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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기 증상? 한국은행의 대안없는 '눈치보기'


입력 2016.05.02 09:28 수정 2016.05.02 10:23        문대현 기자

"정권초기였다면 양적 완화 거부 못할 것" 이구동성

기능적으로는 독립기관이나 '정무적 판단'해선 안돼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이 돈을 찍어 재원을 마련하는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론'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이 돈을 찍어 재원을 마련하는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론'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이 돈을 찍어 재원을 마련하는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론'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한국은행이 정부와 맞서는 듯한 모습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조선·해운업계를 중심으로 부실기업이 대거 발생하면서 경제 위기가 초래하자 정부여당은 선별적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채권을 인수하는 등 방식으로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김무성 전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을 이끌었던 강봉균 선대위원장은 주요 경제 공약으로 이같은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자 공식 석상에서 양적완화론을 지속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 오찬간담회에서 "강 위원장이 공약으로 제시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고 28일 국무회의에서는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도 30일 논평을 통해 "조선·해운업계를 중심으로 부실기업이 발생하고 있는데 조기에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구조조정을 하려면 실탄인 자본이 필요한데 국책은행 지원 여력이 부족한 만큼 선별적인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이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며 상황은 알 수 없게 흘러가고 있다. 앞서 윤면식 부총재보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브리핑에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서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한국은행이 정부와 대립하는 구도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이주열 총재가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을 반박하는게 아니다"라고 수습하려 했지만 상황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특히 야당은 경제전문가들이 모인 한국은행마저 양적완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재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30일 구두논평에서 "한국은행이 사회적 공감대가 없이는 (발권력 동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며 "돈을 더 푸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근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라고 비판했고 김정현 국민의당 대변인도 "정부가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은행의 눈치보기, 경제활성화 물거품 될 것"

한국은행이 정부와 맞서는 듯한 행동에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기능적으로 정부와 분리돼 있는 독립기관임을 감안하더라도 국가 중앙은행이 국가와 맞서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또 정권의 임기가 끝나감에 따라 한국은행이 정무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30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로 가고 있고 특히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기관들이 서서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만약 정권 초기였다면 한국은행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산하기관들이 경제 문제를 진단하기보다 정무적인 행동을 펼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평상시 논리로 볼 때 굉장히 의아스러운 행동"이라며 "이렇게 되면 향후 현 정부의 추진 동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정부가 앞으로 이를 제재하는 수단을 갖추지 않는다면 국가 경영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 산하에 있는 다른 은행마저도 정부에 협조를 하지 않는 상황이 속출하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금융 정책으로 인한 경제활성화 달성은 완전히 물거품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제 정책을 다뤄야 할 기관이 정무적인 판단을 하려는 움직임에 위기감을 표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지금이 정권 초기였다면 한국은행이 양적완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 못 했을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정무적 판단을 했다고 판단했다.

한 경제칼럼니스트 역시 "사실 부실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꼭 못 할 것만도 아니다.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해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여소야대에 나타난 한국은행의 눈치보기"라면서도 "대통령의 주문이지만 한국은행이 독립기관으로서 반대할 수도 있다. 여소야대 국회의 여파로 야당에 공격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은 한국은행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양적완화론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분분한 만큼 한국은행은 대통령의 주문을 당장 따르기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합의를 하는대로 하는게 나중에 책임소재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신 교수도 "그 이유가 어찌 됐든 한국은행이 정부와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은 헌법적 독립기관임을 증명했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며 "이를 절충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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