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목요일 저녁마다 찾는 파란색 천막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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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이 목요일 저녁마다 찾는 파란색 천막의 정체는?
    <런닝폴 현장취재>관악서 '찾아가는 상담소', 학교전담경찰관들과 청소년들의 '비밀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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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6-04-17 09:53
    박진여 기자(parkjinyeo@dailian.co.kr)
    ▲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 서울관악경찰서가 운영 중인 찾아가는 청소년 상담소 '런닝폴' 천막이 세워져 있다. ⓒ데일리안

    오후 7시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은 신림역 인근 번화가, 휘황한 네온사인 아래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든 거리에 점집을 연상시키는 파란 천막 한 대가 펼쳐졌다. 어른 한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입구를 제외하고 사방이 짙은 파란 천으로 뒤덮인 이 ‘수상한’ 천막은 다름 아닌 청소년 이동 상담소 ‘런닝폴’이다.

    런닝폴은 서울 관악경찰서가 지난해 7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상담소’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관악구 내 학교 밖 청년들이 주로 밀집하는 신림동 일대에 찾아가 학교 밖 청년들을 만나 소통하고 지원하는 창구다. 여기에는 학교전담경찰관(SPO) 4명과 법률전문가 1명이 상주하며 천막을 찾는 상담자들에게 고민상담, 법률자문 등을 제공한다. 또 교육부나 서울시 산하기관 등과 연계해 검정고시 준비와 취업알선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지난 7일 찾은 런닝폴은 딱딱한 이미지의 경찰관이 운영하는 상담소지만, 청소년·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실제 주변 상점이 문을 닫는 밤 10시 무렵에도 삼삼오오 모여든 청소년들과 시민들로 천막 안이 북적거렸다. 이때 천막을 찾는 사람들은 상담자가 아니더라도 으레 인사를 하러 들르며 상담 경찰관들과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날 천막을 펼친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중학생 딸 A 양의 손을 이끌고 천막을 찾은 B 씨(50대·여)가 자리에 앉자마자 봇물 터지듯 하소연을 늘어놨다.

    곁에 앉은 A 양은 짙은 화장이 어색한 앳된 얼굴로 '방문기록'과 '상담기록지'를 받아 작성했다. 상담 기록지에는 본인 정보 및 ‘좋아하는 연예인’, ‘쉴 때 주로 하는일’, ‘100만원이 생긴다면’, ‘과거로 간다면 바꾸고 싶은 일’ 등 24개의 문항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B 씨는 상담 기록지를 꾹꾹 눌러쓰고 있는 A 양을 옆에 두고 SPO를 향해 "얘 때문에 집안에 갈등이 생겨서 마음고생 많이했어요"라며 구구절절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도 어디에도 말할 데가 없어 답답했다"며 그간의 사정을 늘어놨다. 이처럼 B 씨가 SPO에게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고민을 스스럼없이 말하게 된 것은 A 양의 문제로 SPO와 자주 접하며 안면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SPO는 학교전담경찰관인 만큼 관할 지역 학교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 친구관계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다. B 씨가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고 어머니 어떻게 또” 라고 첫 인사를 건넨 라기인 SPO는 “A 때문에 어머니가 마음고생 하셔서 그런지 전보다 늙으셨네” 하고 A 양의 근황과 B 씨의 안부를 물었다.

    B 씨는 “또 학교를 안 나간다. 오늘도 얘 때문에 경찰서 갔다가 들려봤다", "이번 사건 관련해 애 아버지는 아직 모르는데, 이건 비밀로 하더라도 학교만 나가주면 소원이 없겠다" 등 쉼 없이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에 한참을 듣고 있던 라 SPO는 A 양을 향해 “중학교는 나와야 돼. 너 중학교는 퇴학 안 된다고 계속 벌점 받고 봉사활동 죽어라 하는 거야? 아버지한테 내가 전화 한다”라며 단호히 다그치다가도 “아저씨 딸도 우리 A랑 비슷한 또래야. 아빠들은 딸내미 애교 한 방에 다 끝나! 아빠한테 학교 잘 다니겠다고 편지 한 통 쓰고 애교도 한 번 떨고 해봐”라고 타일렀다.

    무표정으로 상담 기록지만 만지작거리던 A 양은 라 SPO의 친근하고 투박한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거나 “아 안돼요~”, “싫어요!” 등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에 친구가 없어) 혼자라는 게 제일 힘들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런닝폴 안 분위기가 다소 숙연해진 탓일까. 평소 알고 지내는 SPO를 찾아 일부러 천막을 찾은 아이들 무리가 천막 밖에서 다른 SPO에게 “그냥 인사하러 왔다”며 방문기록만 남기고 돌아서기도 했다.

    이처럼 신림동 일대를 지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런닝폴의 상담 경찰관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 둘씩 짝을 지어 찾아와 짧은 인사를 건네거나 근황을 이야기하며 “다음 주에 봬요”라며 자리를 떴다.

    앞서 1시간여의 상담시간 동안 지친기색 없이 상담을 이어가던 라 SPO는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우리 애랑 같은 또래라 남일 같지 않다”며 “이건 단순히 ‘업무’가 아니라 ‘진심’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경찰서나 학교가 아닌 밖에서 편하게 친구처럼 만나 대화하니 이 친구들의 마음을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 SPO들은 경찰서와 학교를 벗어나 천막에 앉아있을 때만큼은 소위 경찰관 신분을 내려놓고 청소년들과 만난다. 이때 SPO들은 사복 차림으로 천막에 앉아 자신을 ‘아저씨’, ‘삼촌’, ‘언니’라고 자칭하며 청소년들과 소통을 이어간다. 이렇다보니 실제 이들의 인기는 경찰을 넘어 연예인을 능가하기도 한다.

    이날 9시 무렵 런닝폴 앞을 지나던 한 초등학생은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저기! 라기인 선생님!”이라며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이때 라 SPO가 “어디가니?”라고 화답하자 모녀는 천막 안으로 들어와 하루일과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라 SPO는 “아직 3학년인데 나를 어떻게 알지?”라고 하자 아이는 “우리 학교 담당 경찰관이시잖아요!”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이처럼 런닝폴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장소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수상한 천막'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날 천막을 지나던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뭐야 이거 설마 안에 유재석 있는 거 아냐?”라고 기대감을 내비치며 천막에 다가왔다가 안을 보더니 “뭐야 없어” 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최근 방영된 MBC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나쁜기억지우개’ 편을 시청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 밤이 깊어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 무렵에도 SPO들은 “학원이 늦게 끝나는 아이들이 들를 수도 있다”며 쉽게 천막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면서 천막 밖으로 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있는지 순찰하기도 했다.

    이때 SPO들은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천막 밖으로 나와 “우리가 추울 때 두꺼운 옷을 입듯 비행청소년들에게 관심이라는 옷을 입혀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매주 만나고 소통할수록 아이들이 변화하는 게 눈에 보여 힘이 난다”고 전하며 다음 주 목요일을 기약했다.[데일리안 = 박진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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