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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역사책 '편향 실태' 직접 조사한 학부모들 '경악'


입력 2016.06.27 10:02 수정 2016.06.27 10:12        하윤아 기자

<인터뷰>"아이들 물들이려 대부분 반국가적으로 서술"

자유민주주의·경제성장 부정적 평가만…북 정권은 미화

23일 경기도의 관내 시립도서관에서 학부모들이 어린이용 역사도서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23일 경기도의 관내 시립도서관에서 학부모들이 어린이용 역사도서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우리 아이들이 쉽게 접하고 읽는 역사도서가 이토록 편향돼 있다는 사실을 보고 정말 큰일났다 싶었어요.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기본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신의 뿌리를 부끄럽게 여길 텐데, 그렇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죠."

23일 경기도의 한 시립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학부모들이 30여권의 초등학교 역사 도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책장을 넘기며 이리저리 책을 살피던 학부모들은 "휴~"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아이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손쉽게 빌려볼 수 있는 책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북한 정권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사실에 학부모들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날 '데일리안'과 만난 학부모 최모 씨(48)와 이모 씨(48)는 모두 중학교 3학년인 첫째와 초등학교 5학년을 둔 평범한 주부다. 역사에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이 두 학부모는 최근 인근 지역도서관에 매일같이 발도장을 찍고 있다. '우리아이가 빌려볼 역사도서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에 이곳 도서관을 찾고 있지만, 늘 답답함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떠나게 된다는 게 이들 학부모의 말이다.

두 사람은 현재 '교과서분석연구회'(KBY)의 일원으로서 이곳 지역도서관에 비치된 초등도서를 분석·정리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일반 역사도서의 편향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바른교육학부모연합 외 12개 단체가 주최한 '초·중·고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하의 포럼에 참석해 총 6권의 역사도서에 담긴 편향적 서술에 대해 지적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대표로 발표에 나섰던 이 씨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서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적 서술 △북한 정권에 대한 긍정적 서술 △노동운동·민주화 역사 강조 △경제성장·산업화에 대한 부정적 서술 등의 주요 특징을 지닌 6권의 역사도서를 심층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학부모로서 이들 도서의 좌편향 실태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이 씨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나 한 사람, 우리 아이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물론 잘못한 점도 있지만, 거의 모든 책들이 객관적인 서술보다는 처음부터 두 대통령을 나쁜 사람으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동전의 양면 중 한쪽 면을 다 지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이들이 직접 도서를 분석하겠다고 나선 계기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최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하는 말이, 아이가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라는 책을 읽고 '우리나라는 나쁜나라야'라고 이야기를 했다더라"라며 "단 한 권의 책으로 우리나라를 나쁜 나라라고 규정짓는 현실이 매우 심각하게 여겨졌고, 마침 제 아이들도 한국사를 배우는 학년이라 도서관을 찾았는데 수많은 책들이 대부분 반국가적으로 좌편향 돼 있다는 사실을 보고 실태를 파악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최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 씨 등과 함께 지역도서관에 비치된 어린이용 역사도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보름 만에 바른교육학부모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 나와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편지 △순간포착 한국사 명장면 △특종 20세기 한국사 △왜 6·25 전쟁이 일어났을까 등의 역사도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최 씨는 "심층적으로 분석한 도서들은 하나같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증오에 찬 기술들로 일관돼 있었고, 북한을 미화하면서 독재정권 실상은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었다"며 "우리나라에 대해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서술한 책은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탁자에 올려뒀던 여러권의 도서 가운데 '순간포착 한국사 명장면'을 꺼내 들어 보였다. 이내 첫 장을 넘기고 손가락으로 목차를 가리킨 최 씨는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아이들의 뇌를 빨갛게 물들이고자 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킨 목차에는 △4·19 혁명 △전태일 △광주 민주화 항쟁 △6월 항쟁 △남북정상회담 등이 적혀 있었다.

이번엔 이 씨가 나섰다. 그는 '특종 20세기 한국사' 책 속 '알면 슬퍼지는 대한민국 경제성장 비결'이라는 소제목 아래 내용의 편향적 서술을 지적했다. 이 씨는 이 같은 소제목 아래 '군인·광부까지 수출해 자금 마련', '군사작전 하듯 일사분란',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강요' 등의 설명을 매달아 놓고 있는 데 대해 "경제성장의 어두운 면만을 과하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족 자체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표현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아 아이들에게 허무주의를 낳고 있다"며 착잡한 마음을 내비쳤다.

검정 과정을 거쳐 탄생한 교과서와 달리 일반도서는 출판사 혹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시장에 나올 수 있어 더욱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편향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이들 학부모들의 얘기다. 역사관이 올바로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최 씨는 "아이들이 '우리나라는 나쁜 나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도서를 분석하면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됐다"며 "이러한 도서들로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심어주는 집필진과 출판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이 씨는 "책의 종류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듯 보였지만 내용은 획일화 돼있는 현 검인정 교과서 체제와 닮아있는 듯 했다"며 "정말 제대로 된 양질의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제대로 된 어린이용 역사도서가 하루 빨리 출간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속한 교과서분석연구회는 앞으로도 어린이용 역사도서의 편향 실태를 분석·파악하고, 지속적으로 포럼을 개최해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다. 아울러 '바른교육학부모연합' 블로그를 통해서도 분석 내용을 공개할 방침이다.

김에스더 바른교육학부모연합 대표는 "지금의 역사도서는 내 나라를 싫어하고 그 나라를 이뤄온 세대를 싫어하도록 조장해 아이들 스스로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면서 "이것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과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김 대표는 "어떻게 우리 아이들, 이 아름다운 세대의 미래를 포기할 수 있나"라며 "역사도서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아이들이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심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학부모들은 인터뷰를 끝마치며 꼭 한 마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 한 마디가 꼭 기사에 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면서 수줍은 듯 웃어보였다.

"엄마와 싸워서 이긴 사람 본 적 있으세요? 더구나 우리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엄마들이 역사도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심각성을 알리고 있어요. 어린이용 아동도서를 잠식하고 있는 세력들에 '아이들에게 비뚤어진 역사관을 심는 일을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큰 코 다칠거야!'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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