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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배 "김정은이 선교사들 일망타진 지시했다"


입력 2016.06.05 10:11 수정 2016.06.05 10:12        목용재 기자

<긴급 인터뷰>735일 북한에 억류된 외국인 '최장기수'

"최고위급 김원홍, 인상 험악하고 풍채 좋아 위압감"

735일동안의 북한 억류기를 담은 선교사 케네스 배 씨의 '잊지 않았다' 출간 기자간담회가 지난 1일 온누리교회에서 개최됐다.(자료사진)ⓒ출판사 두란노 735일동안의 북한 억류기를 담은 선교사 케네스 배 씨의 '잊지 않았다' 출간 기자간담회가 지난 1일 온누리교회에서 개최됐다.(자료사진)ⓒ출판사 두란노
외국인 가운데 북한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735일동안 억류됐던 '최장기수' 케네스 배 선교사를 출국 전날인 지난 4일 마포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2014년 11월 북한에서 풀려난 지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나 석방 당시보다 체중도 늘어나고 얼굴색도 좋아졌다. 자신의 북한 억류경험을 '잊지않았다'(두란노 간)라는 책으로 풀어내기도했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있었고 쉽게 풀어지지도 않았다.

"북중 접경지역 선교사들 색출 작업 벌이라는 김정은 지시 떨어져"

"제가 듣기로는 제 사건이후 김정은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북중 접경지역에서 선교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일망타진하라고요. 제 사건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붙잡혀 갔습니다.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인 사역자들도 행방불명되고 살해당했어요."

케네스 배 선교사는 기독교인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지난 2011년 3월 '네이션스 투어스'라는 여행회사를 세워 300여명의 관광객들을 북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17차례 북한을 들락거리면서 북한 당국과 주민들에게 평판 좋은 사업가로 신망을 쌓았지만 18번째 방북인 2012년 11월, 한순간의 실수로 735일 간 북한에 억류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가 실수로 가지고 들어간 이동식 저장기기에 외부의 문물, 북한 체제에 대한 자료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배 선교사는 우여곡절 끝에 풀려났지만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붙잡혀 북한에 억류돼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남아있다.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이 아직까지도 북에 붙잡혀 있는데 미국 국적자들이 아니라서 풀려나기 힘들다고 봐야할까요.

"현재로서는 풀려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 핵실험 등 정말 미국과 북한 사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풀려났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이 풀려나려면 한국 정부와 관계자들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 선교사가 억류된 2012년 11월 이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이어 진행하면서 미북 간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북한이 배 선교사를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하려다가 북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장기 억류됐다는 것이 배 선교사의 설명이다.

-김정은이 선교사님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한 걸까요.

"제 사건 이후 이런 선교사들로 비롯되는 일들을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사상·문화침투를 막겠다는 건데 국경 근처에서 일하는 선교사나 중국인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작업을 벌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마도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들도 본보기 삼아 앞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선교활동 등을 꿈도 꾸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이겠죠."

배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돼 조사를 받을 당시 그의 외장 하드에 담겨 있던 '여리고 작전' 파일이 북한 보위부에 들통났다. '여리고 작전'은 배 선교사의 향후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 기도할 사람들을 북한으로 데리고가 '영적 전쟁'을 벌이겠다는 일종의 종교활동이었다. 배 선교사에게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죄목이 붙여진 이유다.

-한국 국적의 선교사님들도 특별교화소에 수감 중일까요?

"제가 있었던 (외국인) 특별교화소는 아닐겁니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이 끌려가는 교화소도 아닐거고요. 아마 별도의 수용시설에 있을겁니다. 저보다는 고생하겠지만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 수준의 노동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분들은 언제라도 '협상카드'식으로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 교화소에 두지는 않을겁니다."

"특별교화소에서 나올 때 돌려받지 못한 소지품들은 볼펜과 공책"

-외국인 특별교화소에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곳인가요.

"그곳이 세워진지는 적어도 10년 정도는 됐다고 생각합니다. 거기 간수들과 얘기하는 중에 '이곳 온지 10년 됐다'고 말한 간수도 있었거든요. 제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중국국적의 범죄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식 아침식사가 나왔다는 말도 들었고요. 그곳에 수감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특별교화소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나요?

