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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선 라니에리가 유럽축구에 남긴 교훈


입력 2016.05.05 21:24 수정 2016.05.05 21:25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레스터의 선수구성과 특성 감안한 전술적 판단 대성공

스타 선수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입증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이끈 라니에리 감독. ⓒ 게티이미지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이끈 라니에리 감독. ⓒ 게티이미지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유럽축구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그는 발렌시아, 첼시, 유벤투스, 인테르 등 수많은 명문클럽들을 지도했지만 사실 올시즌 전까지만 해도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팀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또한 사람은 좋지만 승부사 기질이 부족한 감독 정도가 그동안 라니에리 감독의 보편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레스터 시티(이하 레스터)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에 대한 평가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레스터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2부리그를 전전하던 팀으로, 지난해 1부리그에서도 강등을 겨우 면하는데 그쳤다.

특히 올시즌 레스터를 맡는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팬들조차도 기대를 크게 안할 정도로 라니에리는 확신을 갖게 하는 유형의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임 이후 라니에리 감독은 선수비 후역습을 중심으로 한 레스터의 팀 스타일을 확립했다. 갈수록 점유율을 중시하는 현대축구에서 레스터의 점유율은 45%로 리그 18위에 불과했고, 패스성공률 역시 최하위권이었다.

반면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경기당 태클와 가로채기는 리그 상위권을 유지했다. 깊게 내려 수비에 치중하다 볼을 가로채면 긴 패스를 통해 한 번에 공격수에게 전달해 마무리 짓는 패턴에 상대팀들은 알고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수비와 역습 위주의 전략은 라니에리 감독의 일관된 축구철학이라기보다는 레스터의 선수구성과 특성을 감안해 내린 전술적 판단이었다. 선수들이 잘 소화할 수 있고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라니에리 감독의 리더십과 레스터의 대성공은 EPL에 많은 것을 시사했다. 올시즌 EPL은 유례없이 전통 강호들의 몰락이 두드러졌다. 전년도 챔피언 첼시는 성적부진 속에 주제 무리뉴 감독이 시즌 중반 경질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맨유 역시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아스날 역시 12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하며 벵거 감독은 퇴진 압박을 받기도 했다.

반면 레스터는 돈의 힘과 스타 선수들의 이름값이 아니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이는 사실상 돈으로 클래스를 살수 있다고 믿는 현대축구의 대세를 역행한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라니에리 감독은 무리뉴, 벵거, 페예그리니, 판 할 등 이름을 날린 감독들에 비하면 그동안 지명도가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유럽축구의 명장들이 저마다 슬럼프와 경질설에 허덕이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60대 중반의 나이에 대기만성의 명장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빅클럽 감독들이 과거의 성공모델과 자만에 갇혀 발전하지 못할 때 라니에리 감독은 꿋꿋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오면서도 선수들과 팀의 성향에 맞춰 조화를 이뤄내는 유연한 리더십으로 역사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러 챔피언이 바뀌더라도 올시즌 레스터의 우승은 현대 유럽축구사에 길이 남을만한 특별한 기적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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