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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첫 홈런, 곰 같았던 기다림 미학


입력 2016.05.30 07:12 수정 2016.05.30 15:48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클리블랜드와의 원정경기서 7회 마수걸이 홈런

시범경기 부진으로 야유 굴욕까지, 인내의 89일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터뜨린 김현수. ⓒ 게티이미지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터뜨린 김현수. ⓒ 게티이미지

김현수의 방망이가 드디어 홈런을 만들어냈다. 89일 동안 인내심을 먹고 자란 곰의 포효와도 같은 홈런이었다.

김현수는 30일(이하 한국시각)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와의 원정경기에 2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나간 김현수의 타율은 0.383으로 소폭 하락했다.

앞선 1회초 무사 1루의 첫 타석에서 상대 선발 마이크 클레빈저의 직구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선 김현수는 2회초 볼넷을 골라내 출루했다. 선두 타자로 나선 5회초에는 바뀐 투수 댄 오데로의 포심에 다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7회, 김현수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김현수는 4-4 동점이던 7회 네 번째 타석에서 클리블랜드의 불펜 제프 맨십의 92마일 투심 패스트볼을 잡아 당겨 타구를 우측 관중석에 꽂아넣었다. 드디어 터진 마수걸이 홈런이었다.

베이스를 차례로 밟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김현수는 외면하는 동료들 사이로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볼티모어 선수들은 일제히 해바라기 씨를 김현수에게 던지며 데뷔 첫 홈런을 축하해줬다. 첫 홈런을 기록했을 때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 최근 메이저리그의 유행이 김현수에게도 적용된 순간이었다.

김현수 입장에서는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홈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험난한 메이저리그 무대에 연착륙하기 까지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대를 모으며 볼티모어에 입성한 김현수는 지난 3월 2일, 시범경기에 처음으로 나섰다. 결과는 3타수 무안타. 그로부터 기나긴 부진이 시작됐다. 직구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이로 인해 변화구에도 속절없이 공략당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김현수에게 호의적이었던 벅 쇼월터 감독과 볼티모어 언론들도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시즌 개막 직전, 김현수는 마이너리그행을 권유받았다. 좀 더 경험을 쌓으라는 구단 측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마이너리그 거부권’ 옵션을 발동해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한동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개막전에서는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굴욕까지 떠안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지난달 11일 탬파베이와의 데뷔전에서는 비록 행운의 안타가 거듭됐지만 멀티히트로 조금씩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달 초에는 데뷔 첫 장타를 터뜨리기도 했다. 서서히 타격감이 잡혀가는 모양새였다. 타율은 한때 6할을 넘는가 하면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줄곧 9번에만 머물렀던 타순도 최근에는 본래 역할이었던 2번까지 뛰어올라 밥상을 차려주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지난해까지 KBO리그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김현수는 마치 ‘곰의 DNA’를 갖고 있는 듯 인내심의 미학을 선보였다. 시범경기 첫 출전으로부터 정확히 89일이 지나는 동안 찬사보다는 비난에 익숙했던 김현수다. 하지만 곰 같았던 김현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제한된 기회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다. 마수걸이 홈런으로 동굴을 빠져나온 ‘곰’ 김현수가 찌르레기(oriole)가 되어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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