"이 곳의 시설자체가 규모가 작아요. 작은 뜰이 있고 사무실, 방 9개 정도가 있어요. 7개정도를 수감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내가 복도청소를 하면서 전체를 봤으니까 저 혼자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복도 길이가 7~8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어요."

735일동안의 북한 억류기를 담은 선교사 케네스 배 씨의 '잊지 않았다' 출간 기자간담회가 지난 1일 온누리교회에서 개최됐다.(자료사진)ⓒ출판사 두란노 735일동안의 북한 억류기를 담은 선교사 케네스 배 씨의 '잊지 않았다' 출간 기자간담회가 지난 1일 온누리교회에서 개최됐다.(자료사진)ⓒ출판사 두란노


-교화소에서 나올 때 원래 가지고 있던 소지품에서 몇 개가 사라졌다면서요?

"저에게 중요한 물건은 아니었어요. 그다지 언급할 물건들은 아니어서 책에다가 쓰지는 않았는데, 볼펜이랑 비어있는 공책, 이어폰 이런 것을 돌려받지 못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간수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고 있던 옷에 1302위안이 있었는데 돌려받으니까 동전 2위안만 있더라고요. 그돈 어디갔냐고 물어보니까 그동안 체류비용으로 처분했다고 했습니다."

-북한 사람들한테는 그 물건들이 상당히 요긴한 물건일 수 있죠.

"그래서 석방될 때 제가 가지고 들어온 소지품 리스트를 다시 작성했습니다."(웃음)

-735일 동안 억류돼 있다가 풀려났을 때 감회가 남달랐겠습니다.

"제가 풀려날 때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랑 악수를 했는데, 김원홍이 전혀 미소 없는 얼굴로 악수를 하는 걸 보니까 클래퍼 국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잘못한 자식 때문에 부모가 사과하러 온 그런 분위기였죠. 클래퍼 국장 기분이 정말 안 좋았을 것 같더라고요."

-김원홍이 북한에서 본 인사들 가운데 가장 고위직이었겠네요. 인상이 어땠나요.

"인상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당시 봤을 때는 김원홍이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풍채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하더라고요. 책에는 마치 갱단의 두목처럼 묘사해놨는데 권력의 정점에 있고 모든 것을 관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섬찟했다고 해야 하나요. 최고 실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북한 화폐 사용하지 않는 주민들...북한 돈 주니까 "선생님 왜 이러세요"

배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되기 전에는 북한 여행사업을 구상 및 진행하면서 북한 곳곳을 둘러봤다. 때문에 북한의 경제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잊지않았다' 책을 보니까 북한 경제 묘사한 부분도 있던데요, 북한 주민들이 북한 화폐는 전혀 사용하지 않나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잔돈이 요구될 때 사용되고 장마당에서도 쓰이긴 해요. 그런데 될 수 있으면 안 받으려고 하죠. 한번은 억류되기 전에 개성을 들렀다가 돌아가면서 상점에 들렀어요. 음료수를 사먹었죠. 그러면서 북한 돈을 주니까 거기 상점 아주머니가 '선생님, 나쁜 사람같지 않은데 왜 그러세요' 이러는 겁니다. 왜 조선 돈을 주냐 이거죠. 제가 1달러당 북한 돈 800원할 때 처음 북한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1달러당 8000원이에요. 누가 북한 돈을 쓰려고 하겠습니까."

-북한 장마당은 직접 가보셨나요.

"나진에 있는 장마당을 가봤죠. 95%가 중국산이고요 대부분이 싸구려 잡화에요. 유통업자들도 따로 있고, 매대를 깔아서 장사를 하죠. 돈이 없는 분들은 장마당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냥 땅바닥에 자리깔고 앉아서 물건을 팝니다. 거기에 사는 집집마다 한명씩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북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향후 계획이 있다면.

"북에 있을때도 그들한테 얘기했어요. 풀려나면 서방세계와 북한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현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는 다시 못들어가겠죠. 그래도 북한의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 계층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또 탈북민들을 위한 활동도 하고 싶어요."

5일 출국한 배 선교사는 오는 10월 다시 방한할 예정이다. 그때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사업, NGO 활동 등을 벌이기 위한 준비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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