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데 푹 빠졌네…'결혼계약' 뜻밖의 성공
진부한 구식 신파에도 시청자 끌어당긴 힘
'땜빵 드라마' 우려 딛고 시청률 20% 인기
"너 내가 살릴게."
아픈 유이를 향한 이서진의 한 마디에 시청자들도 울었다. 이서진을 스타덤에 올린 '다모'(2003) 이후 그의 최고 명대사라는 찬사가 잇따랐다.
가수 출신 유이의 연기도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시청률 20%를 웃돌며 주말 밤 시청자를 꽉 잡은 MBC '결혼계약'이 24일 종영했다.
'결혼계약' 마지막회는 강혜수(유이)와 남편 한지훈(이서진), 딸 은성(신린아)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병세가 점점 악화된 혜수와 그런 혜수를 지켜보고 감싸주는 지훈의 모습은 사랑의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줬다.
이서진은 내레이션은 통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 사랑해 혜수야. 사랑해. 사랑해. 1분 1초도 쉬지 않고 사랑해"라고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했다. 혜수가 죽는 새드 엔딩이 아닌 열린 결말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2.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1위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도 인기
'결혼계약'은 인생의 가치가 돈뿐인 남자 '금수저' 한지훈과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여자 강혜수가 극적인 관계로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드라마는 어디서 많이 봐왔던 구식 신파 멜로 탓에 방송 전엔 큰 기대가 없었던 작품이다. 아울러 이병훈 PD의 '옥중화'가 제작이 지연되면서 급하게 편성된 이른바 '땜빵 드라마'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극 중 지훈은 부잣집 도련님이고, 혜수는 빚 독촉에 시달리며 아이까지 달린 싱글 맘이다. 엄청난 계급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즉, 혜수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두 사람 사이에 돈이라는 소재를 내건다. 지훈이 엄마에게 신장 이식을 해주기 위해 혜수와 '결혼계약'을 맺으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현행법이 가족에게만 신장 이식을 허용하고 있어서 지훈은 혜수와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
아무리 '계약'이라지만 가족처럼 보여야 한다. 지훈은 혜수의 딸과 친해지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결국 지훈은 혜수의 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혜수와도 점차 가까워졌다.
'결혼계약'은 이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혜수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는데, 삶의 종착역을 바라보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시청자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과하지 않은 감정선으로 표현한 게 드라마의 미덕이다.
아픈 딸을 위해 가족을 만들어주려는 모습을 '억지 감동'이 아닌 잔잔한 물결처럼 담아냈다. 지훈이 혜수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혜수에게 달려간 장면은 극의 백미다. 이서진의 '살인 보조개'는 아름다운 영상과 어울려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편성 덕도 봤다. MBC 밤 10시대 드라마는 고정 시청자층이 있다. '결혼계약'도 편성운을 톡톡히 보면서 시청률 20%라는 성공적인 성적표를 얻게 됐다.
이서진·유이 케미 통해
이서진, 유이의 조합도 인기 요인이다. 사실 두 사람이 캐스팅됐을 당시에는 "안 어울린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46세인 이서진과 29세인 유이의 나이 차이는 무려 17살. 나이 차 때문에 '과연 두 사람의 로맨스 연기가 통할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극 초반 두 사람은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논란은 이내 잦아들었다. 논란보다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2014년 '참 좋은 시절' 이후 tvN '꽃보다 여행'과 '삼시세끼' 등 예능에 전념해온 이서진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매력을 뽐냈다. 도련님 이미지와 잘 어울린 것은 물론이고 '츤데레'(겉으로 무뚝뚝하나 속은 따뜻한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신조어) 남자로 여성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자신을 자꾸만 밀어내는 혜수에게 "내가 다 잘못했다. 무조건 잘못했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 난 그냥 당신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 난 도저히 당신 포기 못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장면은 시청자의 가슴을 건드렸다.
혜수의 병을 알고 "내가 너 살릴게"라고 할 때 시청자는 '심쿵'했으니. 부잣집 도련님이 모든 걸 포기하고, 나한테 오겠다는데, 나만을 바라보고, 날 살리겠다는데 설레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결혼계약'으로 이서진은 '다모' 이후 여성 시청자의 가슴을 또 한 번 저격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가수 출신 연기자 유이의 성장 또한 반갑다. 걸그룹 애프터출신 유이는 그간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연기 활동도 한 그는 KBS2 '오작교 형제들'(2012), tvN '호구의 사랑'(2015) 등에서 털털하고 보이시한 역할만 도맡아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방송된 SBS '상류사회'에서 재벌가 막내딸 장윤하 역을 맡아 감정 연기를 펼쳤다. 절반의 합격점을 받은 유이는 '결혼계약'에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혜수의 캐릭터는 쉽지 않다. 결혼 경험이 없는 유이는 싱글맘, 그것도 시한부 선고받은 엄마의 애끓는 감정을 소화해야했다. 이서진과의 로맨스도 숙제였다.
유이는 모두의 우려를 보란 듯이 깨고, 혜수가 됐다. 시한부 역을 위해 직접 머리를 자르기도 하는 등 작품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유이가 아파하면서 울 땐 시청자의 가슴도 미어졌다. 과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 배우는 해냈다.
삶의 끝에서 만난 이서진과 유이가 그린 사랑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알려 준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은 포기하지 말라는 인생의 이치를 길어 올렸다.
한 시청자는 "이서진과 유이가 나와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자꾸 보게 됐다"고 했고, 또 다른 시청자는 "뻔한 이야기인데 마약처럼 계속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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