달려간 거죠. 마지막에 총알이 총부리에 맞으면서 기성이가 산 거예요. 근데 걱정이네요. 그 부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총부리를 화살표로 표시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안성기 주연의 '사냥'은 우연히 발견한 금을 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냥꾼 기성의 목숨 건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렸다.ⓒ롯데엔터테인먼트 안성기 주연의 '사냥'은 우연히 발견한 금을 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냥꾼 기성의 목숨 건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렸다.ⓒ롯데엔터테인먼트

산짐승과 인육을 먹는 설정에 대해선 "절제를 많이 한 것"이라며 "시나리오 상황에선 큰 문제가 안 됐는데 영화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영화를 보고 토론을 벌이면서 정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극 중 한 엽사는 기성을 두고 '람보 영감'이라고 한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다. "할리우드 냄새가 나는 람보에 '고뇌하고,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요. 캬...이런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허허."

안성기는 조진웅, 권율, 한예리 등 후배 배우들과 호흡했다. 손녀로 나오는 한예리와의 호흡이 돋보인다. "한예리 씨는 집중력이 대단해요. 쉽지 않은 캐릭터를 정말 훌륭하게 해냈어요. 예리 씨를 안고 달리는데 정말 가벼워서 놀라기도 했죠. 여배우라면 예쁘게 보이고 싶을 텐데 그런 마음 없이 양순이답게 보이려고 노력하더라고요."

1인 2역을 맡은 조진웅에 대해선 "일단 힘이 좋다"며 "독특한 눈빛, 포즈, 대사톤을 자랑하는 배우"라고 했다.

후배들과 잘 지내는 법을 물었더니 '내가 먼저 그들에게 친구가 돼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가가기 힘든 선배보다 친구라는 느낌이 들어야 서로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벽이 있으면 안 된다', '윗사람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건 무리죠. 나이가 들면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아져요. 어쩔 수 없이 외로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겁니다. 밑에서 위로 오르는 건 역류죠. 자기가 먼저 내려가면 됩니다."

안성기는 경력 60년을 앞둔 자타공인 '국민배우'다. 드라마엔 출연한 적 없다. 오로지 영화가 관심사다. 오랜 세월 한 길만 뚜벅뚜벅 걸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영화 '사냥'에 출연한 안성기는 내년이면 연기 인생 60년을 맞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냥'에 출연한 안성기는 내년이면 연기 인생 60년을 맞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이죠. 세상이 변해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환경이 변하면 자기 자신도 변하는데 전 잘 지낸 것 같아요. 영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본업에서 비켜나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한눈 팔면 금방 잊히고 외면당하는데 영화 외에는 큰 유혹이 없었습니다. 영화계에서 인정받은 후부터는 다른 분야에 쳐다볼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드라마 출연 의향에 대해선 "했으면 벌써 했지, 전혀 생각 없다"고 못 박았다. 드라마는 현장이 너무 빡빡해서 서로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영화는 스태프, 배우들이 합숙하면서 먹고 자고, 같이 일하기 때문에 식구예요. 드라마는 그렇지 않은 듯해요. 영화가 영속성이라면 드라마는 일시성 같아요. 저한테 드라마가 어울리지도 않고요."

안성기는 1992년부터 25년째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일하고 있다. 해외 구호 현장을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에는 동남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그는 "안주하고 싶은, 게으른 삶에 자극을 많이 준다"며 "가보면 내가 정말 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고 했다.

"거기 있으면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드는데 자극을 많이 받아요. '내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다짐해요. 봉사활동을 통해선 제가 누구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아요."

차기작은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의 '매미소리'다. 흥행은 모르겠고, 작품성은 좋단다. 진도 무형 문화재 이야기라 소리, 춤동작, 전라도 사투리 등 준비해야 하는 게 많다고 툴툴거렸다.

그래도 배우의 목소리는 신이 난 듯 밝았다. 입에서 넘치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해보고 싶어요. 차에서 타령을 들으면서 막 흥얼거린답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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