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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조작됐다…북한판 트루먼쇼 '태양 아래'


입력 2016.04.27 08:35 수정 2016.04.27 12:10        부수정 기자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 연출

"평양은 거대한 세트장, 인권 침해 심각"

북한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는 8세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태양절(김일성의 생일)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북한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는 8세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태양절(김일성의 생일)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북한 평양에 사는 8세 소녀 진미의 입에서, 기계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다.

진미는 평양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 진미의 엄마는 콩우유 공장 노동자, 아빠는 봉제 공장 기술자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진미네 가족은 언뜻 보면 행복해 보인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는 진수성찬이 나오고, 가족은 화목한 대화를 이어간다.

여느 가정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진미네 가족의 모습은 모두 가짜다. 북한 당국이 연출한 '사기극'이라는 거다.

북한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는 8세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태양절(김일성의 생일)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러시아와 북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미를 중심으로 한 평양 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했다. 2014년 북한에 머물면서 촬영한 그는 제작 과정에서 진미의 주변이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과 주민들의 실제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울러 북한 당국의 과도한 개입, 검열, 통제를 겪으면서 처음 계획과는 전혀 다른 북한의 '실제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다.

촬영 과정은 지난했다. 북한은 감독에게 '촬영분은 매일 허락받아야 한다',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촬영분을 삭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감독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전체 촬영분에서 약 70% 삭제된 촬영분을 북한 당국에 줬다. 촬영이 끝난 후 모든 분량의 복사본을 만들었고 북한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태양 아래'는 진미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평양시 전체를 트루먼쇼(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내용)의 세트장처럼 조작하려는 북한의 거짓된 실상을 보여준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태양 아래'는 진미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평양시 전체를 트루먼쇼(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내용)의 세트장처럼 조작하려는 북한의 거짓된 실상을 보여준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제작진은 북한 당국에 잡힐까 봐 24시간 두려움에 떨면서 목숨을 걸고 촬영한 셈이다.

영화는 진미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평양시 전체를 트루먼쇼(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내용)의 세트장처럼 조작하려는 북한의 거짓된 실상을 보여준다.

북한 관계자가 종종 등장해 진미의 삶을 연출한다. 무표정하고 웃음기 없는 진미와 가족, 친구들에게 "밝게 웃어라"고 강요하는 부분, 연기를 지시하는 부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 진미가 사는 아파트는 사람 사는 곳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했으며, 부엌 천장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부모의 직업도 북한 각본대로 바뀌었다. 진미의 아빠는 원래 기자, 엄마는 식당 종업원이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출근하는 모습도 모두 조작된 것이다. 감독은 자막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 드나드는 건 촬영 외에 본 적이 없었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실제로는 학교 내 기숙사나 공장 막사에서 지냈다는 뜻으로 영화를 위해 평양 주민들이 동원됐다는 얘기다.

어린아이들이 자기 의사를 단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한 가지 사상에만 묻히는 인권 침해 현장은 가슴을 건드린다.

진미는 가족들에게나 학교 선생님, 친구들에게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참여도, 자기 결정권도 없다. 축하 공연을 위해 무용을 배우는 과정에서 '쉬고 싶다'는 말 한 번 못하고 눈물을 삼킨다.

'태양 아래'를 만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 건지,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태양 아래'를 만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 건지,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에이리스트엔터테인먼트

학교에서 '왜놈과 지주 놈들을 물리친 이야기'로 사상 교육을 받고, 참전 용사에게 미군들을 물리쳤던 지루한 무용담 특강을 졸면서, 반복해서 듣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에선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조차도 북한 당국에 의해 통제된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평양 주민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다. 우울하고, 차갑고, 무표정하다. 얼굴에 생기가 가득해야 할 어린아이들의 눈동자에선 희망과 빛이 보이지 않는다. 가치관, 생각도 없다. 버튼을 누르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이라고 말하는 로봇과 같았다.

자유롭고 활발하게 자기 의사와 감정을 표현해야 할 아이들이 숨 쉴 틈조차 없는 강압적인 억제와 세뇌를 받는 모습은 반인륜적인 인권 침해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선소년단 활동을 언급하자 진미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를 나타낸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라는 질문에도 진미는 눈물만 흘린다. 시를 읊어보라고 하자 진미는 "나는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라고 시작하는 김일성 찬양 시를 외운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북한 아이들의 삶을 보고 아픔 외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며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 건지,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감독은 또 "한국에서 영화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남한과 북한, 한 민족 간의 재앙을 다뤘는데 한국 국민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내 극장이 이 영화를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영 시간을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 배치했다"며 상업성에만 초점을 두는 한국 영화계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27일 개봉. 전체 관람가. 상영시간 92분.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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